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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지 Sep 05. 2021

세상 하나뿐인




할리퀸의 ‘세상 하나뿐인’이라는 노래를 아시는지? 1998년 SBS에서 방영한 ‘승부사’라는 드라마의 배경 음악이다. ‘승부사’는 송승헌, 김남주, 김소연, 구본승 등 당시 제일 잘 나가던 청춘스타들이 총출동한 작품으로 정확하게 떠올리긴 어려우나 주인공 사이에  음모와 미행, 폭행이 난무하며, 한밤중 타사에 무단침입해 기술을 훔치는가 하면, 볼펜으로 도청을 하고, 피랍되기도 했던 드라마 속 사건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 네땡땡 검색 결과, ‘법 위에 군림하는 권력형 비리 등을 사기를 이용해 응징하는 이야기’라고 하니 현대판 홍길동전쯤 되나보다 —.


나는 당시 초딩 저학생년생 정도 됐었고, 오후 10시-10시 50분이라는 방영 시간은 어린이에겐 꽤 늦은 시간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눈동자가 데굴데굴 뒤로, 고개가 꾸벅꾸벅 앞으로 넘어가는 걸 겨우 참으며 드라마를 기다렸다. 그러다 백기를 들고 방에 돌아가 쿨쿨 잠에 빠지는 일도 다반사였지만 일단 10시까지만 기다리면야 드라마를 보면서 졸 걱정은 없었다. 고사리손에도 땀을 쥐게 하는 스릴 있고 박진감 넘치는 전개에 밤잠이 다 날아가기 때문이다. 오히려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각성상태가 지속돼 어둠 속에 이불을 덮고 두 눈도, 정신도 또랑또랑하게 말짱했다.


'세상 하나뿐인’은 송승헌과 김남주의 극적인 로맨스 장면에서 몇 번이고 깔렸다. 드라마처럼 OST도 박력 그 자체다. 전주도 없이 ‘쎄쌍 하나뿌닌!!! 나의 전부여어어~~~’하고 노래부터 냅다 시작하고, 이어 전기 기타(록알못이라 틀릴 수 있음)를 지지지징 연주하는 록발라드 곡이다. 뮤지션의 탄산음료 같은 목소리, 전류처럼 연신 찌르르 흐르는 악기 소리와 더불어 내 심장을 강타한 요소는 가사. (그렇다. 그때부터 감언이설에 취약했다.)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세상 하나 뿐인 나의 전부여. 함께 했던 시간은 결코 쉽게 지나간 건 아니었지만 이보다 더 힘겨운 날도 너를 위해선 맞이할 수가 있어. 힘이 들어도 참아낼 수가 있어. 세상 하나뿐인 나의 전부여. 처음의 설렘을 언제나 느껴왔어. 다시 시작해도 후회는 없어. 시간을 되돌린다고 하여도 널 다시 사랑할 거야.’


호오. 서로 만나서 (개)고생을 면치 못하게 된 상황인데(드라마 얘기), 그래도 사랑한다고? 시간을 되돌리면 내빼는 게 아니라 심지어 다시 사랑할 거라고?!!!


가끔 ‘사랑은 행복하기 위해 하는 거지~’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영 공감이 안 된다. 마냥 편하고 행복하려면 혼자 있는 편이 훨씬 낫지 않나. 혼자 좋아하는 거만 하고 살면서. 사랑에 빠지면 심경 더 나아가 인생까지 복잡해지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당연하다. 한 사람은 하나의 변수. 혼자도 문제투성이인데, 연애해서 사람이 둘이다? 이하생략. 그래서 내게 사랑은 마냥 행복한 게 아니라(누군가를 만나 여태 행복하기만 하다면 아직 환상에 빠진 단계라 말해주고 싶다) 행복하고, 불행하고, 편안하고, 불편한 순간이 두 배, 세 배로 늘지언정(그러나 행복 없이 늘 불편하고 불행한 것만도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과 함께인 편을 택하는 것이다.


물론 드라마를 보던 때야 이런 구체적인 사랑의 견해까지 있진 않았지만, 기본적인 철학의 틀은 있었나 보다. 고작 십여 년밖에 안 산 여자애한테도 크나큰 울림으로 다가온 걸 보면. 비슷한 상황으로 영화 ‘타이타닉’에서 인상에 남았던 곳 역시 (스포주의) 잭이 얼음장같이 차가운 바다에 빠져 제 생명이 파리목숨처럼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로즈를 보며 자신 인생에서 최고의 행운은 타이타닉 호의 티켓을 구한 거라 (그리고 로즈와 사랑에 빠진 것)고백한 장면이다.


범인凡人 밖에 못 되는 난 이토록 숭고한 정신을 챙기지 못했다. 모르고야 어쩔 수 없지만서도 알고 나면 못할 것 같다. 사랑이든 뭐든 너무 아픈 것들은.


그래서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기적 같은 사랑의 모습을 볼 때 혹은 기대할 때 절대적인 사랑의 노래, ‘세상 하나뿐인’을 듣는다. 이정도면 길티 플레저가 아니라 그냥 플레저. 한 번 틀면 반복 재생은 옵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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