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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지 Jun 30. 2024

감정의 파도타기

#1 무너짐 감정의 댐, 동료의 죽음, 부정 방어기제

충격적인 소식


그날은 평범한 화요일이었다. 오후의 나른한 공기가 클리닉을 감싸고 있었고, 나는 바로 이어 질 내담자의상담 세션을 준비하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맑은 하늘이 펼쳐져 있었고, 동료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었다.


그렇게 별다른 일 없이 지나가던 이 평화로운 순간은 나에게 걸려온 한 전화로 인해 산산조각 나버렸다. 수화기를 들자마자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상대편의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나오는 것만으로도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손은 떨려왔다. 귓가에서는 웅웅 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눈앞이 흐려졌다. 전화 너머로 들려온 소식은 귀로 들려,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 문장인데, 도대체가 믿기지 않았다. 바로 하루 전까지도 커피를 사 마시며 시시껄렁한 농담을 함께 나누던 나의 동료 심리학자가 그가 담당하던 환자의 우발적 행동으로 인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뇌는 이런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을 때 일시적으로 정보 처리 능력이 저하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갑작스러운 스트레스 상황에서 우리 몸은 '싸우거나 도망가기' 반응을 보이고, 이때 아드레날린과 코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된다. 그 결과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호흡이 가빠지며, 근육이 긴장되는 등의 신체적 반응이 나타난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걸 다른 동료들에게 전달을 해야 하는데, 도대체 머리가 정리가 안되고 몸도 따라주지 않더라.


전화를 끊고 나서도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럴 리가 없어"라는 말만 계속 중얼거렸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동료의 모습만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항상 내담자들에게 헌신적이었고, 그들의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 곧 둘째 아이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어서 baby shower 준비를 위해 정신없다고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던 그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만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에게 '부정' 방어기제가 강력하게 발동하기 시작했다.


'부정'의 방어기제는 특정한 사건이나 가치를 반복적으로 부정하는 태세를 말한다.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나 위험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 이와 관련된 것을 회피하고, 지각을 왜곡하거나 현실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방어기제다. 부정에는 모든 사실을 부정하여 차단하는 것이 있고, 사실은 받아들이지만 그것의 심각함을 외면하는 부정이 있고, 사실과 심각함을 모두 받아들였지만 책임을 전가하는 부정이 있다. 갑작스러운 놀라운 현실을 마주하였을 때, 대처과정에 첫 번째로 부정 단계를 보이곤 한다.

 

다른 동료들에게 연락해 사실을 확인했지만, 모두가 믿기 힘든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슬픔, 분노, 혼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모두 마음의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임에도,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클리닉 전체가 충격에 빠져 있었다. 어떤 이는 눈물을 흘렸고, 어떤 이는 말을 잃었다. 평소 활기차던 공간은 순식간에 침묵에 휩싸였다. 모두가 슬픔에 잠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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