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에는 경단녀라는 단어를 들으면 이런 생각을 했다.
"왜 결혼을 하면 다들 일을 그만두지?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결혼 이후 4년이 지난 지금 나의 생각은 어떻게 변했을까? 얼마 전 나는 어느 설문지를 작성하다가 직업란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전업주부라면 다들 그런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육아는 내가 했던 어떤 일과 공부보다도 힘이 들었는데 왜 어떤 경력으로도 인정이 안되는 것일까? 그 설문지에서 의하면 나는 무직이고, 현재 경력단절 3년 차인 셈이다.
4년여 전 중학교에서의 마지막 수업을 끝내고 학생들과 작별을 할 때 아쉬움으로 며칠밤을 잠못들었다. 정들었던 학생들이 그립기도 했지만 다시는 교정에서 나의 수업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컸다. 나는 당장 오늘도 출근 길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은데 해는 네번이나 바뀌었다. 이제는 나만을 바라보는 한 아이와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집안일 앞에서 생각한다.
"아. 이제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갈 일은 없겠구나."
셋째 딸인 내가 태어나기 전에 중학교 교사였던 엄마는 퇴직을 하셨다. 생물 전공이 잘 맞지도 않았다고 실험을 앞두고는 자신이 없어 도망치고 싶었다며 관두기를 잘 하셨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개구쟁이 남학생들은 실험중에 마취에서 깨어난 개구리를 잡아와 엄마를 놀래키고는 했다며 혀를 내두르셨다. 가정주부로서의 삶을 선택하기를 잘 했다고 말 하시는 엄마를 향해 나는 가끔 속없는 질문을 던지곤 했다.
"엄마, 왜 관뒀어요? 그때 그만두지 않았다면 엄마 지금 연금이 얼마야 어휴"
그러면 엄마는 늘 이렇게 답하신다.
"응. 그러면 너는 이 세상에 없지! 그리고 엄마는 지금이 더 좋아."
지금 생각해보면 내 말이 은근한 상처가 되었을 법도 한데 엄마는 언제나 당당하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고는 묵묵히 하던 집안일을 마무리하시던 엄마를 보며 나는 섣부른 결론을 내렸다. '그래 엄마는 일과 가정 중에 가정을 선택했구나!'라고 말이다.
어느 날 엄마와 시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길가 한 모퉁이에서 솜사탕을 파는 한 아저씨가 엄마를 보고는 쫓아오는 게 아닌가. 우리는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선생님.. 저예요."
엄마는 놀라서 한참을 보다가 그제야 생각이 난 듯 인사를 했다.
"아. OO구나.. 에고, 고맙네. 알아봐 줘서. 나는 눈이 안 좋아서 못 알아볼 뻔했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난 후 엄마는 솜사탕을 한 아름 사 가지고 오셨다. 다 큰 제자는 돈을 받지 않기 위해 늙은 선생님은 돈을 쥐어주려고 실랑이를 벌였다. 가까스로 집에 온 후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늘상 보아왔던 엄마와는 조금 달랐던 엄마의 모습. 내게는 늘 엄마였던 엄마가 누군가에게는 선생님이라는 존재로 기억되고 있었다. 사뭇 다른 엄마의 모습은 꽤나 행복해 보였다. 나는 그제서야 알았다. 엄마도 사랑하던 일을 관둘 때 쉽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그 당시 아빠는 큰 수술까지 할 만큼 몸이 좋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엄마는 일을 고집하실 수 없으셨을 거다. 그런데 나는 엄마의 선택을 너무나 쉽고 당연하게만 느꼈던 것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다. 막상 아이를 낳아 길러보니 정확한 말이었다. 마을이라는 공동체가 없어진 지 오래된 요즘엔 부모 중 한 명이 일을 관두고 양육을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만하다. 나 또한 벌이가 더 많은 남편이 일을 하고 나는 자연스레 육아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문득 직업을 묻는 객관식의 질문 앞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그간 해온 일은 무엇일까?"
진실은 이렇다. 경력이 단절된 그 시간동안 나는 삶에서 배워야 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들을 터득했다. 그 중 가장 큰 가르침은 아이가 스스로 해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좌절을 겪을 때는 따뜻한 위로를 주면 된다. 처음 아이와 퍼즐을 맞출 때는 성격 급한 내가 잘못 맞추어진 퍼즐을 제자리에 놓아주곤 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퍼즐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결국 나는 아이가 잘 하건 못하건 평정심을 가지고 지켜보기로 했다. 제 맘대로 안될 때는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나는 '너는 잘할 수 있다'고 세상 따스한 위로를 팍팍 주곤 한다. 돌아가더라도 스스로 가야 한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를 기다려주는 것, 그리고 아이가 좌절할 때 진심으로 위로해주는 것뿐이었다.
기다림과 위로가 필요한 것은 아이뿐일까? 어른인 우리도 아이와 똑같이 상처 받고 좌절한다. 우리의 감춰진 속살은 더없이 연약하다. 다만 어른인 우리는 아이와 달리 스스로를 위로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나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무심히 던진 질문에 상처 받기보다 스스로를 위로할 줄 알았던 우리 엄마처럼 말이다. 언제나 우리는 어떤 선택에도 우리 자신을 먼저 믿고 스스로를 위로할 줄 알아야 한다.
이 글을 적는 오늘은 우연히도 올해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 만큼은 한 해를 살아낸다고 고생한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시선을 보내기로 하자. 경력이 단절되었든 인생이 절단이 났던 내게 가장 소중한 '나'라는 존재가 지금 여기 있으니 말이다. 지금 무언가가 단절되었다고, 내가 한 수고가 인정을 못 받는다고 좌절하지 말자. 세상은 객관식 문항의 정해진 직업만 있지 않다. 길은 스스로가 내야 진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