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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울 Feb 24. 2021

고요하기

 나는 잠이 많은 편인데 그 잠을 물리치고 가족들이 다 자는 이른 아침에 기어이 일어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 시간이 너무 좋아서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했다. 지난해 여름의 말미쯤이었을 것이다. 일찍 일어나기로 했을 때, 사랑하는 잠과 이별을 고하기가 너무 힘겨웠지만 해 낼 수 있었던 것은 더 사랑하는 것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시간은 늘 나를 위해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대분의 시간을 나는 '관계', '의무', '생계'와 같은 무겁고 진지한 단어들이 제대로 굴러가도록 허둥지둥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일어나 본 새벽, 그 시간에 나는 '할 것'이 없었다. 이상한 기분이 참 여유로웠다. 해야 할 것이 없었기에 내가 할 것들을 만들어내야 했다. 관계, 의무, 생계 등의 무거운 단어들을 제외한 가벼운 단어들을 꺼내어 들었다. 음악, 잡생각, 일기, 그림, 독서 등 나는 비교적 가벼운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책상에 앉아 집어 들고 있었다. 뭐 하나 깊이 하지는 못했어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시간마저 나는 좋았다. 오직 나를 위한 시간이 거기에 존재했다. 그곳에는 '시간 뒤'에 머무르던 내가 '시간 앞'에 서있었다. 비로소 시간을 쓰는 주인공이 된 듯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찌보면 특별할 것도 없는 이 시간, 나는 겨울의 말미에 서서, 내가 보낸 아침시간들을 돌이켜 보았다.


 핸드폰을 확인할 일도 없고, 거울을 볼 필요도 없고, 시계를 쳐다보지 않아도 되는 새벽 6시, 오늘은 고요 속에 머물고 있는가?


 어느새 고요해지기 위해 수많은 것들을 꺼내들고 있는 나였다. 언젠가부터 나는 무거운 단어에 대한 생각을 가벼운 단어로 풀어내고 있었다. 이를테면 내가 개선하기 힘든 어려운 관계에 대한 일기를, 나의 생계에 대한 독서를, 나의 의무에 대한 그림을, 풀어내려 하고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배경으로 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편안하기', 그저 나의 존재로 편안하기란 참 어려운 거였구나!


 이 새벽, 나 홀로 있는 안전함과 평화로운 고요 속에서도 난 세상과 연결되고 싶어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연결을 잘 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조급했고, 불안했다. 어쩌면 정말 고요하기가 불안했는지 모른다.


 그 불안한 고요함이 안전하고 온전함을 느낄 때 나는 내 마음을 마주할 수 있으리라.

세상이 고요한 것과 별개로 나의 마음이 고요해야 했다. 한 글자, '편안'이라는 글자를 종이 위에 쓰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스멀스멀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생산적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내 마음을 채우고 있었다. 이 새벽을 쓰임새 있게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앞서 있어서 어느 순간 내가 사랑하던 시간이 너무나 무거워지고 있었다.

 무엇이든 가벼워야 한다. 더더욱 가벼워져야 한다. 정, 두려움, 상처를 벗어던진   존재의 무게만큼만 짊어져도 괜찮다. 숨을 깊이 들이쉬어보자. 나는 숨만큼만 존재하는 것이 보이는가?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흘러가는 것을 잡으려고 하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삐뚤어진 것을 바로잡아 주려는 나의 모습, 느린 것을 빨리 가게 하려는 나의 모습이 허둥대고 있었다.

 하루하루 더 고요함에 머무르고 싶다. 나의 존재에만 머무르고 싶다. 흘러가는 것은 흘러가는 대로 잡지 않을 것이다. 삐뚤어진 것은 삐뚤어진 대로 자연스레 둘 것이다. 그리고 내 몸에 굳어진 '하려는 습관'을 내려놓고 싶다. 오직 나를 위한 시간, 고요한 아침에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만 추리고 추려내는 작업을 할 것이다. 나의 설레는 시간, 이 고요한 시간에는 말이다.


오늘 그대여! 온전히 편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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