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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Aug 31. 2021

철이 없었죠. 하루 4시간만 일한다는 게

좋은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했던 것들

팀원이 생긴 후 나는 좋은 조직을 만들고 싶었다. 조직문화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다. 좋아보이는 건 이것저것 다 시도해봤다. 좋은 조직문화를 만든다는 건 어쩌면 사회의 부조리에 대항해 내가 가장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상적인 작은 사회를 만드는 것. 


우리도 여느 스타트업처럼 수평적인 문화를 만들겠다며 영어 이름을 썼다. 회의 시간에 모든 참석자의 발언량이 비슷한 것이 건강한, 수평적인 조직의 증거라는 말을 어디선가 듣고는 우리는 회의할 때 발언량이 비슷한 것 같다며 만족스러워했던 적도 있었다. 


자율 출퇴근을 했다. 11시까지 알아서 출근하고 4시 이후에 알아서 퇴근하기로 했는데 4시 땡하면 집에 간 날도 많았다. 휴가도 자율적으로 썼다. 바쁜 시즌이 정해져 있어 새로운 쉐어하우스를 오픈할 때는 밤낮도 주말도 없이 다같이 일했는데, 그게 아닌 시기에는 여유가 있었다.


나 말고 다른 팀원들은 전부 대학생이어서 휴학을 하고 일하고 있었는데 한 명씩 돌아가면서 복학해서 학교를 다니면서 일하기도 했다. 심지어 H는 합류 당시 몸담고 있던 그전 창업팀에서 일을 하면서 학교를 다니면서 우리 팀 일을 했다. 

 

몇몇 스타트업에서 복지로 내세우는 "사택 제공" 같은 오버스러운 말과 거리가 있긴하지만, 언니와 함께 살다가 독립하고 싶어했던 H는 우리가 운영하던 쉐어하우스에서 들어와 살기도 했다. 


점심이든 저녁이든 간식이든 회사에서 먹는 밥값은 회사에서 지불했다. 일하려고 먹는 밥인데 내 지갑에서 나오는 돈으로 계산하면 몇 백원, 몇 천원 차이 때문에 고민하게 되는 게 싫어서 그랬다. 네 명 밖에 없었으니 각자 법카를 하나씩 발급받아서 밥값이든 업무에 필요한 물품 구입이든 했다. 


회식도 정말 많이 했고 방콕과 오사카로 해외 워크샵을 가기도 했다. 말이 좋아 워크샵이지 아침부터 밤까지 관광하는 그냥 여행이었다.

 

강연이나 강의비도 지원했다.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데도 그냥 관심이 있어서 들은 것들도 있다.


책 모임을 했다. 좋은 책을 읽고 서로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이 바쁘지 않은 시기에 시작했다가 바쁜 시즌이 되어 흐지부지 되긴했지만. 책에서 읽은 것을 바로 일에 적용해보고 인사이트를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한번은 J가 ‘넛지 Nudge’를 인상깊게 읽고와서 전 지점에 적용한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공간을 공유함으로서 쉐어하우스의 장점이 생기지만 다른 사람과 공간을 공유한다는 바로 그 점이 쉐어하우스의 명확한 한계점이기도 했는데, ‘룸메가 정리를 안해서 공용공간이 너무 더러워요.’ 같은 확실히 해결하기 어려운 민원이 계속해서 쌓일 때쯤이었다. “사용한 그릇은 바로바로 설거지하기! 1분이면 충분해요!” “여름철 적정실내온도는 26도” 같은 멘트들을 붙였고 실제로 넛지를 부착한 이후 첫 입주를 한 하우스에서는 생활 규칙과 관련한 민원이 많이 줄었다.






돌이켜보면 좋은 조직문화를 만들겠다는 명목 하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하고싶은 방식대로 했던 것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늦은 출근은, 아침에 일찍 출근하는 게 울고싶을 만큼 괴로웠던 나를 위한 제도였다. 짧은 근무시간은, 일하는 시간이 길다고 해서 그 시간동안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짧은 시간동안 일할 때 효율이 올라간다는 책을 보고서 적용한 제도였는데 현실은 출근하자마자 점심을 먹고 점심 먹으면 늘어져서 수다떨고 노닥거리고 그러다보면 곧 4시가 되어서 퇴근했다.


우리가 운영하는 쉐어하우스에 살았던 H는 일과 생활의 경계가 없어 힘들었을 거라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말 그대로 고객들과 24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었으니까. 나로서는 H가 거기에 사는 것만으로도 많은 일이 덜어졌다. H가 살고 있는 하우스 뿐만 아니라 그 근처에 있는 다른 하우스까지 자연스럽게 급한 민원은 H가 해결했고 내부 사정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일하는 시간 말고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나이도 비슷했고 그만하면 수평적인 관계였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 한참 나중에 내가 팀원으로 일해본 이후에야 알았다. 내가 바란 것보다, 내가 인식한 것보다 우리는 훨씬 더 수직 관계에 가까웠다는 걸. 영어 이름을 부르고 직급 없이 같이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 평등해질 수 있다고 나는 착각했다. 최종 의사결정권은 내가 가지고 있으면서. 그게 얼마나 큰 차이를 가져오는지는 내가 직원으로 일을 해보기 전까지 몰랐다. 


물론 좋은 조직문화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간과했다. 네 명 밖에 없는 코딱지만한 회사에서 이 모든 걸 했던 건 돈이 많이 없어서 같은 자원으로 어떻게 하면 팀원들에게 더 풍요로운 삶을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한 결과였다. 그래서 쉐어하우스에 살 수 있게 해주고, 밥값은 회사에서 내고, 책이나 강연비도 지원하고, 해외 워크샵도 갔다. 적은 월급을 다른 복지를 늘리는 걸로, 좋은 조직문화를 만드는 걸로 보완하려고 했다. 그땐 그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나에겐 좋았으니까. 하지만 그때의 나는 틀렸다. 나는 돈을 버는 데 훨씬 진심이어야했다. 돈을 쥐어야지만 풍요로워지는 부분이 삶에는 분명히 있는데, 돈을 제대로 벌어본 적 없던 나는 돈에 대해서 너무 쉽게 생각했다. 나를 믿고 같이 일해준 동료들에게 일한 만큼의 대가를 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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