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뉴욕 여행 ②: 공항 노숙 3일

뉴욕 당일치기 여행? 결국 3일짜리 생존전략 됐다

by 민주

2월 28일 밤 12시쯤, 피어슨 공항에 도착했다.

가방 하나 챙기지 않았다.

한창 겨울이라 롱패딩 하나 걸치고, 주머니에 지갑과 여권을 넣었다.


사실 피어슨 공항은 북미 공항들 중에서도 시설이 좋은 편이다.

그래서 나는 세계 모든 공항이 이 정도 수준은 되는 줄 알았다.

내가 경험해본 공항이라고는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동아시아 공항들, 유럽의 몇몇 시설 좋은 공항들, 그리고 피어슨뿐이었으니.


피어슨에서 밤을 새우는 건 어렵지 않았다.

팔걸이 없는 의자 세 개를 붙여 눕고, 롱패딩을 이불처럼 덮으니 나름 따뜻했다.

두세 시간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새벽 4시.

눈이 조금 뻑뻑했지만, 뭐 그 정도쯤이야.


셀프 체크인 기계에서 미국행 티켓을 발급받으려면 숙소 주소를 입력해야 했다.

숙소가 없었기에, 그냥 라과디아 공항 주소를 입력하고 티켓을 발급받았다.


처음 가보는 뉴욕은 별천지였다.

고흐의 그림을 좋아했던 미술학도에게, 뉴욕은 완벽한 당일치기 여행지였다.

MoMA에서 4시간을 보내고, 당시 한국엔 없었던 셰이크섁 버거를 먹었다.

눈이 점점 뻑뻑해졌지만,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그저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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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본 별이 빛나는 밤과 처음 먹어본 셰이크 섁은 충격적으로 좋았다.


이곳저곳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

더 늦기 전에 라과디아 공항으로 돌아갔다.

도착한 시각, 밤 8시.

IMG_3215.JPG 저녁 8시의 라과디아

그런데…

아침에도 느꼈지만, 다시 돌아온 라과디아 공항의 시설은 충격적이었다.

내 고향, 부산의 한 버스터미널보다도 못한 공항이라니.

공항이 이렇게 형편없을 수도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2019년쯤 리노베이션을 싹 해서 지금은 삐까뻔쩍하지만, 그전의 라과디아는 공항 노숙을 하기에 전혀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다.


그런데 뭐 어쩌겠는가.

수중의 돈은 8달러.

공항에서 자는 것 외엔 선택지가 없었다.


설상가상, 아침부터 아파오던 눈은 결국 결막염이 되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

그 때 찍어놓은 눈 사진이 있는데 첨부는 하지 않겠다.


나는 문 닫은 식당 코너의 빈 의자에서 밤을 샜다.

하루 종일 겨울 뉴욕을 돌아다니다가, 공항에서 이틀째 자려니 몸이 버티질 않았다.


아침 8시 비행기라 6시쯤 일어나 수속을 밟고, 게이트 앞까지 갔다.

그런데 9시, 10시가 되어도 보딩 안내가 나오지 않는다.


"8시 토론토행 비행기, 11시까지 연착되었습니다."

"8시 토론토행 비행기, 13시까지 연착되었습니다."

"8시 토론토행 비행기, 14시까지 연착되었습니다."


…?


오전 8시 비행기가 오후 2시까지 연착된다고?

이미 이틀 동안 공항 노숙, 결막염, 몸살 콤보를 맞은 나는 슬슬 몸이 으슬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나에게 최후통첩처럼 들려온 방송.


"8시 토론토행 비행기, 결항되었습니다."


아니, 왜?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왜??


주변 승객들이 분노하며 항공사 직원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들려오는 결항 사유.

"토론토 날씨 때문에 이륙은 가능하지만 착륙이 어렵다."


그렇게 하나둘씩 사태를 받아들이고 공항을 떠나는 사람들.

나는 그저 누워있었다.

돈도 없고, 밥도 못 먹었고, 눈도 아프고, 몸도 으슬거려서 일어설 힘조차 없었다.


"오늘 저녁에 토론토 가는 비행기 없어? 가장 빠른 게 뭐야?"

사람들이 어느 정도 빠져나간 뒤, 겨우 항공사 직원에게 다가가 물었다.

"오늘 밤 비행기는 이미 매진이고, 가장 빠른 건 내일 아침 7시야. 티켓 새로 끊어줄게."

천재지변이라지만, 결항 안내가 너무 늦어서인지 다음날 비행기 티켓을 무료로 다시 끊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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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캔슬 이메일과 새로 발급받은 티켓. 지금보니 날짜가 4월 7일이네?? 이 이야기에 날짜가 중요한 건 아니니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다.


수중의 돈 8달러. 그리고 아픈 몸.

일단 밥부터 먹자.

모든 것이 비싼 공항에서 내가 선택한 메뉴는 앤티앤스 프레즐 크림치즈 스틱 한 통과 생수 한 병.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앤티앤스 프레즐을 먹어본 적이 없다.

이때 생각이 나서 구역질이 난다.


그때까지만 해도, 오른쪽 눈만 결막염이었다.

눈물과 눈곱이 계속 흘러 휴지로 닦고 있었는데,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그만, 오른쪽 눈을 닦던 휴지로 왼쪽 눈을 닦아버렸다.

그렇게 양쪽 눈이 결막염에 걸려버렸다.


호텔 갈 돈도 없었기에, 나는 그냥 게이트 앞에서 계속 죽치고 있었다.

팔걸이 없는 의자 세 개를 붙이고, 롱패딩을 이불 삼아 겨우 쪽잠을 청했다.

그러다 문득, 내 몸 위로 드리우는 어두운 그림자들.

그리고, 나를 툭툭 치는 손.


"Hey miss, 일어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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