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기를 연습하기

by 민지울

여자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나는 늦깎이 선생님이었다. 뒤늦게 강단에 선 만큼 그 각오가 대단했다. 새학기를 시작하기 전날 밤 스스로에게 말했다.

“너는 조카들에게 늘 인기 만점 이모였잖아. 당연히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을거야. 자신감을 가져.”

특히 내가 맡은 첫학급 아이들과는 특별한 인연을 만들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나의 예상은 무참히 빗나갔다. 모든 것이 쉬운 것은 없었지만 특히 내가 맡은 학생들의 마음을 얻기란 쉽지가 않았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와는 달리 나는 정말 공감을 많이 해주는 친구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가끔 맛있는 것도 사주고 칭찬도 많이 해주고 때론 유머 공세도 펼쳤는데 아니 이럴 수가. 학생들은 나의 뇌물과 칭찬, 나의 유머까지도 그다지 고마워하지도 반겨하지도 않았다. 점점 섭섭함이 커진 나는 결국은 더 무뚝뚝한 선생님이 되어가고 있었다. 학급에 들어가는 것이 부담이 되어 교무실에서 미적거리다가 일부러 늦게 들어간 적도 있을 정도였다.


2학기가 끝나 갈 무렵 교무실 책상 위에 놓여진 교지를 펼쳐보았다. 내 눈에 띈 것은 담임 선생님 이름으로 각 학급의 학생들이 지은 삼행시 코너였다.

내심 기대하며 재빨리 내 이름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나는 서둘러 교지의 책장을 덮어버렸다. 왜냐하면 내 삼행시는 아무런 성의도 없고 애정이란 하나도 담기지 않은 그저 그런 삼행시였기 때문이다. 다른 선생님들 것에 비하면 내 것은 너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너무 실망한 나머지 연륜이 있는 부장 선생님에게 가서 나의 비참한 심정을 고백했다.

“선생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요. 전 한다고 했는데... 너무나 화가 나고 나 자신이 부끄러워요.”

선생님은 나를 위로하며 자신의 경험담까지 들춰내셨고 그 덕분에 나는 감정을 조금 추스를 수가 있었다. 그리곤 내게 다정한 충고를 건내주었다.

“너무 잘해주려고 하지 마. 어떨 때는 그저 솔직해도 되.”

나는 그 말을 잘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다시 묻지는 못했다.


이듬해 새학기를 하루 앞둔 날 나는 또 나에게 다짐을 했다.

‘저번처럼 망치지 말아야지’

하지만 나의 의지와는 달리 올해도 나와 학생들의 사이는 삐긋삐긋거렸고 지난해에 비하여 큰 진전은 없는 듯 보였다.

어느덧 그럭저럭 한 학기가 지나고 멀리로 이사를 앞둔 나는 학교를 곧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곧 떠난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힘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더이상 사랑을 받으려고 학생들의 눈치를 보지는 말자. 하지만 진정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면 과감하게 하자.’

나는 그 전보다 더 강해졌으며 더 나답기로 했다.

여전히 아이들의 반응이 때로는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나는 거침없이 내 갈길을 걸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급식시간 문득 들어가 본 우리 반 광경에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교실은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질서와 배려를 배우기 힘든 요즘 나의 학급에서도 맛있는 반찬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부족한 반찬 앞에 힘없는 아이들은 그야말로 울상이었다.

나는 화가 났다. 감정표현이 잦았던 편이 아니었던 나는 내가 실망한 감정과 내가 아이들에게 진실로 기대하는 것들을 솔직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나는 사랑받는 선생님이 되기는 글렀구나. 이로서 아이들은 더 나를 증오하겠지’ 라고 속으로 예상하며...나머지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특히 혼이 난 학생들이 스스로 반성문을 적어와 내게 건내는게 아닌가. 그들은 울면서 잘못했다고 내게 말했고 나는 그들의 용기에 진실로 감동을 받았다. 서로를 진심으로 안아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후 우리 반 학생들은 언제나 내 말이라면 눈을 크게 뜨고 주의를 집중해서 듣기 시작했다. 나로서는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노력을 할 때는 안되었던 일이 힘을 빼고 나답게 솔직하게 다가갔을 때 서로의 진심을 알 수가 있었다.


우리는 타인에게 얼마나 진실할까.

우리는 사랑받고 싶은 나머지 나의 모습은 오히려 감추고 그들이 바랄 것 같은 모습만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았는가. 그렇게 우리의 감정이나 생각을 얼마나 자주 숨기게 되는가.

하지만 내가 할 말을 솔직하게 하는 것. 그것이 나의 이기심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얼마든지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미움을 받더라도 그래서 내가 혹여 상처를 조금 받더라도 내 감정이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해보는 것이야 말로 우리들의 관계를 더 진실되게 할 수 있다는 걸 나는 느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솔직해져도 돼. 그런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도 한 발자국 더 솔직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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