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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울 Nov 01. 2020

입동

나의 행복한 날들에게

달력을 펼치니 어느새 입동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달력을 펼쳐 입동이라는 글자를 보자 우리 고향 우리 집이 생각이 났다.  

겨울의 우리 집 하면 늘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그건 4남매가 안방에 옹기종기 모여 밤을 까먹는 장면이다. 각자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순서대로 가방을 냅다 던지고 들어와 뜨뜻하게 데워진 바닥에 손을 올린다. 엄마가 덮는 두툼한 이불속에 손을 넣고 한 자리씩 차지하고는 드러눕는다.

안방 이불을 덮고 누워 있노라면

집집마다 밥 짓는 소리

엄마가 저녁을 차리는 분주한 소리

아빠는 언제 오냐고 서로 묻는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거울 앞을 차지하고 앞머리를 자르니 마니 서로를 봐주는 언니들, 거기 끼고 싶은 나, 그 사이 텔레비전 앞자리를 차지하는 막내까지.


한 솥 가득하게 쪄낸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밤들을 엄마가 펼치자 우리는 개구리가 펄쩍하고 뛰듯 뛰어 그 앞에 옹기종기 모여서 밤을 까기 시작한다.

큰언니는 큰언니답게 남동생 몫까지 까주고 부러워서 입이 잔뜩 나온 내 앞에 앉은 작은 언니는 본 척 만 척 밤을 입으로 가져가느라 바쁘기만 하다.

대문 밖에는 겨울이 성큼 다가와 추운 길에는 사람 하나 없는데 따뜻한 온기로 깊어가는 우리 집 식구들의 겨울밤.


그때는 그게 행복인 줄 몰랐다. 지나고 보면 장면 장면이 가슴 시려오는 기분 좋은 추억들.

다투고 화해하고 혼나고 웃고 울고 그렇게 뒤엉킨 세월들이 지나고 보니 다 행복이었다는 말을,

이제는 큰 아이 진로를 걱정하는 큰언니, 애 셋을 키우느라 정신없는 작은 언니, 이제는 직장에서 한자리하는 남동생에게

말할 수 있을까.


어린이날에도 하루 시간 내기가 바빴던 우리 아빠는 그럭저럭 엄마와 보낸 하루 끝에 손주 목소리를 듣는 낙으로 사시고

어린 내 팔에 비하면 팔뚝이 얼마나 단단한지 어떠한 짐도 번쩍번쩍 들던 슈퍼우먼 우리 엄마는 이제 손가락 마디가 휘어 설거지를 하기도 버거워하시는데

우리 남은 겨울이 저물어가는 동안에 서둘러 말을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함께 해 온 세월들이 너무 행복했다고.

그 시간이 참 그립다고.


아이와 놀이터를 전전하다 돌아와 아이가 갖고싶어하는 놀잇감을 찾다보니 평범한 나의 오늘도 저물고 있었다.

우리 아이도 훗날 그때 정말 행복했다고, 그립다고 내게 말을 건네줄까?


매일매일이 행복으로 가득 찬 날들이 아니라도 괜찮다.

지나고 보면 그때는 모든 것이 서툴고 부족해도 그것 그대로 켜켜이 시간에 쌓여 추억을 만들어내고 세월 속에서 행복이란 맛으로 숙성을 하나보다.

나도 그런 집에 엄마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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