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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지 Apr 07. 2020

한 달에 한 번, 전 애인의 사무실에 들른다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

선인장(2020)

한 달에 한 번, 전 애인의 사무실에 들른다. 내 선인장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헤어지기 전에 맡겼는데 다시 데려오지 못했다. 볼 때마다 그가 떠오를 테니까. 대신 한 달에 한 번, 전 애인의 사무실에 들른다. 선인장에 물을 주러. 종이컵으로 반 컵.

걸어가는 길, 걸음 수만큼 질문한다. 왜 많고 많은 화분 중에 선인장을 줬어.

매일 들여다보고, 해가 뜨면 내다 놓고, 해가 지면 들여다 놓고, 물은 얼마큼 줘야 하는데 또 하루에 몇 번에 걸쳐 줘야 하고, 가끔은 부드러운 헝겊으로 잎과 줄기를 매만져 줘야 하며, 공기는 통하게 두되, 센 바람은 막아줘야 하고, 말을 걸어주거나 음악을 들려주면 더 잘 자라는 식물을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열흘 온통 신경 썼는데 하루 잠깐 혼자 두었다고 줄기가 픽 쓰러지고 잎을 우수수 떨어뜨리는 그런, 더럽게 신경 쓰이고 까탈스러운 식물 말이야.

내 선인장은 안 그렇다. 한 달 내내 저를 거들떠보지 않아도 딱 한 번, 종이컵으로 반 컵의 물만 있으면 괜찮다고 살아가는 애다. 그런 선인장이 답답해서 화가 치민다. 물을 주러 가기 전에, 물을 주러 가는 길에 몇 번이나 떠올린다. 콘크리트 바닥에 선인장 화분을 힘껏 내던져서 와장창 깨부수는 그런 상상. 옥상 바닥에는 깨진 화분 조각과 내 선인장, 화분에서 쏟아진 흙덩이가 같이 나뒹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떠나는 나.

그러나 사무실에 도착하고 나면 선인장에게 물을 준다. 종이컵으로 반 컵.

전 애인은 새 화분을 들였다고 하니까. 햇빛도, 바람도, 가림막도 필요 없이 고작 물 반 컵이면 괜찮은 바보 선인장에게 한 달에 한 번 물을 주러 찾아갈 사람은 나 말곤 없으니까.

선인장이 죽었으면 좋겠다.

한 달에 한 번, 고작 반 컵의 물로 연명할 게 아니라, 내가 물을 주는데, 애인도 물을 주고, 사무실 애들도 물을 주고, 사무실에 찾아오는 사람들도 물을 주고, 먼 곳에서도 물을 주러 오고, 하여간에 물도, 인사도, 관심도, 애정도 너무 넘치게 받은 나머지, 화분은 출렁출렁해지고 선인장은 물렁물렁 거리다가 콱 죽어버리면 좋겠어.

한 달에 한 번, 전 애인의 사무실에 들른다.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선인장에게 물을 주러. 종이컵으로 반 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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