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지 Oct 31. 2024

다들 이렇게 힘들까요?라는 질문

상담실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의 답

오늘도 상담실 문이 조심스레 열립니다. 새로운 내담자를 맞이할 때마다, 저는 그분의 첫 발걸음에 담긴 용기에 깊은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십수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상담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신 수많은 분들이, 거의 비슷한 이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선생님... 이런 걸로 상담을 받아도 되는 걸까요? 다들 이 정도는 힘들지 않나요?"


이 질문,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복잡한 심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마치 종이를 접어 작게 만든 지도처럼, 짧은 질문 속에는 마음의 광활한 풍경이 꼭꼭 접혀 있지요.


또 종종 이 질문은 교묘하게 가려진 구조요청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제발 누군가 내 고통이 특별하다고, 이렇게 힘들어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해주세요"라는 간절한 바람이 묻어나는 것을 느낍니다. 때로는 자신의 취약함을 인정하기 두려운 마음이 "남들도 다 이렇지 않나요?"라는 방어적인 질문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종종 고통을 단순화하려 합니다. '스트레스', '우울', '불안'과 같은 단어들로 복잡한 감정을 정리하려 하지요. 하지만 실제 경험하는 고통은 이보다 훨씬 더 미묘하고 복잡합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기가 힘들다는 한 마디 속에는,

- 끝없는 피로감과 싸우는 지친 몸의 이야기

- 하루를 시작할 의미를 찾지 못하는 실존적 고민

- 세상과 마주하는 것이 두려운 불안한 마음

-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감

이 모두가 뒤엉켜 있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고통은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철저히 개인적이면서도 동시에 깊이 보편적입니다. 마치 지문처럼, 모든 사람의 고통은 같으면서도 다릅니다. 우리 모두는 비슷한 종류의 감정을 경험하지만, 그것이 각자의 삶에서 만들어내는 무늬는 전혀 다른 모양을 그립니다.


현대 사회는 고통을 더욱 복잡하게 만듭니다.

- 끊임없이 성과를 요구하는 사회적 압박

- SNS를 통해 끊임없이 비교되는 타인의 삶

- 불확실성이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적 특성

- 깊은 관계의 결핍과 만연한 고독감

- 휴식조차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모순적 강박


이러한 맥락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고통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더 큰 그림 속에서 이 고통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담실에서 제가 하는 일은, 이 복잡한 고통의 지도를 함께 펼쳐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통에 관해 이런 부분을 함께 바라보곤 합니다.


첫째, 고통에는 항상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막연히 '예민해서' 혹은 '나약해서'라고 생각했던 반응들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몸과 마음이 보내는 중요한 신호였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둘째, 고통은 종종 변화의 전조가 됩니다. 마치 봄이 오기 전 겨울이 가장 춥듯이, 때로는 가장 힘든 순간이 새로운 시작의 문턱일 수 있습니다.


셋째, 고통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그 무게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누군가 진심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고통을 인정해 줄 때, 조금씩 다시 일어설 힘을 얻게 됩니다.


치유의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직선적인 회복의 궤적이 아니라, 때로는 앞으로 때로는 뒤로 움직이는 춤과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지 속도가 아닙니다.


이 여정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1. 자신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2. 그 고통이 전하는 메시지에 귀 기울이기

3. 필요한 도움을 청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기

4. 자신만의 회복 속도를 존중하기

5. 작은 변화도 의미 있게 바라보기


"다들 이렇게 힘들지 않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네, 많은 사람들이 힘듭니다. 하지만 그것이 당신의 고통을 덜 중요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당신의 고통은 당신만의 것이며, 그래서 특별합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려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상처 회복의 시작입니다."


당신이 오늘 이 글을 읽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하는 첫걸음을 내디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용기 있는 첫걸음을 응원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번아웃이 패션이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