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에 떠난 칠레 워킹홀리데이1. 결심
칠레? 산티아고? 거기가 어디야? 스페인에 있는 거? 아.. 남미.. 거기도 워홀 비자가 있어? 거기 가서 뭐해? 스페인어는 할 줄 알아? 너 지금 30살에 거기 가서 뭐하려고?...
지인들의 반응은 정확히 예상대로였다. 하지만 뚜렷이 시원한 대답을 해줄 수가 없어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나 역시도 불안하고 초조했으니까. 스페인어도 제대로 할 줄 몰랐고, 이제 갓 체결된 국가라 정보도 많지 않고, 그래서 일자리는 더더욱 불안정할 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칠레로 떠나려고 했던 건, 지금 아니면 평생 못 한다는 확신 아닌 확신 때문이었다. 난 늦깎이 사회인으로서 이제 겨우 1년을 회사에서 꾸역꾸역 버티고 있다 우연히 아프리카 출장길에서 본 칠레 워킹홀리데이 협정 소식에, 잃어버렸던 꿈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그날 밤 잠 한 숨 잘 수가 없었다.
우연히 20살 때 본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이것은 대범한 행동에 대해 과장된 이야기도, 냉소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적어도 그런 말을 할 생각은 아니다. 그것은 일치된 열망과 비슷한 꿈을 갖고 한 동안 나란히 달린 두 인생의 한 토막이다."라는 소 갯말 하나에 단박에 빠져 숨도 쉬지 않고 영화를 봤던 듯하다. 실제로 체의 일기장을 토대로 만든 실화였고 그 이후로 체 게바라에 관련된 모든 책과 영상은 다 꺼내 읽고 봤다. 그때부터 남미대륙은 나에게 체의 대륙이 되었고, 나의 엘도라도였다. 마치 그곳에 가면, 진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은. 칠레에 왜 왔냐는 물음에 난 단박에 Me gusta CHE, por eso.라고 대답하고 그럼 단박에 Ah, eres comunista?라고 묻는다. 사실 난 머리 아픈 사상보단 그의 의미 있는 삶이 좋았다. 그게 다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상도동 자취방이었다. 달콤한 꿈에 비해 눈앞의 현실은 아득하다. 29에 졸업해 내가 하고픈 일을 할 거라며 곧바로 국제 NGO에 입사했고, 원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가 줄다리기처럼 힘겨웠다. 4년을 만난 여자 친구와 별문제 없이 만나고 있었고 슬슬 양가에서 결혼 이야기가 나올 때 즈음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꿈은 쉽사리 잊히지 않아 자꾸 내 곁을 맴돌았다. 그렇다고 지금 일을 그만두고 칠레로 떠난다면, 누군가의 흘러 뱉은 말처럼 모든 걸 잃을 게 뻔했다. 모든 게 안갯속처럼 컴컴했다. 그래도 난 내 삶을 살아야 한다. 그 생각만 붙잡고 잃고 싶지 않았다.
수없이 지새운 밤 때문일까. 난 이렇게 고민할 거 안 하고 후회하느니 하면서 후회하자,라고 마음먹으니 오히려 세상 편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는 타인의 걱정과 조소, 모든 것들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나만의 고민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줬으리라. 그렇게 나의 칠레 워킹홀리데이는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