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턱에 찰 때까지

내 안의 힘을 발견하기 위하여

by 민지울

요 며칠 몸이 좋지 않았다. 나의 고향 부산 친정집을 오기까지 정리할 일도 많았고 오기 전날 들은 친구 딸의 부고로 인해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었나 보다. 친정으로 향하는 날 아침,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며칠을 머리가 꽉조는 듯한 두통이 나를 괴롭혔다.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얼마나 또 조심스러운지, 집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있자니 아픈 머리가 더 아픈 것 같았다. 연로하신 엄마 아빠와는 되도록 식사도 따로 하고 엄마와 수다도 실컷 떨지 못했다. 그야말로 집에서도 거리두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 그 누구라고 맘이 편했던 사람이 있었을까? 그래도 나름 그간 잘 버텨왔다고 생각했는데...

아픔은 지친 몸을 뒤따라 오는 법이다.


친정, 아니 결혼 전에 자취하던 시절에도 집으로 오기만 하면 아파서 걱정을 끼쳤었다. 기차를 타기 전까지만 해도 멀쩡한 몸이 아니 집에 들어서는 순간 천근만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결국 몸살 기운까지 와서는 엄마가 해주는 밥을 실컷 먹고 얼굴이 부어 터질 때까지 잠을 자고 나서야 기운을 좀 차렸다.


집이란 곳이 그랬다. 그래, 엄마와 아빠라는 존재가 그랬다.

마음이 끝없이 풀어져도 되는 유일한 곳. 그 풀어진 마음도 아늑히 쉬어갈 수 있는 곳.

언제나 정성껏 지어내는 엄마의 밥 냄새, 아빠가 온종일 틀어놓는 티브이 소리. 부모님이 있는 아늑한 집은 언제나 나를 유년시절로 데려다 놓았다. 강한 척 애쓰고 살다 돌아오는 고향집에서 며칠을 앓고 나면 다시금 기운을 받곤 했다.


이번에는 더 심했다. 요즈음 끔찍이도 지키던 새벽 기상 습관도 여기서는 맥을 못 추었다. 겨우 눈을 뜨고 일기를 쓸라 쳐도 어느새 꾸벅꾸벅 졸며 이불을 찾는 꼴이 내 학창 시절을 보는 것 같다. 결국 깨끗이 포기하고 느지막이 일어나 오후 점심을 먹고 난 후에는 낮잠까지 잤다. 더 신기한 것은 그래도 잠이 고프다는 것이다. 한 아이의 엄마인 나도 아직 나의 부모 앞에서는 꾸중과 보살핌을 필요한 아이였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어리기만 한 아이였다.


어린이집도 가지 못한다는 핑계로 내려오기는 했지만 오자마자 또 아프다니, 이제 나도 면목이 없다. 오늘은 모처럼 장을 보러 가신 엄마 아빠 대신 밥을 짓고 청소를 하고 집안 곳곳을 닦아냈다. 오히려 움직이니 아픈 기운도 좀 달아나는 듯했다. 이제는 일어날 때가 되었나 보다. 그동안 아팠던 엄마 덕에 집에만 있었던 아이에게 뜨뜻한 옷을 입히기 시작한다.


"이제 나가는 거야!"

"어디?"

"바다로... 겨울 바다는 진짜 예쁘거든."

"우와"

"나가서 우리 신나게 뛰어보자!"

"그래! 좋아. 엄마, 너무 신나!"


12월 21일, 오후 세시의 바닷가는 충분히 따뜻했다. 아이도 주머니에 숨은 손을 꺼내어 뛸 준비를 한다.

"와! 바다다!"

아이의 차가운 손을 꼭 잡는다.

차가운 바람, 시원한 모래사장. 겨울의 바다가 참 아름다운 것을 우리는 알고 있잖아?


세 뼘쯤이나 큰 엄마가 뛰자 한 뼘밖에 안 되는 아이가 힘차게 뛰기 시작한다.

그래. 우리 이렇게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달리자.

아픔과 걱정으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숨이 차서 헉헉 거릴 때까지.



한 발자국 떼어서 달려보면 알게 된다.
아픔은 치유하려는 마음으로부터 치유된다는 것을.



그렇다. 당신은 생각보다 강하다.

우리는 그토록 아프지만 그토록 강하다.

그리고 그 아픔의 이불을 기꺼이 함께 덮어줄 이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러니 더없이 마음이 아픈 날에는 따뜻하게 입고 신발끈을 매어보자.

장갑을 끼면 더욱 좋다.

이 겨울, 바다는 꼭 아니더라도 그 어떤 길에서라도 나의 그들을 떠올리면서 달려보면 어떨까.

숨이 턱밑까지 차오를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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