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안정화와 부동산 정책의 방향성
길을 지나는 누군가를 붙잡고 '부동산'이 무어냐고 물으면 아파트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100명 중 98명이고 땅, 상가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2명 정도 될겁니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접하는 부동산은 집, 땅, 상가 정도로 한정되는 것 같지만 실제 생활상에서 부동산은 집, 땅, 상가 외에도 오피스, 백화점, 호텔, 관공서, 창고 등등 여러 용도가 있고 좀 더 확장하면 선박, 항공기도 준부동산으로 취급됩니다. 우리는 흔히 '부동산'이라 함을 집 혹은 아파트로 한정하는 경향이 있지요.
'집'은 거주를 하는 '살기 위한 공간'이자 '자본을 투입하여 구입 또는 대여하는 자산'입니다.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집은 단기간 빌려서 쓸 수 있는 소비재이기도 하고 빚을 내어서라도 구입하여 자산 증식을 꾀하는 투자재이기도 합니다. 집을 소비재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집의 크기와 형태, 입지 등 거주환경이 우선시될 것이고 투자재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자본금, 대출, 기대 수익률 등이 우선시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른 생각을 하듯이 부동산(집) 또한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없지만 사람들은 너도나도 입을 모아 부동산(집) 값을 잡아야 한다고, 안정화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가정경제에서 의식주의 비중을 금액으로 따지면 주거에 드는 비용은 '의'와 '식'의 비용을 월등히 뛰어넘기 때문에 민감도 측면에서 맞는 말이긴 하지만 집값이 안정화되면 정말 좋기만 할까요? 그리고 현실에서 집값은 안정화할 수 있는 것일까요? 한번 가정해 보겠습니다.
집값이 현재 수준을 계속 유지한다면 집은 투자재로서의 기능은 상실하고 소비재로만 여겨지며 공간의 가치와 그 속에서의 생활이 더 중요하게 되어 사람들은 흔히 말해 가성비가 좋은 집들을 찾게 될 것입니다. 집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유지보수와 관리비, 세금 부담으로 이어져 선호받지 못하게 될 것이고, 전세 및 월세 수요가 증가하고 임대료 인상이 가속화될 것입니다. 임대차보호법 등의 강화로 임대료 인상마저 통제된다면 장기적으로는 집값은 유지조차 어려워지고 지속적인 하향곡선을 그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집을 살 이유가 없어집니다. 자녀 교육이나 부양해야 할 가족과의 거리라던지, 출퇴근 거리의 제한 등으로 한 곳에 오래 정착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집을 사는 게 오히려 가정경제에는 손해가 되겠지요. 하향곡선을 그린 집값은 가정경제의 소비를 위축시키고 건설경기와 가전, 인테리어 등 관련산업 또한 위축시켜 전반적인 시장경제 자체가 얼어붙는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위 집값을 잡는다고 하는, 집값을 안정화시킨다고 하는 것은 마냥 쉬운 일은 아니며 궁극적으로 집값이 내리는 걸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집값 상승을 억제하고 현상을 유지하는 게 최선입니다. 집은 단순히 살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자본을 투입하는 자산으로서 가정경제에 있어 가치가 떨어지면 안 되는 가장 크고 중요한 자산이므로 집값은 꾸준히 우상향 해야 바람직합니다. 단지 그 기울기가 가파르지 않고 근로소득으로 기울기를 쫓아갈 수 있을정도가 되면 좋을 뿐이지요.
현재 정부에서도 부동산 대책으로 대출규제를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무리하게 빚내서 투자하지 말라는 뜻인데 혹자는 '현금부자만 노 났다.' '부의 상승을 위한 사다리를 걷어차버렸다.' '양극화가 심해진다.'라고 평가하지만 가격상승곡선의 기울기를 완만하게 하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자금여력이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거래를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자금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대출이 원활하면 원활한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시장전망, 세금, 기대수익률 등 나름의 포트폴리오를 따져 투자할 것이고 대출규제로 거래량이 준다고 해서 이때다 하고 사재기를 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자금여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더 조급하게 의사결정을 하기도 하고 가격 민감도가 크기 때문에 리스크를 더 많이 지게 됩니다. 부동산 시장에 무리하게 진입하려는 수요량을 억제하고 가정경제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 부채비율을 줄이려는 시도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예전부터 정부 정책은 투자재로서의 부동산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고 소비재로서의 부동산에 대한 정책은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거나 내용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주로 임대주택에 관한 내용만 주를 이루고 있는데 계속 새로운 신규 공급에 대한 고민만 할 것이 아니라 기존에 살고 있는 주거의 질을 어떻게 하면 정책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주거의 질을 결정하는 여러 요인 중 교육, 교통, 치안, 상업, 녹지, 공실률 등 정책으로 개선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있을 수 있고 기존 주거의 질이 올라가면 투자재로서의 집보다 소비재로서의 집으로 의사결정의 빈도수가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예를들어, 현재 서울시에서는 정비사업 진행이 어려운 빌라촌에 공실을 시가 임대하여 그 일대 빌라들의 관리사무소와 커뮤니티센터로 활용하는 방안을 준비중입니다. 아파트에서는 당연한 지원시설이지만 빌라에는 없는 기능을 공공이 무상으로 지원하여 주거의 질을 높이는 시도입니다. 이러한 제도들이 하나둘 쌓이면 집값 상승의 기울기를 완만하게 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고 봅니다.
도시정비를 단순히 멸실 후 재개발해야 하고, 그곳에 거주하는 거주민들의 조합이나 민간사업자의 역할이라고 치부하여 그 역할과 책임을 맡기는건 효율적이지 못할뿐더러 시장의 가격 상승 기울기를 쫓아가지 못한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공공주도의 개발이 능사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공공이 할 수 있는 효율적인 도시정비의 모습이 있고 그를 통해 얼마든지 주거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정부는 적극적으로 시장에 참여하되 그 방향성과 내용을 다방면으로 검토했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는 정의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우리가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우리는 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부동산이란 무엇인지.
'집은 사는것(Buying)인지, 사는것(Living)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