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날까지, 새로운 것을 배우는 초보자로 살고 싶다.
요즘은 아래 세대의 의견이나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방식만을 고수하는 어른들을 “꼰대”라고 부른다.
그 단어를 들을 때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라고 예외일까?’
나 역시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나만의 기준과 습관이 굳어질 테고, 그건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답답함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사람의 ‘꼰대력’은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상승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한 해 한 해 터득해 가기 때문이다.
그 오랜 습관들이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작은 세계’를 만들어가고, 그 세계가 넓은 세상을 막는 벽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꼰대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우리는 모두 유년기의 유연함보다 조금씩 경직되어 가는 존재들이라는 것.
그 정도와 편차는 다르겠지만,
나는 스스로를 잘 안다.
고집도 세고, 우직한 성향도 있고, ‘조금만 방심하면 꼰대가 되기 딱 좋은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종종 이런 다짐을 되뇐다.
“어떻게 하면 꼰대력 상승을 지연시킬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내가 평생 성악이라는 전공 하나만 고집했다면 지금쯤 꽤 콧대 높은 사람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정통 성악가의 길을 따르기보다 그 길을 바탕 삼아 글을 쓰고, 교재를 만들고, 향기 테라피를 배우고, 강연도 하고, 레슨도 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며 개발하고 있다.
그렇다.
나는 여전히 배움이 필요한 학생이다.
물론,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든 사람들 중에도 진정한 인격과 유연함을 지닌 분들이 많다. 그분들을 생각하면 존경의 마음이 든다.
다만 나는,
나라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잘 알기에 계속해서 배우는 삶을 살아가야 덜 고집스럽고, 덜 굳어지며 덜 답답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안다.
이 글을 쓰며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나는 죽기 직전까지도 ‘새로운 분야의 초보자’로 남고 싶다.
지금껏 쌓은 경험과 전공은 고스란히 전하돼, 그 안에 갇히지 않으려는 노력을 평생 하고 싶다. 그 다짐을 지켜나가는 데만도 아마 앞으로 남은 모든 날들이 모자랄 것 같다.
바라기는 내 세상이 끝나는 그날까지 더 넓은 세상으로 걸어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 속에서 계속 배워가고 싶다.
그렇게 “나는 온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꾸준히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기쁨 속에 살 수 있다면, 나는 끝까지 꼰대가 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from. 오늘도 유연한 사람이 되고 싶은 한 사람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