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거나 쓰면 안 되는 걸까

글쓰기가 어려울 때

by 민지울

생각해보면 나는 어려서부터 끄적거리는 것을 좋아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잡아 한 줄 쓰고 그 옆에 그림도 그리고 종이 한 장을 그렇게 아무거나 쓰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종종 말도 안 되는 시를 쓰기도 했다. 아직도 그 시는 내 오래된 일기장에 보존되고 있는데 제목은 '말이 안 되는 시'라고 붙여야 할 정도이다.


그토록 운율도 안 맞고 특별한 뜻이 있지도 않은 글을 하루 한편씩 꼭 썼었다. 막연히 나중에 아주 나중에 늙어서 할 일이 없으면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늙어서 할 일이 없어야 글을 쓴다는 것은 나의 두 가지 편견에서 비롯된 것 같다. 작가와 같은 창작인들은 밥 벌어먹고살기가 힘들 것이라는 편견. 그리고 나는 밥 벌어먹고 살만큼 글을 잘 쓰지는 못할 것 같다는 편견.


그래서 나는 다른 많은 경험을 한 후에 글을 써야지 하는 생각으로 다른 많은 경험을 쌓기에 공을 들였던 것 같다. 많은 곳을 여행 다녔고 여러 공부를 했으며 마음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그 과정에 '기록'이 빠져있었다. 나는 경험만 했지 그것을 기록하는 일은 소홀히 했다. 내가 쓰는 글이 너무 산만해서 목표를 이루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인생 중반에 접어든 지금에서야 그 시절을 하나씩 꺼내어 보곤 한다. 그리고 그것을 글로 쓰기도 한다. 그 이유는 무언가 특별히 '할 말'이 있어서는 아니다. 그저 추억을 글로 그려두는 과정이 소중하기 즐겁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목차는 없다. 제목도 없다. 한동안 내 글에 목차나 계획을 먼저 생각하려면 글을 쓰는 게 '부담스런' 일이 되었다. 이 글이 많이 읽히고 많이 팔리는 소위 말하는'인정'을 받으면 좋겠다는 나도 모르게 샘솟는 그 욕구가 글 쓰는 행위 자체의 기쁨을 막고 있었다.


아무거나 쓰면 안 되는 걸까?

어린 시절 썼던 말이 안 되는 시처럼, 제목도 없고 목차도 없고 목적도 없는 글처럼 말이다.



아무거나 쓴다고 인생이 아무렇게나 되는 건 아니잖아.
그 '아무거나'가 너에게 소중한 것이라면.



아침에 일어나 차 한잔 마시며 창밖의 동틀 녘을 기다리는 것도, 어제 도착한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며 가슴 설레는 것도, 아이가 일어나 안기는 매 순간의 감동도 모두 내게는 너무나 소중한 순간들이다. 이 순간들을 글로 다시 찍어내며 내 물감으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나는 다시 한번 그 감동에 전율한다. 그러니 그 '아무거나'라도 내게 '소중한 것'이라면 내 나름대로 간직하고 내 나름대로 정리를 해둘까 한다. 독자가 나 하나면 어떤가? 나중에 아이라도 보여주지! 뭐든 내가 좋고 행복하면 그걸 계속하면 된다는 것! 그걸 늘 기억하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