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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Sep 01. 2021

'사람사는집'을 만드는 동안 내가 살았던 곳

보증금 50 월세 35 하숙집에 1년 동안 살며 얻은 것

우리가 운영하던 쉐어하우스의 슬로건은 “사람사는집” 이었다.


넓은 거실, 불어오는 바람, 안전한 공간...


그런 쉐어하우스를 열 개씩 만들면서 정작 나는 사람사는 집에 살지 못했다. 그런 가치가 필요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돈을 아끼는 게 더 중요했다. 그건 생존의 문제였다. 온전히 내 힘으로 생활을 꾸려가려면 그 가격도 적은 돈은 아니었다.


보증금 50에 월세 35만원. 공과금은 없었고 아침 저녁으로 하루 두 끼 밥도 주고 화장실은 깨끗하게 관리되는 여성전용 하숙집이었다. 반찬은 맛있었고 주인 아주머니는 친절했다. 같이 사는 사람들도 대부분 조용하고 매너를 지키는 사람들이었다.


그 방에 사는 동안 왠지 모르게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 많았다. 생리 전에는 생리 전 증후군으로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졌다가 생리할 때는 생리통에 고통받고 그게 지나면 실제로 몸 어딘가가 아팠다. 한달 내내 좋은 컨디션인 날이 드물었다. 늘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자주 화가 났다.


나중에 그 방을 벗어나고서야 알았다. 실제로 그 방이 내 몸과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다는 것을.


창문이 없고 환기가 되지 않으니 없던 비염이 생겼다. 약을 먹어도 그때 뿐이고 염증은 한달에 한번 꼴로 심해졌다. 비염이 심해질 때면 질염도 함께 재발했다. 모든 염증이 한번에 몰려온 날이면 발걸음을 떼는 것조차 힘겨웠다. 우울감도 다른 때보다 심해졌다.


겨울은 그나마 아늑하고 따뜻했지만 여름은 최악이었다. 창문도 없는 방마다 에어컨이 있을리는 만무하고 천장의 송풍구 같이 생긴 구멍으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중앙냉방 시스템이 있었는데, 그마저도 하숙집 주인은 전기세 때문인지 잠깐 틀었다가 또 금세 끄고는 했다. 에어컨을 켜놓으면 그나마 살만했는데 끄기만 하면 숨이 막혀서 방문을 닫고 있을 수가 없었다.


땀이 별로 없는 편인데도 그 방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다. 땀이 너무 많이 나서 제대로 옷을 입고 있을 수가 없을 정도였는데 문을 닫으면 숨이 막히니 방문을 빼꼼히 열어놓고 옷을 다 벗고 봄가을용 이불 위에 누워서 자곤했다. 여름 이불을 따로 산다는 건 당시 내 선택지에 있지도 않았다. 여름 이불을 산다고 해도 그동안 봄가을용 이불을 따로 둘 곳도 마땅치 않았다. 자꾸 짐을 늘리면 이고 지고 살아야 할 판이었으니까.






그방에 살 때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이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여성 재소자들이 생활하는 Minimum Security Prison 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그 교도소는 말 그대로 최소 보안 시설이라서 보통 상상하는 교도소처럼 보이지 않았고 군대 생활관에 더 가까워보였다. 이층 침대가 놓여있는 개인 생활공간과 티비를 보거나 여가 시간을 보내는 공용 공간이 있고 그 안을 비교적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러다 재소자가 규칙을 여러 번 어기면 ‘슈’라고 불리는 지하의 독방으로 보내 격리시켰다.


드라마의 초반부에는 슈의 존재를 언급만 하다가 주인공 파이퍼가 슈에 끌려간 장면에서야 슈의 생김새를 볼 수 있었다. 몸만 간신히 누일 수 있는 폭의 딱딱한 간이 침대와 변기가 있고 식사를 넣어주는 개구멍이 복도 쪽으로 나있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한 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빛이 없으니 날이 오는지 가는지 알 수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그곳에서 파이퍼는 점점 미쳐갔는데…


그 장면을 보다가 문득 내 방을 둘러보았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한 평 남짓한 공간. 내가 있는 곳이 '슈'였다. 물론 교도소가 아니니 내 발로 떠날 수 있었지만 당장 그 방을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그 방에 사는 동안은 만족했다. 그만한 가격에 그 지역에서 지낼 수 있는 곳은 없었으니까. 살 곳을 구하다가 그 방을 보러갔을 때 하숙집 주인은 ‘전에 살던 사람이 취업해서 나간 기운 좋은 방’이라고 했었는데, 쉐어하우스를 7호점까지 오픈하고 그 방을 나왔으니 기운이 좋기는 했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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