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건 무엇인가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레미콘이다!
퇴근길이 유난히 늘어질 때가 있다. 일하면서 모든 에너지를 다 써서 돌아오는 길에 그 어떠한 에너지도 쓸 수가 없을 때. 마치 세탁기에 이리저리 치이는 세탁물이 세탁 후 힘없이 축 널브러져 말리는 것처럼, 어깨는 구부정하게 놓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나의 뒷모습이 상상된다. 그 뒷모습을 바라본다면 누구나 측은하게 바라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에휴-)
그날은 딱 측은함이 덕지덕지 붙어있던 날이었다.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남아 있던 에너지를 조금씩 쓰는데, 옆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레미콘이다!’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정신이 번뜩 든다.’라는 말이 이런 거구나를 깨달을 정도로 나도 모르게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그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눈길을 훽- 돌렸다.
세 살쯤 되었을까. 어린 남자아이는 축 늘어놓은 엄마 손보다도 키가 작아 손을 번뜩 들어 엄마 손을 잡고 있었다. 그러면서 공사장 쪽의 레미콘에게 반짝반짝 눈빛을 열렬히 보내고 있었다. 아마 그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한없이 애정 하는 곳에 쏟는 듯 보였다.
레미콘이라니?
레미콘 레미콘 내 머릿속은 온통 레미콘으로 차있었다.
레미콘이라니!
누군가에게 ‘제일 좋아하는 게 뭐예요?’라고 물었을 때 레미콘이라는 대답은 분명 누구나 예상치 못한 답일 것이다. 근데 그런 예상치 못한 답을 퇴근길에 듣다니! 나는 그 말이 너무 좋아 소스라칠 정도였다.
레미콘을 제일 좋아하다니!
그런 근사한 답을 들은 적이 없고 나 자신도 생각한 적이 없다.
아, 나도 그의 시절에는 구슬을 제일 좋아했다. 투명한 겉모습에 알록달록 색깔로 채워진 구슬들. 용돈이 생기면 구슬을 샀고 돈이 없을 땐 친구들의 구슬을 쳐다보며 구슬치기를 제안했다. 구슬치기에서 이겨 내 구슬 주머니에 새로운 구슬이 들어오는 날이면 그날은 최고의 날이었다. 세상 최고로 행복한 날.
요즘 난, 그런 날들이
안타깝게 적다.
월급 들어오는 날도 텅장이 되기 일수라 큰 감흥이 없어진 지 오래고
코로나로 낯선 공간으로 여행을 갈 수 없으니 낯선 설렘에서 오는 행복도 없어졌다.
나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슬이다!’라고 말하는 날이 다시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