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갔던 2006년 6월의 인천공항,
그때 비행기에 오르기 전,
뒤를 한 번 스윽 돌아보며 했던 생각,
진심 반, 농담 반, 그냥 머리에서 쑥 나온 생각,
굳이 의미를 두진 않았지만 이상하게 머릿속에선 지워지지 않는 생각이 있는데
'한국을 이렇게 나갔다가 한....... 10년 후에 돌아온다면 어떨까?'
믿기 힘들지만 그리고 정말 10년이 흘렀다.
And really,
I haven't made it there in last 10 years.
알렉스와 이안.
운명이라는 게 있다면, which I think it is...
마치 글을 쓰는 것을 내가 운명이라고 느끼는 것처럼,
난 이 아이들에게 운명을 느낀다.
사람들은 제이와 내가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면 다들 너무나 즐거워한다.
신기해하고, 어쨌든 스토리가 길고 나름대로 운치도 있고,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And of course, there was a time when I felt like my love story was everything,
I know now, that it all came down to this two little boys,
who not only absolutely changed my life,
but pleasantly completed my life for better and gave me better purpose of life.
After all,
it was like redemption to me.
REDEMPTION
In theology, redemption is forgiveness or absolution for past sins or errors and protection from damnation and disgrace, eternal or temporary, generally through sacrifice.
2008년 여름, 캐나다 생활 2년 차,
나는 그때 동네에 여름방학을 맞아 집에 있는 10살, 12살의 두 이탈리안 남자아이들의 보모를 하고 있었다.
레슬링과 공놀이를 좋아하는 덩치 좋은 애들이라 아침 8시에 가 4시 반까지 하루 종일 체력을 사용해 놀아주고 끝나 집에 돌아오면 파김치였다.
제이의 사랑을 받는 것은 절대적이었지만
Maybe like 55 % OF MY THINKING HEAD was also telling me,
'What you doing, girl? HERE? (조금 흑인식 발음으로 눈까지 굴려가면서 영어 하지 말입니다.)'
친구들은 이제 대학 졸업반이거나 졸업했거나 이제 직장들까지 진출했는데 난 이 시골마을에서 하루 종일 애들이랑 놀아주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이지?
그래... 남들과 비교하지 말자.. 스트레스 받지 말자..
그러면서도
I was loosing it, (에세이 BLESSED 편에서 읽어주세요!)
And I was about to loose it all.
Then, there was Alex.
알렉스를 처음 낳았을 때는 운전면허증이 없어서 차가 있어도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딜 갈래야 갈수가 없었다.
그리고 채어링 크로스에는 빠른 인터넷도 없었다. 난 세상과 단절되어 살고 있었다.
제이는 당시 일요일 밤에 가, 금요일 아침에나 돌아오는 출장 일을 매주 다니고 있었고 그가 인근에서 일하고 집으로 매일 돌아올 수 있는 삼촌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한 5년 전까진
전에 살던 채어링 크로스에선
언제나 알렉스와 나뿐이었다.
세상엔 정말 이 아이와 나 뿐이었다.
살고 있는 건지, 꿈을 꾸고 있는 건지,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때도 있었다.
아이를 낳고 산후 조리고 뭐고, 제이가 바로 일하러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자연분만을 하고, 젖을 먹이고, 그래도 청소도 하고 밥도 하고 하다 보니
알렉스를 낳고 한 육 개월 간은 발을 바닥에 디딜 때 마치 가시 바닥을 걷는 느낌이었다.
애 낳고, 그간 불린 살 싹 다 빼고,
예쁘게 매일 메이크업 하고, 고상하게 애 돌보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그림과 나는
딴 판 이었다.
글이고 뭐고,
나는 애 젖 먹이고 기저귀 갈고, 빨래하고,
애가 아프기라도 하면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하고 다음 날 아침이면 전 날 마치 다시 출산을 한 것 같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포대기를 매고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각오로 다시 밥을 했다.
낮밤도 바뀌어 살아보고,
아이랑 혼연일체, 물아일체 해서 같이 자고, 먹고, 싸고
오로지 이 아이를 위해 존재했다.
정말 독박 육아는 전쟁이었다.
It was really brutal in the beginning,
but it got easier and easier, though.
조금 멀어져 있던 제이와 나 사이의 매듭을 지어준 것도
제이와 제이 아빠 사이의 멀어졌던 가족의 끈을 이어준 것도
내가 캐나다를 집으로 삼고 뿌리를 내리기로 한 것도
운전면허증을 따고, 영어를 더 잘하게 되고, 음식을 더 다양하게 하게 된 이유도,
결혼을 하고 영주권을 획득하게 한 것도 모두 아이들 때문이었다.
And also,
내가 겪어보지 못한 '좋은 부모'가 내 아이들에게는 되고 싶단 마음은 made me and Jay strike forward no matter what,
learn to be patient,
experienced what nice, normal childhood would be, by giving my children one.
limitless sacrifice,
love without expectation,
healed me from my broken childhood.
All because of that little child,
came from me.
And if I didn't had him then,
I wouldn't really know where I would be, right now.
And I would probably am still thinking wrong things in life and didn't grow up an inch from just being a woman.
누가 그랬죠?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고.
BECOMING A MOTHER and living motherhood,
I may gave a birth to those children
but they filled my life to fullness.
And so,
I think, everything happened to me,
to meet, to have, to raise,
for me to be a mother to these children.
And tha,t
is my destiny.
I don't know about you all,
but ask for me,
I feel it, every waking moments of me.
어린아이들의 엄마로 아직도 갈 길이 멀고 할 일도 많지만
I know I'm on a good path.
And I'm thankful for that...
나는 종종 이 두 아이를 데리고 다시 그 인천공항으로 들어가 주변을 둘러보는 상상을 한다.
유학을 간다고 비행기를 타던 내가 너무 귀엽고 잘생긴 두 아이와 남편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방문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10년 전엔 내가 알리도 없었지.
하,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