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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지 Jan 31. 2023

독서라는 해악

독서란 어찌나 과대평가를 받는지.

독서란 어찌나 과대평가를 받는지. 글 좀 읽는다고 대단할 것도 없다. 다독가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대부분) 그냥 생각이 무진장 많은 사람이다. 무진장 많은 생각은 딱히 득 될 것도 없거니와 되려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내가 딱 그 꼴이다. 취미랄 게 마땅히 없는 데다 놀 줄도 몰라서, 비는 시간에 글이나 주워 읽은 사정을 남들은 모르고 내가 (실제보다) 똑똑한 줄 안다. 내 입으로 한 거짓말도 아닌데 양심의 가책에 시달려야 했으니 독서란 이토록 유해하다.


몇 해 전, 책을 아예 못 읽던 시기가 있었다. 8-9개월 정도. 한글을 깨친 후로 무엇 하나 읽지 않은 건 그때뿐이었다. 나는 마치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하루아침에 걸을 수 없게 된 사람처럼 독서 능력을 상실했다. 글이란 게 견딜 수 없이 무거웠다. 한 줄 읽으면 심장이 저 아래 지하까지 쿵 내려앉기 일쑤였다. 문자에 깔려 죽을 수도 있겠다고 직감했다. 글은 무겁지 않으면 너무너무 참을 수 없이 가벼웠다. 오 문장이여. 그것은 읽기를 다 마치기도 전에 흔적도 없이 휘발해 버리지 않았는가. 후르르. 같은 단락을 다섯 번씩 읽어도 기억에 남는 게 없는데 어떡해. 자괴감 폭발. 글 한 줄 못 읽던 시기에도 독서란 그토록 유독했다.   


글 읽는 사람을 조심한다. 글 쓰는 사람은 더더욱 조심한다. 그도 나와 같은 심연을 가지고 있을까 봐서. 나처럼 소심하고 쿨하지 못할까 봐서. 나만큼 문제는 투성인데 답은 없을까 봐. 백지장은 맞들면 나을지도. 책벌레가 두 명이면 독서의 해악이 곱빼기가 되는 건 확실하다. 여러분, 기억해 두십시오. 독서와 마찬가지로, 독서가가 둘 이상 모이는 일이란 이다지도 해롭습니다.  


글쟁이들이여, 책벌레들이여. 건강을 지키고, 목숨을 구하려거든 때때로 글로부터 피신하라. 그렇지 않으면 큰 변을 당하게 될 터이니. 왜냐고? 좋은 글은 의미를 지닌 글이기 때문이다. 좋은 글을 좋아하는 사람은 (글 말고도) 오만 데에서 의미를 찾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삶이란 게 의미가 없거든. 삶의 목적은 사랑도, 행복도, 신도, 꿈도, 돈도 아니고 그냥 살아가는 과정 그 자체다. 근데 글을 좋아하고, 의미를 좋아하는 사람은 삶에서도 자꾸 의미와 목적, 의도 같은 걸 찾아서 헛물을 켠다. 마침내 지독하게 해를 입고 말아.


독서란 어찌나 과대평가를 받고 있는지, 책에 무방비로 노출된 사람과 사회는 몹시나 위험에 처해있다. 이 글을 읽었다면 당장 도망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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