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 만든 마케팅 프로그램

초등학생 창업가를 꿈꾸다.

2006년, 나는 중앙기독초등학교를 입학했다. 수원에 위치한 기독교 학교였다. 매일 아침마다 큐티 (나만의 조용한 시간을 통해, 성경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그 묵상한 내용들을 삶에 적용하는 행동)를 했고 수요일마다 수업시간의 일환으로 예배를 드렸다. 중앙기독초등학교의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학생들을 존중했으며 그들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해주셨다. 아이들이 잘 자라 큰 사람이 될 수 있기 위한 발판을 만들어주시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주셨기에 이 자리를 통해 감사함과 존경심을 표하고 싶다.


언제부터 내가 창업을 꿈꿨을까 생각해본다면 초등학교 2학년 때라고 생각된다. 정말 어린 학생이기에 창업을 준비하겠다는 생각으로 돈을 어떻게 벌지 고민해보지는 않았다. 내가 처음 돈을 벌어본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로 생각한다. 아마 이 때의 이야기는 조금 유치할 수 있다. -_-


발명품을 만드는 숙제가 있었다. 친구들은 종이 박스와 플라스틱 보틀을 재활용하여 멋진 장난감을 만들었다. 지금 생각나는 친구들의 발명품 중 하나는 엘리베이터의 구조를 종이 박스로 만든 친구다. 친구들은 제각각 다른 아이디어로 열심히 자신의 발명품을 만들었다.


나는 숙제를 성실히 하는 학생은 아니었기에 역시나 종이 박스 하나와 색연필이 전부였다. 집에 굴러다니는 배스킨라빈스 핑크색 스푼도 몇 개 보였다. 방을 구석구석 뒤지면서 스티로폼 공도 하나 발견했다. 과연 이것들을 통해 어떤 것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했다.


종이 박스 안에를 온통 초록색으로 칠하고 축구 경기장처럼 만들었다. 허접했지만, 축구 경기장이 갖고 있는 특유의 녹색 그라운드와 센터서클, 골포스트 등을 만들었다. 그리고 스트리폼 공은 2002년 월드컵 싸커 볼로 그렸다. 배스킨라빈스의 핑크색 스푼은 공을 왔다 갔다 움직이게 해주는 도구이자 플레이어였다. 종이로 플레이어 얼굴을 그리고 스푼에 붙였다. 그렇게 나는 박스로 만든 미니 축구장을 학교에 갖고 갔다.


다들 참신한 발명품들을 갖고 왔다. 무엇인가 나만 참신한 매력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이 것을 숙제를 위해 만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숙제는 단지 동기였을 뿐, 이걸로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점심시간에 친구들을 불러 모아 내가 만든 발명품으로 축구 게임을 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철수가 이길까? 영희가 이길까?"라고 이야기하며 친구들의 승부욕을 건드렸다.


그렇게 나는 시간별로 친구들의 경기를 예약받았다. 수첩에 친구들의 경기 날짜를 예약받고, 토너먼트 구조까지 짰다. 그리고 한 판에 500원씩 동전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1주일 동안 꽤나 많은 동전을 모을 수 있었고, 학교 앞에 있는 매점에서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다.


이후, 나는 조금 더 사이즈를 키우기로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한 친구와 함께 학교 비상연락망을 이용해 남자아이들에게 전화를 했다. "축구 클럽을 만들건대 아빠랑 같이 올래?" 그렇게 많은 남자아이들이 아빠 손을 잡고 왔다. 축구 코치는 많은 아버님들이 자처했고, 어머님들은 음료와 과일을 싸오셨다. 그렇게 주말마다 축구 클럽을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축구 클럽에도 돈을 붙이고, 직접 유니폼을 맞추는 것으로 수익모델을 생각했지만 엄마의 반대로 실행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초등학생이지만 나름 고학년이 됐을 때다. 네이버 카페와 블로그가 한참 유행이었다. 네이버 카페를 다들 하나씩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던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경쟁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카페에 몇 명이나 가입했는지 비교하는 것이었다. 카페를 운영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가입을 시키는 허들이 생각보다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은 타 카페의 회원을 추출해서 이메일 발송하는 프로그램이 많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게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알바천국에 네이버 프로그램을 개발해주실 개발자를 구한다고 글을 썼다. 아빠가 개인 사업을 하고 있었기에 알바천국 계정은 우리 집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었다. 덕분에 나는 개발을 할 수 있는 대학생 형을 만날 수 있었고, 온라인으로 연락하며 내가 생각하는 기획안을 이야기해줬다.


끝내 그 형은 타 카페의 회원들의 아이디를 자동으로 추출하고 @naver.com을 붙여서 엑셀 파일로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줬다. 나는 이것을 통해 내 카페의 회원을 가입시키기 위한 홍보 메일 발송에 사용했다. 뿐만 아니라 마케팅 대행사에 이 프로그램을 판매했다. 당시, 마케팅 대행사들은 한번 거래로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원했지만 나는 그렇게 쉽게 프로그램을 넘겨주지 않았다! 대학생 형에게 갱신 코드를 만들어달라고 한 뒤, 2주에 한 번씩 그 인증 코드를 나눠주고 갱신시켜줬다. 즉, 나는 2주에 한 번씩 돈을 받았다. 한 회사당 14만 원씩 받았고 여러 마케팅 대행사부터 프리랜서들이 구입했으니 꽤나 짭짤했다.


그렇게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돈을 벌기 시작했다. 개발자 형은 한번 크게 급여하는 것으로 퉁치고, 나머지 돈들을 모두 챙겼다. 대부분의 돈들은 부모님에게 드렸지만, 내가 구입하고 싶었던 장난감들은 모두 구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프로그램을 이용해 돈을 모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네이버에서 제재 이메일이 왔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해당 프로그램은 네이버와 맞지 않으니 사용을 자제하라고 했다. 이메일을 읽고 나서부터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았고 가내수공업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네이버 카페를 만들어주는 일을 했다. 구매자가 원하는 카페 명과 카페 카테고리를 듣고 만들어줬다. 카페 제작 대행 한 건당 5-15만 원씩 받았었다. 10번 정도 카페 제작을 대행했으나 수공업이다 보니 사람이 할 짓이 못된다는 생각에 때려치웠다. 외에도 간단한 QR코드 제작, 로고 제작 등 외주 형식으로 많은 것을 했었다.


그러다가 아이폰3GS가 한국에 등장했다. 처음 만져보고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옛날에 상상하던 게 아이폰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등장했다. 집에 있는 모든 기계들이 몽땅 작은 디바이스에 탑재될 것이라는 미친 것같은 나의 상상력이 스티브 잡스를 통해 실현된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는 '앱스토어'를 보며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핸드폰에서 사용할 기능을 상상하고 구현하기만 한다면, 앱스토어에서 그 기능을 판매할 수 있다고 한다.


앵그리버드라는 게임이 한창 top랭킹 1순위를 달리고 있었는데, 신문 기사를 보니 그런 게임을 개발했던 핀란드 학생에 대한 인터뷰였다. 나와 동갑내기인 친구가 지구 반대 바퀴에 있는데, 그 친구가 게임을 개발하고 몇 억에 팔았다는 본문이었다. 곧바로 나도 게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엄마를 졸라 안드로이드 개발 서적들을 구입했다. 한 권당 4만 원에서 6만 원대이던 책을 몇 권을 구입해 마음 맞는 친구들을 모아 함께 정독했다.


'우선 안드로이드 앱을 만들려면 어디를 접속해야 하고, 캐릭터를 움직이게 하려면 이 코드를 넣어야 하고..'

그냥 책에 있는 내용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할 수 있었던 것은 책에 있는 코드를 똑같이 따라 적는 것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책에 있는 간단한 게임 코드들을 따라 하면서 앵그리버드와 비슷하지만 훨씬 심플하고 단순한 게임 앱을 만들 수 있었다. 출시까지는 매우 많은 허들이 존재했고, 그 허들을 뚫고 출시했으나 기대만큼 사람들은 호응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앱이라는 시장은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는 선생님과 농사를 짓기도 했다. 초등학교 놀이터 뒤에는 작은 공간이 있었다. 담임 선생님과 함께 텃밭을 가꾸고 상추 모종을 심었다. 가끔 물도 주고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상추가 잘 자랄 수 있었다. 학교 화장실에서 물을 뜨고 놀이터까지 갖고 가는 것은 힘든 일 중 하나였지만 상추를 팔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인해 재밌게 선생님과 길렀다. 그렇게 친구들과 함께 상추를 적절한 무게만큼 담아 2천 원에 몽땅 팔았다. 이 돈으로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나는 그렇게 초등학생 때부터 창업놀이를 통해 경험했다. 남들은 왜 초등학생 때부터 돈을 벌려고 했는지 물었다. 나는 돈을 재정적으로 생각하고 벌려고 한 것은 아니다. 단지 돈이라는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합당한 가치를 제공하고 얻을 수 있는 경험치이자 포인트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경험치를 모은다는 즐거움으로 돈을 벌고 싶었다. 그 때는 스타트업이 무엇인지 정의 자체도 몰랐다. 아니, 단어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부터 나는 내가 생각하는 상상력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추진력을 배워왔고, 실패를 해보면서 어떻게 하면 다음에 더 성공 포인트를 찾아 업데이트할 수 있을지 성찰했다. 어렸을 때부터 끊임없이 생각했던 편이었다. (물론 사고뭉치였다.)


어떻게 하면 세상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까? 한번 사는 인생인데 남들보다 더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한번 사는 인생인데 평범하게 살 고 죽는 것이 과연 행복할까? 세상 사람들의 습관을 내가 만들어줄 수는 없을까? 항상 고민했다.


초등학생 때 보통 동화책 읽는 것을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14살 안에 장래희망 정하기' , '전 세계 직업 탐방' 등 진로에 관련된 도서를 즐겨 읽으며 대한민국에 없는 직업들도 찾아보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들과 좋아하는 일들을 스스로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여러가지를 도전하며 사람들에게 가치를 제공하고 합당한 돈을 받는 방법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초등학생 때 기업가를 처음 꿈꿨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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