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come closer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지울 Dec 05. 2020

엄마의 마음이 짙어질 때

아이의 병치레

아이가 아팠다. 간밤에 잘 놀고 잠든 아이 몸이 불덩이인 것이다.

'아' 코로나 덕분에 집콕하느라 감기에 걸릴 일이 없었던 올해, 12월 첫날, 아이 몸의 열을 감지한 직후 뱉은 짧은 탄식.

앞으로 나와 아이가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고생을 앞두고 뱉은 짧은 감탄사!

새벽 2시, 체온계를 챙겨 와 재어보니 38.5도. 아이의 몸을 어루만지며 그 옆에서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다시 잠이 들었다.


아이는 내 예상대로 오래 자지 못했고 덕분에 지속해온 나의 새벽 루틴은 포기해야 했다. '약 먹으면 빨리 나을꺼야' 나를 위로하면서. 그런데 낌새가 심상치 않다. 서둘러 병원 진료 후 집으로 돌아와 약을 먹자마자 아이는 토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토는 물만 먹어도, 업어주어도, 좋아하는 만화영화를 보여주어도 그치지 않았다. 배고파도 먹지 못하고, 해열제도 못 먹어 열이 나는 데로 참아야 하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내가 알게 된 것은 이럴 때는 그저 아이 곁에 있어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괜찮아. 우리 아기, 잘하고 있어!"

이 말밖에 할 수 없었지만 아이에게는 나름대로 위로가 되나 보다. 

아이가 힘없는 팔을 뻗어 나를 토닥토닥 위로한다.

"나는 로봇이 될 거야. 엄마를 도와주는 로봇!"

처진 엄마의 기운을 북돋아주고 싶어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안다.

엄마인 나도 모르게 넌 그새 얼마나 커버린 걸까?

이런 아이를 두고 어찌 아침 루틴만 포기하겠는가. 나는 기꺼이 나의 하루를 통째로 내어준다. 내가 줄 수 있는 시간을 아이와 나누었다. 오래도록 아이를 안고 거실을 곳곳을 누볐고 마주 앉아 블록놀이에 열정을 쏟았다.


새우잠을 청하며 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멈추지 않던 구토가 잦아들었다. 이제야 안도한 아이도 한 컵 가득 담긴 물을 단숨에 마신다. 꿀꺽꿀꺽 아이의 물 넘기는 소리가 내 마음도 축인다.



아이가 아플 때면 늘 소환되는 장면이 있다.

아이를 출산하기 직전까지 나는 3일간의 진통을 견뎠다. 그런데 아무리 힘을 줘도 아이가 내려올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정말이지 나는 죽을 것만 같았다. 아니 이러다 아이를 잃을까 봐 겁이 났다. 응급수술을 결정한 의사에게 나는 애원했다.

"제발 살려주세요."


마취에서 깨어난 내가 처음 본 아이의 모습은 온몸이 시퍼렇고 시뻘겠다. 세상에 나오는 고통을 함께 한 아이, 그 아이가 내게로 왔다. 아이가 아플 때면 늘 이 장면을 떠올린다.

시퍼렇고 시뻘건 아이의 첫 탄생의 장면!

너의 머리가 자라는 만큼 엄마의 머리숱은 빈약해졌고 너의 이가 다 나는 동안 엄마는 네 개의 이를 손봐야 했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모든 고통도 너의 존재 앞에서 무력해진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살다 보면 제발 나의 시간을 찾고만 싶어진다. 그런 나에게 알맞은 간격으로 찾아오는 아이의 병치레는 출산 때의 감사함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너와 함께 하는 모든 시간에 대한 감사로 이어진다.


당신의 재산을 주는 것은 조금만 주는 것이나 당신 자신을 주는것은 진짜 모든것을 주는 것이다.
칼릴지브란


아이는 아픈 만큼 자라고 엄마의 마음도 그만큼 짙어진다.

네가 나와 건강하게 있어만 준다면, 나의 하루는 그로써 완전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