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 그 순수함의 그림자

순수했던 그때의 나를 다그치지 않고, 다시 안아주는 연습

by 고민지

어떤 일이 익숙해질수록 나는 ‘초심’을 자주 불러오려 했다.


처음의 설렘, 처음의 열린 마음, 올챙이 시절의 그 작고 투명한 시선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초심은 누군가와 마주하는 내 태도를 조금 더 부드럽게, 따뜻하게 지켜주는 힘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이 일을 ‘왜’ 시작했는지를 잊지 않기 위한 작은 북극성이기도 했다.


그런데, 몇 년 전 겪었던 실패 이후 문득 이런 생각이 엄습했다.

“혹시… 초심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닐까?”


늘 긍정이라는 열매만 가득 품고 살았던 나에게 ‘불안’이라는 낯선 감정이 들어왔다. 이상과 희망을 안고 시작했던 첫 사업의 실패가 조용한 트라우마로 남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무언가를 구상하자마자 곧장 추진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실패 이후, ‘이게 정말 맞는 걸까?’ ‘놓친 건 없을까, 부작용은 없을까?’

의심하고, 고민하고, 검토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애초에 사업을 한다면 당연히 그런 검토는 필수 아닌가?’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맞다. 그게 상식이고, 그게 기본이다. 그래서일까. 나조차도 가끔, 그때의 나를 바보처럼 느낀다.)


기록을 좋아하는 나는 늘 써오던 노트를 펼쳐 사업을 시작하던 2017년의 흔적을 다시 읽어본다. 그리고 발견한다. 그때의 나는 온통 긍정 에너지와 열정으로만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는 것을.


그렇게 다시 읽은 그 시절의 기록 속 나는 너무 예쁘고, 너무 순수했고, 그래서 너무 아팠다.

초심은 잘못된 게 아니라 부족했고, 미완성이었다.


그러나 그 미완성은 지금의 내가 채워갈 수 있는 여백이 되었다.


이제는 안다.

무조건적인 긍정보다는 균형 잡힌 현실감이,

그리고 다시 시작할 줄 아는 유연함이 나를 더 오래 살아가게 한다는 걸.



초심은 간직하되, 그 안을 끊임없이 다시 살피는 것. 그게 지금의 나에게 가장 정직한 태도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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