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배달되는 선물
모처럼 남편이 쉬는 날, 나는 아이를 맡기고 나갈 채비를 서둘렀다. 겨울이니까 두꺼운 패딩에 장갑까지 끼고 현관에 들어서니 아들내미가 쫓아와 "엄마, 어디가?" "나도 같이 가." 한다.
"엄마 여행가."
"밖에 너무 추워서 못가, 너는."
하고서 얼른 작별인사를 한다.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가 되기까지 종일 부엌과 거실을 오가며 분주했던 나의 일상과 분리되는 순간.
주부이자 엄마로서의 옷을 벗는 순간이다.
따스한 털 신안에 발을 구겨 넣으며 종종걸음으로 나와 밖을 향한다.
쉴 틈 없이 귀에 들리던 소리들이 소음만은 아니었을 텐데, 내 작은 귀에는 너무 많은 소리들에 담아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내 마음보다 훨씬 고요한 바깥세상.
운 좋게도 내가 사는 집 앞에는 바로 큰 강이 있어 그 강길을 따라 걷는 길이 곧 나의 산책길이 된다.
인적이 드문 시간, 그 아름다운 길을 나 홀로 소유하다니.
무성한 갈대 사이 길, 그 길을 따라 흐르는 풍요로운 겨울의 강, 그리고 물결 따라 자유롭게 누비는 철새들.
장갑을 낀 손을 꺼낼 수밖에 없다. 장갑을 벗고 셔터를 누른다.
찰칵, 찰칵
혼란스러운 세상에서도, 할 일 가득한 나의 하루에도
완벽한 자연을 맞닿아 나는 완전히 정지한다.
한참을 서서 그들의 언어를 들어본다.
강이 흐르는 소리
바람이 불어 갈대를 흔드는 소리
눈길 위를 걷는 내 발걸음이 내는 사각사각 소리
소화되지 못한 무한한 소음들은 사라지고 순수한 자연으로 내 마음의 갈증들이 사라진다.
고요한 그들의 질서에 발맞춰 걷다 보면 어느새 내 머릿속과 마음속은 정갈하게 청소가 된다.
나는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간다.
막다른 길이 나오는 지점이 되면 그제야 발을 돌려 돌아가야 할 곳으로 향한다.
이제는 슬슬 책임감의 무게를 실어 속도를 낼 구간이다.
해가 지기 시작하고 숨은 차기 시작한다.
실컷 비워낸 마음 위에 오늘 저녁 밥상에 오를 메뉴를 구상해본다.
오늘의 마무리부터 보름 남짓 남은 올해의 매듭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를 생각해본다.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내가 해야 할 일,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달려간다.
그때부터 나는 전속도로 집을 향해 달린다.
현관을 들어서는 순간 아이가 달려 나오며 하는 말
"엄마다!"
아이를 힘껏 안으며 다시 집 안으로 발을 내딛는다.
"엄마가 맛있는 거 해줄게. 잠깐만 기다려!"
자연이 주는 상쾌함을 업고 와 저녁 일상을 시작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이런 시간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과 자연이라는 선물을 꼭 꺼내어 풀어보았으면 좋겠다.
그 안에는 내가 나 스스로는 결코 만들 수 없는 것들이 가득 담겨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배달된 그 선물을 꼭 풀어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