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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울 Dec 15. 2020

나에게는 증명하지 않아도 되.

나를 사랑한다면.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다고 다짐할 때가 누구에게나 있다. 


'존중'이 담기지 않은 말로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상대하고 나면 나는 좌절했다. 곧잘 나는 그들의 말에 얼굴이 달아올라 불끈하며 그게 진실이 아님을 증명하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숱한 노력들 뒤에 내가 알아낸 것은 이렇다. 내가 아무리 확실한 증거를 들이대 나를 증명하는데 성공했더라 하더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곳은 법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옳다고 해서 나를 인정하는 도장을 쾅 찍어주지는 않았다. 그 사람은 애초에 그럴 맘이 없었다. 그 사람은 나의 증명을 그저 변명으로 바라볼 뿐이라는것을 확인한다.


붉힌 얼굴을 뒤로한 채 대화를 끝내고도 그 여운은 나의 뇌리를 하루 종일 거침없이 휘젓는다. 나는 나를 증명하려고 노력한 만큼의 고통을 더 받는 셈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말로 인한 상처보다도 나의 증명이 무력함을 확인하는 것이 더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사실 나와 깊은 관계가 아닌 사람이라면 무시하기는 쉽다. 하지만 우리가 받는 대부분의 상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내가 정말 가깝다고 생각하는 친구로부터 시작된다. 혹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매일 봐야 하는 직장 내에서 그런 일은 늘상 일어나고 언제나 나의 가슴을 후벼판다. 나보다 윗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나를 오해하는 직장상사, 나를 가르치려는 가족 구성원 등등. 유교문화가 오랫동안 지배해온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세밀하고 촘촘하게 짜여 가는 관계의 틀에서 나는 작은 것에서 큰 것까지 언제나 오해받지 않기 위해, 나를 증명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이 모든 것에 지쳤다고 느꼈다.

증명하려 하면 할수록 내 삶은 더 비참해지고 내 자존감은 더 바닥으로 내려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사람은 자신이 동의하는 구절에 밑줄을 친다고 한다. 나또한 그랬다. 내 인간관계의 답답함을 가시게 하는 마법과 같은 구절을 발견하는 순간, 나또한 밑줄을 그었다.


사람들에게 자신을 증명하려고 하면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다. 그들이 당신을 충분히 주목하지 않을 때. 인정하기를 거부할 때, 혹은 그런 당신을 이해하지 못할 때 분명히 당신은 분노와 좌절감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들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할 것이고 그럴수록 당신을 지배하려는 힘은 더 강해질 수 있다. 사람들이 이 허망한 그물에 걸려드는 이유는 스스로를 설득시키고 싶기 때문이다. 이 욕망으로 인해 희생물의 제단에 스스로 올라간다. 증명하려는 덫을 피하라. 조용히 승리하는 법을 사랑하라.
- 웨인 다이어,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 중


내가 가장 사랑한 구절은 바로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이 허망한 그물에 걸려드는 이유는 스스로를 설득시키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그들이 아니라 내가 쥐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로부터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믿게 하는 일이 목숨처럼 중요했다. 왜냐하면 좋은 사람이어야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을 읽고 나는 그간 나조차도 자신에 대한 조건적 사랑을 해오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나의 아이를 어떠한 이유나 조건으로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함으로써 사랑한다. 그러나 나는 가장 사랑해주어야 할 나자신에 대해서는 꽤나 엄격해왔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심리상담가 일자 샌드는 그녀의 책 '컴 클로저'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내가 나 자신이 되기를 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내가 나의 내적 현실과 마주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이다. 그럼으로써 내가 설령 나 자신과 타인의 이상에 부합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순간에도 내가 내 편을 들어주겠다고 결심한다는 것이다. 
-일자 샌드, <컴 클로저> 중


우리가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해 꼭 '어떠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 어떠한 설득도 증명도 필요없다. 


어짜피 다른 사람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내가 그들에 대해 그렇듯 말이다. 그러니 나를 오해하는 이에게는 이렇게 말하면 된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나는 좀 그런가 봐."


나는 더 이상 논쟁을 벌이지도, 더 이상 그 사람의 인정을 구하지도 않기로 결심했다.





나 또한 '너를 위한다'는 핑계로 무심결에 그 사람의 마음을 겨냥해 총을 쏘아댔었는가?

오래전 날씬한 몸매를 원하는 동생이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저녁을 굶고 있길래 나는 생각없이 말했다.

"있잖아.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냥 규칙적인 식습관을 유지하는 게 제일 좋아." 

"내가 몰라서 안 하나? 안되니까 그런 거지!"

동생이 대답했다. 규칙적인 식습관을 하지 못해서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스스로의 부족함을 바라보게 하는 그야말로 '생각없는' 말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렇다. 나또한 숱하게 상대방을 아프게 해왔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수없이 바뀌는 이런 관계의 줄다리기에서 나는 상대를 끌어당기거나 상대에게 끌려가기를 무한 반복해왔다. 그런게 인생인지도 모른다고 넘기기엔,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고 너무 많은 실망을 떠안았다. 내가 알게 된 것은 그런 순간에 계속 그 책임질 누군가를 찾는 것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게 인생이라면, 엉켜진 관계들로 더 이상 위협받지 않기 위해 내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나를 탓하는 마음'부터 내려놓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장 오늘부터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로 하자. 하지만 고백하건데 이를 위해 나는 여전히 '내안에 없는 모습'을 찾아내려고 내 발톱 밑까지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모습 조차 괜찮다.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기로 결심한 순간, 나는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나에게도 나를 변명하거나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사랑의 말을 담지 않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어 공중에서 사라지거나 심지어는 그 사람 마음에 들어가 독으로 자리잡기도 한다. 앞으로 그런 말이 나를, 혹은 당신을 찌른다면 생각하기로 하자. 

"좀 아프네. 하지만 괜찮아. 이 정도는 내가 이제 치료할 수 있어."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이라는 허상에 질까 봐 두려워하는
우리의 마음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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