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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레워홀러 Jul 04. 2017

칠레 워킹홀리데이를 결심한 이유

서른 살에 떠난 칠레 워킹홀리데이1. 결심

칠레? 산티아고? 거기가 어디야? 스페인에 있는 거? 아.. 남미.. 거기도 워홀 비자가 있어? 거기 가서 뭐해? 스페인어는 할 줄 알아? 너 지금 30살에 거기 가서 뭐하려고?...


지인들의 반응은 정확히 예상대로였다. 하지만 뚜렷이 시원한 대답을 해줄 수가 없어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나 역시도 불안하고 초조했으니까. 스페인어도 제대로 할 줄 몰랐고, 이제 갓 체결된 국가라 정보도 많지 않고, 그래서 일자리는 더더욱 불안정할 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칠레로 떠나려고 했던 건, 지금 아니면 평생 못 한다는 확신 아닌 확신 때문이었다. 난 늦깎이 사회인으로서 이제 겨우 1년을 회사에서 꾸역꾸역 버티고 있다 우연히 아프리카 출장길에서 본 칠레 워킹홀리데이 협정 소식에, 잃어버렸던 꿈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그날 밤 잠 한 숨 잘 수가 없었다.

23살의 의대생은 약 4개월에 걸친 남미 여행으로, 세상을 바꾼 혁명가가 되어 돌아온다.

우연히 20살 때 본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이것은 대범한 행동에 대해 과장된 이야기도, 냉소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적어도 그런 말을 할 생각은 아니다. 그것은 일치된 열망과 비슷한 꿈을 갖고 한 동안 나란히 달린 두 인생의 한 토막이다."라는 소 갯말 하나에 단박에 빠져 숨도 쉬지 않고 영화를 봤던 듯하다. 실제로 체의 일기장을 토대로 만든 실화였고 그 이후로 체 게바라에 관련된 모든 책과 영상은 다 꺼내 읽고 봤다. 그때부터 남미대륙은 나에게 체의 대륙이 되었고, 나의 엘도라도였다. 마치 그곳에 가면, 진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은.  칠레에 왜 왔냐는 물음에 난 단박에 Me gusta CHE, por eso.라고 대답하고 그럼 단박에 Ah, eres comunista?라고 묻는다. 사실 난 머리 아픈 사상보단 그의 의미 있는 삶이 좋았다. 그게 다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상도동 자취방이었다. 달콤한 꿈에 비해 눈앞의 현실은 아득하다. 29에 졸업해 내가 하고픈 일을 할 거라며 곧바로 국제 NGO에 입사했고, 원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가 줄다리기처럼 힘겨웠다. 4년을 만난 여자 친구와 별문제 없이 만나고 있었고 슬슬 양가에서 결혼 이야기가 나올 때 즈음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꿈은 쉽사리 잊히지 않아 자꾸 내 곁을 맴돌았다. 그렇다고 지금 일을 그만두고 칠레로 떠난다면, 누군가의 흘러 뱉은 말처럼 모든 걸 잃을 게 뻔했다. 모든 게 안갯속처럼 컴컴했다. 그래도 난 내 삶을 살아야 한다. 그 생각만 붙잡고 잃고 싶지 않았다.



수없이 지새운 밤 때문일까. 난 이렇게 고민할 거 안 하고 후회하느니 하면서 후회하자,라고 마음먹으니 오히려 세상 편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는 타인의 걱정과 조소, 모든 것들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나만의 고민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줬으리라. 그렇게 나의 칠레 워킹홀리데이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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