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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울 Feb 07. 2021

깊은 일기

나의 아침. 그리고 일기


 새벽에 일어나는 일이 그리 벅차지 않은 요즘이라 알람이 울리면 눈을 뜨고 자연스레 털신을 찾아 신고 물 한잔을 따라 내가 서재라 부르는 작은 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갓 일어나 느끼는 찌뿌둥함도 서재로 들어서는 순간, 존재를 감추어버리는 마법을 매일 확인하곤 한다.

 꼬박 3년을 스스로를 돌보기에는 부족했던 시간, 체력, 그리고 마음이었다. 자도 자도 끝이 없는 피곤함, 책 한 페이지 읽기 어려운 여건에서 나의 마음과 영혼은 갈 길을 잃어버렸다. 사랑하는 아이를 돌보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지만, 엄마가 되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숭고한 일이었다. 그래서 더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엄마이지만, 나 자신이 되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다. 서재로 들어서는 그 아침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로서 존재할 수 있었다. 시간은 찾아내야 했다. 숨겨진 보물 같은 시간을 내가 꼭 발견해야 했다.

 작년 들어서는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하고 의구심을 갖던 일들을 고민 없이 시작하기로 했다. 시작이 두려워, 생각만 하다 만 일들을 어느새 나는 하나하나 시작하고 있었다. 어쩌면 너무 많은 일들을 시작해 제대로 하고 있는 일이 없을 지경이다. 그러나 생각했다. 마흔인 나는 이제 두려움 때문에 시작하지 못할 일은 없다고. 나는 한 생명을 책임질 엄마이기도 하고, 그리고 날 온전히 사랑할 나 자신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힘들었던 순간들이 내게 건넨 말을 기억하기로 했다.

"네 마음을 따라가. 그게 유일한 길이야."


 서재로 들어선 순간 차가운 공기에 정신이 바짝 차려진다. 그리고 뻣뻣한 몸을 의자에 앉혀 펼치는 것은 일기장이다. 기분이 내키는 대로, 손글씨로 쓰기도 하고, 키보드를 이용하기도 하며 나는 매일매일 한 줄이라도 쓰기 시작했다. 할 일은 많지만 일기를 쓰지 않으면 나의 귀한 아침 의식, 커피 마시기를 빼먹은 것 마냥 허전하고 기운이 빠졌다. 내 일기의 첫 줄은 항상 같았다.

'오늘 새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는 지나가고 오늘이 왔음을 환호하고 기뻐할 일임을 서서히 알아가는 나는, 어느덧 인생의 허리춤에 와있다. 그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일상, 특히 가장 평범하고 소소한 일들에 나는 한없이 감사해야 함을 알아가고 있다.



나는 왜 뜬금없이 눈물이 날까?


 그리고 나는 첫 줄 아래 깊은 숨을 들이마신다. 오늘은 특히 그랬다. 한참을 깜빡이는 커서 앞에 두 손이 시리고 부끄럽다. 그래서 지나온 일기들을 한번 들추어보았다. 종이에 적은 글들, 인쇄된 일기들을 한 장 한 장 펼쳐보았다. 방황 중인 오늘, 그리고 방랑 중인 나의 인생이 보였다. 글자로 새겨진 종이 위에 펼쳐진 것은 나의 말할 수 없는 고민과 감정들이었다. 일기 한 줄 쓰지 못하고 말없는 눈물로 시간을 채웠다.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한 나 자신을 마주하자 나는 울었다. 그것도 꺼이꺼이.

'나 왜 이러지? 왜 뜬금없이 눈물이 나지?'

 나는 이런 감정에 빠지는 순간이 몹시 두렵다.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시간에 맞추어 키보드를 두드리는 데는 익숙해졌는데 말이다. 나는 감정을 바라보고 글로 옮기는 일에 보다 더 편안함을 느낀다. 그런 나도 오늘은 이 통곡의 시간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나와 세상, 나와 다른 사람 간의 공감의 중요성을 역설하던 나는 과연 나 자신을 얼마나 공감하고 있었을까? 

 묵혀둔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예상치 못한 공간, 그리고 시간에 불쑥 고개를 든다. 그리고 나를 현재와 분리시켜 놓는다. 그 순간 나는 감정을 때려눕혀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 감정을 잘 보듬어야 할 것인가? 오늘도 못 본 척 지나가기는 어려울 듯하다.


째깍째깍 시계의 양 팔이 바삐 움직이는 동안, 복잡한 감정을 마주하기로 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감사하기 위하여, 만족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그리고 "너는 아직 멀었어."라고 한껏 냉정해지지 않았던가?

나는 내가 일기장에 습관처럼 적은 첫 줄만큼 인생에게 고마워하고 있었을까?

나는 이런 나를 진실로 사랑하고 있었을까?


내 감정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내 마음 깊이 숨은 또 다른 나에게 느끼는 미안함이었다. 애쓰느라 고단했던 나의 마음이 일기장 위에 그토록 빼곡히 쓰이는 순간에도, 나는 그 상처와 고통보다 '오늘 할 일'에 밑줄을 그어대고 있었다.

 문득 찾아오는 오늘 같은 날, 나의 글과 말과 마음이 일치를 향해 가는 이 편안한 시간만큼은 깊은 일기를 써내려 갈 수 있을 것 같다. 살아가는 나를 위한 글이 아닌, 그 안에 존재하는 나를 위해 말이다.

 가끔은 나를 위해 통곡하고 싶다. 해가 뜨고 할 일들이 닥쳐오기 전에.

짧고 강하게 나를 위해 울자. 그런 부끄러운 시간이 우리는 가끔 필요하다.

깊은 일기는 그러한 순간에 쓰이므로...

내 안에 숨은 '어리디 어린 나'의 순수한 눈망울을 바라 볼 수 있는 그 순간, 나는 오늘이 완전히 새 날임을, 고백할 수 있지 않을까.


깊은 일기를 쓰고 싶은 어느 날, 나를 외면하지 말기로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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