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에 떠난 칠레 워킹홀리데이2. 기억
칠레에서, 아니 남미에서 돌아온 지 벌써 6개월이 흘렀고, 2018년의 끝자락 즈음에 넘어와 있다. 정확히 1년 전 이 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어떻게 남미 일주를 시작할지, 한창 들떠서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그간 칠레에서도, 그리고 한국에서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돌이켜 생각해보니 후회할 것도 신나서 들떠 있을 것도 없는, 말 그대로 지나간 추억거리이다. 분명한 건 내 인생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시간들이었음을, 그리고 지금 이렇게 무사히 살아 돌아왔음을 지금에라도 자축해야 할 듯싶다.
그리하여 다시 그때의 기억들을 되살려 보려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칠레에서 꿈같은 스타트업 회사에 함께 일하기로 했으나, 갑작스럽게 몸이 너무 아파 급하게 귀국하고 말았다. 몸도 추스르고 워킹비자(칠레에서 발급 불가, 반드시 한국에서 받아와야 했다)도 받을 겸 귀국했으나 여태 돌아가지 못하고 커다란 배낭만 칠레에 놔둔 채 야속하게 시간만 흘렀다. 그렇게 꿈 많던 나의 30은 현재 현실과 부딪혀있고, 이것 또한 꿈꾸던 삶이 마냥 꿈처럼 지속될 수 없음을, 항상 두 발은 단단한 땅을 딛고 서 있어야 함을 또다시 배웠다. 그럼에도 나는 내 결대로, 흔들리고 비틀거리면서도 내 선택들로 점철된 나의 삶을 살아내야 하며, 살아낼 것이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지나간 삶뿐이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삶은 이해하려 들지 말고 그저 살아내야 한다. – 쇠렌 키에르케고르-
분명 지금 이 시점에서, 내 인생에서 어쩌면 중요할 이 시기에 칠레의 추억은 삶의 큰 힘이 될 것이다. 평생 바라던 꿈에 뛰어들었고, 지구 반대편에서 온 몸으로 맞서 생존했고, 적응했으며, 바라던 남미 일주까지 했기 때문에. 그 옛날 도스토예프스키가 "즐거운 추억이 많은 아이는 삶이 끝나는 날까지 안전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목차를 짰다. 순서대로 글을 포스팅할 예정이며, 정보를 어느 정도 머금은 감성 글이 될 여지가 크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날카로운 기억들은 무뎌져 가겠지만, 부지런히 블로그를 했기 때문에 기억과 동시에 반성까지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나의 작은 바람과 함께 칠레의 기억을 더듬어 보려 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느꼈던 모든 찰나의 모든 감정들은, 분명 다르긴 달랐다. 철저히 이야기꾼이 되어(재주는 없지만) 글을 포스팅하겠다. 지켜봐 주시라, 지구 반대편 낯설지만 친근했던 칠레라는 곳에서 있었던 나의 서른 살 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