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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지 Apr 07. 2020

봄의 아량

봄만이 시간을 넘어 봄이 된다.

속살처럼 연한 새싹이 땅을 업어 올리고 봄이 된다. 꽃잎보다 가녀린 나비가 자기 자신을 찢고 나와 봄이 된다. 봄은 깨지고 부서지는 걸 두려워 않고 나를 지켜낸 자들이 피워낸 오늘. 여름처럼 뜨겁지도, 가을처럼 풍성하지도, 겨울처럼 길지도 않지만 봄은 당신이 아는 가장 강인하고 경이로운 이름이다. 부드럽다고 무르게 보면, 상냥하다고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아무도 다치지 않도록 두는 건 아무에게도 지지 않는 계절이 베푸는 아량인 걸.

시간이 흘러 여름이 되고, 시간이 흘러 가을이 되고, 시간이 흘러 겨울이 되지만, 봄만이 시간을 넘어 봄이 된다. 어쩌면 봄은 시간이 아니라 장소, 아님 다른 그 무엇인지도 모르지. 봄으로 가고 싶어 다시 일어난다. 빼빼 말라 앙상한 겨울 가지 같은 몸을 하고서는. 해사한 빛을 따라서.

*cover: Mark Roth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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