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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Sep 02. 2021

뭐하시는 분이세요?

초기 스타트업 창업자에게 가장 두려운 질문

이십대 중반에 창업을 하고 대표님 소리를 듣던 시절,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무서웠다. 나를 가장 두려움에 떨게 한 것은 일상적인 질문들.


“뭐하시는 분이세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멈칫했다. 내가 가진 답이 사람들이 예상할 수 있는 "학생이에요" "회사 다녀요" 같은 적당한 대답이었다면 좋았을텐데,


“창업했어요”


하고 대답하면,


“아이고 대표님이시네” “젊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창업은 왜 하셨어요?”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 거예요?”


끝도 없는 질문이 시작되었다. 나에게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일일이 대답해 줄 수도 있었겠지만 높은 확률로 다시 만날 일 없는 사람들이야말로 맡겨 놓은 것처럼 이것저것 물어댔다.


처음에는 삶의 궤적이 다른 사람들이 예상하는 범위에서 사뭇 벗어나 있다는 게 좋았다. 의외라는 반응에 즐거워하기도 했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그 벗어남의 정도가 남들의 상상을 크게 벗어나면서부터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에 자꾸만 왜라는 질문을 해댔고 나는 지쳐버렸다. 그리고 무서워졌다. ‘왜’ 뒤에 당연하게 따라오는 나를 재단하는 시선. 나에겐 그들을 이해시켜야 할 의무가 전혀 없는데 정작 나에게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설명을 맡겨놓은 것처럼 굴었다.


그러다보니 잘 모르는 사람이 나에 대해서 무언가를 물어보면 어떻게 하면 더 적은 정보만 말하고 빠져나갈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렸다. 다른 질문을 또 하지 않기를 바라며.






사람들이 생각하는 창업가라는 허울과 창업 당시의 나는 괴리가 컸다. 재밌는 일을 하고 눈에 보이는 성과도 있고 보람도 있었지만 언제 어떻게 돈이 될지 미래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말을 하고 나를 대단하게 봐줄수록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친 나와 실제 나 사이의 간극을 보며 더 없이 부끄러웠다. 숨고만 싶었다.


“오 사장님~ 김대표~ 너네 회사에 나 취업시켜주라”


내 밥벌이도 못하는데 이런 말을 계속 듣는 것도 괴로웠다.


쉐어하우스를 시작하고도 한동안 과외를 했다. 월급이 없었으니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서였다. 과외에서 잘리는 날이면 번번이 눈물이 났다. 구제할 길 없는 실패한 인생처럼 느껴졌다. 돈을 못 번다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한 동기들이 차를 사고 좋은 집에 살고 해외 여행 다니는 걸 보면서 자괴감에 시달렸다. 몇 번이고 인스타그램을 지웠다 다시 깔았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과거의 선택을, 사실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음에도, 놓친 것 같은 기분에 자주 휩싸였다.






쉐어하우스를 11호점까지 오픈했다.


우리가 처음 시작했을 때까지만 해도 쉐어하우스라는 게 신선한 컨셉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끗발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0:1 로 시작했던 입주 신청률이 신규 하우스 오픈을 반복할 때마다 5:1 … 2:1...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9호점쯤 되니 빈 자리를 겨우 채우는 정도에 이르렀다. 슬슬 한계를 느꼈다.


처음에는 드라마 청춘시대 같은 로망을 꿈꾸는 대학 새내기들에게 쉐어하우스가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인근에 개인이 운영하는 쉐어하우스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쉐어하우스에 직접 살아본 사람들이 늘어났고 그만큼 단점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다.


쉐어하우스의 한계는 누구보다 우리가 제일 잘 알았다. 일단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고, 그게 아닌 사람들이라도 살다보면 불편한 지점을 만나게 마련이었다. 청소하는 방식, 샤워하는 시간, 소음에 대한 민감도, 잠버릇에 이르기까지. 미처 생각지 못한 자잘한 갈등 상황에 부딪힌다.


물론 지금도 잘 되는 쉐어하우스들도 많고 먹히는 시장도 분명히 있겠지만 나에게는 폭발적이었던 초기 반응이 식는 것이 하루하루 피부로 느껴졌다. 물이 들어왔을 때 열심히 노를 저어서 쉐어하우스를 이만큼 늘려놨더니 이제 썰물이 되어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출구를 찾아 이것저것 다른 프로젝트들을 했다. 쉐어하우스 관리 B2B, 루프탑, 카페, 지역재생사업, 여성용 사각팬티…


그럼에도 별 뾰족한 수는 없었고 기어이 그런 날이 오고야 말았다. 개강 시즌이 되어 새로 입주민 모집을 했는데 10 자리도 넘게 비어버렸다. 얼마 안되는 월급마저도 받을 수 없게 되었던 그때 인수합병 제안을 받았다. 1호점을 오픈한지 2년 반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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