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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지 Apr 07. 2020

눈을 감고 바다를 생각해

 영원 같은 찰나. 찰나 같은 영원.

<영 앤 뷰티풀(Jeune & Jolie)>

눈을 감고 종종 바다를 생각해. 누워서 물 위에 둥둥 떠 있다고 상상하는 거지.

저 멀리 보이는 호텔. 저만큼 작아진 사람들. 바닐라 아이스크림 같은 곱고 부드러운 백사장. 야자수 잎이 천천히 너울거리는 걸 보며 바람의 정도를 가늠하는 건 마음이 편해지는 일이야. 멀리 헤엄쳐 왔어도 돌아갈 곳이 있단 뜻이잖아. 그걸 한 번 바라보곤, 마음 놓고 물 위에 눕는 거야.


겁먹지 말고 귀가 물속에 잠기도록 두는 게 중요해. 수면과 평행하게 누워야 목에 괜한 힘이 들어가지 않거든. 머리를 잠기도록 두면 몸이 뜨는 원리지. 고작 머리를 띄우려고 하면 몸은 다 잠겨 버릴 거야. 선택은 당신의 몫.

빛이 넘쳐나는 곳에선 눈을 감아도 다 어두워지지 않더라. 눈꺼풀은 그저 도톰한 붉은 이불을 덮은 것만 같을 거야. 숨의 파동이 느껴지니. 바다 한가운데선 숨소리가 잘 들려. 별안간 내 숨이 대단한 요소라도 된 것처럼.

그러다 눈을 뜨면 온 하늘이 눈동자로 밀려 들지. 거부할 이유가 없지만 거부할 새도 없어. 하늘과 바다는 온통 푸르니까 경계를 나누는 일은 무의미해. 팔을 위아래로 저으면 물 위에 떠있는 건지, 날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 거야. 바다의 새가 될 수 없다면 작은 연못의 소금쟁이가 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지 않니. 물거품처럼 증발해버릴지언정 언제까지고 그렇게 있고 싶어. 바다에선 시간이 늘 모자라. 영원 같은 찰나. 찰나 같은 영원.

오후에 호텔로 돌아오면 얼굴과 몸에 햇빛의 그을음을 발견해. 거울에 비친 몸은 노릇노릇 익었는데 가슴만 하얗게 남아 마치 가슴만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아.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거울 저편의 나는 광대처럼 춤을 추지.

궁금했어. 내 몸만 왜 그렇게 치타처럼 얼룩덜룩 타는 건지. 민정이가 그러는데 물속에서 타서 그렇대. 매끄럽게 태우려면 물 밖에서 가만히 누워 있어야 한대. 우리 자매처럼 물에 풍덩풍덩 뛰어드는 사람은 피부 위에 맺힌 물방울에 빛이 굴절돼서 타기 때문에 동그란 그림자를 남기는 거야. 얼굴은 뭐... 1년 내내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도 그런 날 하루면 아무 소용없어. 주근깨랑 잡티가 정모라도 하듯 몰려들고 결속력 강한 사이비 종교단체처럼 다음 해까지 흩어지는 일이 없거든.

기회가 생기면 망설임 없이 또 그렇게 풍덩 뛰어들어, 발랑 누워있겠지. 얼른 그날이 오면 좋겠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 (Blue Is the Warmest Colour)>

*cover: Gideon Ru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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