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라서 할 수 있었던 일들
그 전까지는 S와 나 둘이서 개인 사업처럼 꾸려가고 있었다면 H가 합류함으로서 우리는 공식적으로 팀이 되었다. 꽤 괜찮은 팀이었다.
S는 큰 그림을 보는 사람이었다. 기회를 포착하는 눈이 날카로웠고 아이디어가 많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 줄 알고 효과적으로 이용했으며 많은 경우에 사람들도 그에게 호의적이었다. 누가 봐도 스타트업 대표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디테일을 챙기는 편이었다. 러프한 아이디어에 살을 붙이고 현실에서 기능하도록 만들어내는 게 재미있었다. 이 일을 할지 말지 결정하기도 전에 어떻게하면 할 수 있을지 디테일까지 그려내는 사람. 프로세스를 만들고 규칙을 정하고 어떻게 할지 방법을 고안해내는 역할을 주로 했다.
H는 실행에 강점이 있었다. S보다는 내가 실행력이 강했지만 H의 실행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일을 어마어마하게 빨리 하고, 많이 하고, 게다가 잘 했다. 그리고 그걸 남보다 수월하게 해내기까지 하는 것 같았다. 무던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H가 합류하게 된 그 인턴 모집 공고에서 S의 후배인 J도 합류했다. J는 디테일과 실행력을 모두 가진 사람이었다. 관심사가 다양하고 언제나 공부했고 누구보다 일찍 나와서 많은 일을 해냈다.
다시 이런 팀을 만들라고 한다면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경험치도 낮고 아는 것도 별로 없는 대학생들이 모여서 매일같이 삐걱거리면서도 그만큼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좋은 팀이었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우스 수가 늘어나 “벌레가 나와요ㅠㅠ” “하수구가 막혔어요” “세탁기가 고장났어요” “와이파이가 너무 느려요” 하루하루 민원은 넘쳐났지만 손이 빠른 H와 J가 있어서 나는 언제나 든든했다.
팀원이 생겨 숨 돌릴 틈이 생기자 생활규칙을 정리하고, 계약 관리, 공과금 정산 시스템을 만들었다. 구매할 물품 리스트 정리, 입주민 투어와 계약과 입주 안내 프로세스 등 새로 하우스를 오픈할 때 필요한 일들을 매뉴얼화했다. 페이스북 광고 집행도 시작했고 브랜딩에 가까운 마케팅 활동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쉐어하우스 입주민들을 인터뷰한 영상을 찍어서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리고, 쉐어하우스 입주민이 직접 쉐어하우스 생활에 대해 그린 웹툰을 연재하기도 했다. 지하철 광고도 했다. 열심히 그렸지만… 까만 것은 선이요, 흰 것은 종이인 단순한 그림이었는데 의외로 대박이 나서 그 지역의 웬만한 사람들이 다 본 광고가 되었다.
쉐어하우스를 운영하는 일 말고도 우리는 함께 별의 별 것들을 다 해봤다. 아마도 해보고 싶은 걸 다 해봤던 것 같다.
지역재생사업에 참여했다. 지역 상가 공간을 대여하고 지역에서 음악 활동하는 사람들을 초대해 라이브 공연을 기획했다. 주변 상가를 찾아가 공연 장소로 사용하게 해달라고 섭외하고 인근 지역에서 활동하는 아마추어 뮤지션들에게 신청을 받아 공연 셋리스트를 꾸렸다. 포스터 제작, 악기와 설비 대여, 관객 모집, 공연 진행까지 다 우리가 했다.
지역재생사업을 하며 알게된 분 중에 인근에 건물을 가지고 있는 분이 있었다. 그 건물 옥상을 우리가 루프탑으로 만들어서 운영해주면 수익을 쉐어하자고 제안해주신 덕분에 루프탑 공간을 만들어 공간 대여 사업도 했다. 푸른 잔디 위에 반짝이는 조명이 있고 흰 천이 나부끼는 그런 공간도 만들어 보았다.
카페를 오픈했다. 인테리어부터 메뉴 개발, 운영 시스템 정립까지 했다. 인생이 참 묘한 것이, 창업 직전 1인 운영 카페에서 알바를 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카페 준비 막판에는 라이브 공연 준비와 겹쳐서 H는 공연 준비, 나는 카페 오픈을 맡아 2주 정도를 잠만 겨우 자면서 매달려 해낸 적도 있다.
여성용 사각팬티가 막 화제가 되기 시작할 때 여성용 사각팬티를 만들어서 텀블벅 펀딩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러가지 상황이 겹쳐서 중간에 접게 되었지만. 패턴도 직접 배우고 동대문에서 원단 떼와서 샘플 제작하고 공장 섭외까지 했었다.
돈 안 되는 행사 만드는 데도 진심이었는데, 쉐어하우스 입주민과 친구들을 초대해 크리스마스 파티, 1주년 파티를 했다. 지금은 유명해진 이지앤모어 대표님을 초청해 학내 월경컵 수다회를 연 적도 있다.
그리고 그냥 같이 노는 것도 즐거웠다. 오사카로 방콕으로 워크샵을 가기도 하고,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 사무실 앞에서 오징어 달구지, 땅따먹기 같은 놀이를 하기도 했다. 업무시간에 일은 안 하고 같이 퍼스널 컬러 진단 받으러 간 적도 있다.
이후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은 함께 일하는 동료였지만 그때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인생의 동료였다. 함께 팀으로 일을 해나가며 내 부족함에 많이 괴로워도 했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도 많았다. 뭣모르고 어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들도 많았다.
나중에 보니 이런 사람들을 만난게 너무나 행운이었다. 나는 아직까지 우리 팀원이었던 H, J 두 사람 만큼 일을 잘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