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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지 Nov 06. 2024

뮤지컬 광화문연가 가 던지는 질문

당신의 여생이 단 1분 남았다면?

낙엽이 쌓이는 11월의 저녁, 뮤지컬 '광화문 연가'의 여운을 안고 극장을 나섭니다. 쌀쌀해지는 가을 공기가 볼을 스치고, 머릿속에는 한 가지 질문이 맴돕니다.


"내 여생이 단 1분 남았다면..."


단풍이 물들었다 져가는 것처럼, 우리의 생도 언젠가는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겠지요. 가끔은 이런 질문이 일상을 흔들어 깨우고, 잠들어 있던 마음을 두드립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소중한 진실들을 환기시킵니다.


우리는 종종 시계를 봅니다. 하지만 정작 시간이 어떤 의미인지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지요. 1분이라는 시간은 객관적으로는 60초, 3600분의 1시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속에서 이 1분은 때로는 영원처럼 느껴지기도, 때로는 숨 한 번 쉴 틈도 없이 지나가기도 합니다.


첫사랑과의 1분은 영원과도 같았고, 시험장에서의 마지막 1분은 번개처럼 빠르게 지나갔던 것처럼 말이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뇌는 감정에 따라 시간을 다르게 경험합니다. 특히 위기의 순간, 또는 극도의 행복을 느낄 때 시간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 됩니다.


출근길의 익숙한 발걸음, 사무실 창가에 비치는 아침 햇살, 동료와 나누는 따뜻한 커피 한 잔. 우리는 이런 소소한 순간들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마지막 1분'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보면, 이 모든 순간들이 얼마나 특별하고 아름다운지 깨닫게 됩니다.


저는 상담실에서 많은 내담자들을 만납니다. 그들과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가장 자주 듣는 후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의 소중함을 미처 몰랐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저녁 식사,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모님의 주름진 손길... 이런 평범한 순간들이 실은 인생의 가장 빛나는 보석이었던 거지요.


마지막 1분을 상상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은 관계입니다. 성공이나 업적이 아닌, 함께 했던 사람들의 얼굴입니다. 이는 우리 존재의 본질은 관계성에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이루려 애쓰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더 높은 자리, 더 큰 성과, 더 많은 소유... 하지만 마지막 1분 앞에서 진정으로 붙잡고 싶은 것은 사랑하는 이의 손길, 그들과 나눈 따뜻한 미소, 함께 흘린 눈물의 순간들 일 겁니다.


광화문 연가의 한 장면처럼, 인생은 수많은 만남과 이별로 수놓아집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성장하고, 더 깊어지고, 더 따뜻해집니다. 마치 오래된 나무가 나이테를 더해가듯이 말이죠.


내담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그림자나 미래의 불안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마지막 1분'이라는 상상은 우리를 철저히 '지금 이 순간'으로 데려옵니다.


봄날의 살랑이는 바람, 창가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 아이의 웃음소리... 이런 작은 순간들을 온전히 느끼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요? 명상가들이 이야기하는 '현재의 기적'은 바로 이런 순간들 속에 숨어있는지도 모릅니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 두려움을 마주하는 순간, 오히려 더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마치 어둠이 있기에 빛이 더욱 빛나는 것처럼, 유한성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더욱 강렬하고 아름답게 빛나기 시작합니다.


상담실에서 만난 한 내담자는 큰 병을 겪고 난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이렇게 감사한 일인 줄 몰랐어요. 이제는 하루하루가 선물처럼 느껴져요."


극장을 나와 늦가을의 거리를 걷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조금 달라 보입니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노란 은행잎 한 장, 발걸음을 재촉하는 행인들, 가로등 아래 깔린 그림자까지... 모든 것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마지막 1분이라는 질문은 결국 우리에게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답은 의외로 단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 곁의 소중한 이들을 바라보세요.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온기를 느껴보세요. 마치 늦가을의 따스한 햇살처럼, 우리 곁의 소중한 순간들을 하나하나 마음에 담아두는 것.


때로는 인생이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숨 가쁜 일상 속에서 지치고, 흔들리고, 넘어질 때도 있겠죠.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기억하세요. 당신의 존재 자체로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마지막 1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의 작은 미소가, 따뜻한 말 한마디가, 스쳐가는 눈빛이 누군가에게는 그날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실수도 하고, 후회도 하고, 때로는 길을 잃기도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이 우리를 만드는 소중한 조각들이 되어주니까요. 당신의 불완전함조차도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삶의 매 순간을 마지막 1분처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간다면, 언제든 마지막 1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때가 되면, 깊은 감사와 함께 미소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참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이렇게 살아있어서, 숨 쉬어서, 사랑해서 행복했다"라고 말하며.


이것이 어젯밤 뮤지컬이 저에게 들려준 멜로디입니다. 그리고 그 멜로디는 낙엽이 쌓이는 이 가을밤처럼, 제 마음속에 오래도록 머물며 작은 위로가 되어줄 것 같습니다.


당신의 오늘이 그리고 내일이, 그 어떤 순간보다 빛나고 의미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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