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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울 Jun 25. 2022

칭찬에 목말라하지 말고, 비판에 상처받지 않고

세상의 반응에 상처받는 사람들에게

얼마전 나의 책이 나왔다. 책이 나오기 전 일주일 정도는 잠을 자지 못했던 것 같다. 

글을 쓸 때는 그저 몰입해서 쓰느라 생각지 못했던 많은 걱정들이 책이 나오기 직전이 되자 봇물터지듯 터져나왔다. 책 쓰는 것은 처음이라, 출판사에게 다시 수정하겠노라 말을 하지도 못하겠고 속으로 앓았던 것 같다.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은 지 약 2주 쯤 되었나보다.


나는 마음, 감정, 꿈에 대한 이야기기 때문에 내 뇌에 담긴 무수한 생각이 밖으로 나와 쇼윈도에 진열되는 것 같은 엄청난 두려움이 밀려왔다. 

'특히나, 친척, 친구들이 읽으면 너무나 부끄럽겠다.'

결국 나는 속으로만 앓다가 책이 나오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았다. 감사하고 감동적인 순간이었지만 엄마가 친척들에게 사방팔방 소문을 내서 연락이 오거나 책을 대량 구입하겠다는 말을 들으면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정도로 관심을 보일줄은 몰랐다. 

관심이 없으면 서운할 거면서. 



결론만 말하자면 우리 엄마는 내 책을 읽고 감동을 받으셨다. 딸이 책을 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격할 만 하다. 나라도 그랬으리라. 그런데 내가 살벌하게 드러낸 내 마음 속 이야기들에 공감해주고 같이 울어주는 엄마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엄마 딸이지만 대단해!"

그 한마디에 나는 그간 품었던 마음에 응어리가 사라지는 듯 했다. 셋째 딸이라, 자꾸만 늦어서 실망시키는 것 같은 딸이라, 엄마가 대단하다고 하는 그 말이 지금 내 불안한 마음의 안정제가 되어주기도 했고, 내 노력의 결과에 대한 달콤한 보상같은 말이 되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달랐다. 친구들의 반응은 두가지였다. 

'이렇게 네가 힘든 줄은 몰랐다' 혹은 '이렇게 니 이야기를 쓰는 것이 부끄럽지는 않아?'

엄마처럼 무조건 잘했다는 아니었고 내가 내 속 이야기를 쓰는 것이 신기한 것만 같았다.  이 지점에서 나는 혼란스러웠다. 아마도 내가 기대한 반응이 아니었기 때문이 아닐까? 처음에는 서운하기도 했다. 내 책에 대한 비판은 아니었지만, 뭔가 찜찜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되물었다. 

'대체 넌 뭘 기대한거니?'

나는 칭찬을 기대했었다. 칭찬과 인정, 내가 엄마에게 받았던 그 피드백 말이다. 하지만 친구들은 내 부모가 아니지 않는가. 



성장을 바란다면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그 어떤 것에도 피드백이 있어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찾는다. 남의 피드백, 나 자신의 피드백, 세상의 피드백, 성과의 피드백. 

피드백이 내 노력의 결과와 같은 값은 아닐지라도, 피드백은 나침반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물론 중심은 내 마음이지만, 내 마음을 이러한 피드백이 어느정도 조율해준다. 그 피드백에서 자유로워질 때, 그러니까 내 말은 그 피드백에서 얻는 감정에 자유로워질 때 나는 조금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설탕과 소금 모두 음식을 맛나게 해주는 양념이니까. 



칭찬에 목말라하지 말고, 비판에 상처받지 않고. 



그래. 이제는 칭찬은 흘려듣고 비판은 새겨들어보자.  비판을 위한 비판과 나를 위한 비판은 구별해두자. 

세상에 내 의견을 이야기할 때 따라올 것은 당연히 그들의 의견이다.  오늘부터 의연하게 세상의 반응을 기다려볼 참이다. 


칭찬에 목말라하지 말고, 비판에 상처받지 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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