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업을 구하러 온 나의 구원자...
4호점까지 만들고 나서 좀 여유가 있었던 겨울, 우연한 기회에 근처 지역재생사업을 총괄하는 소장님과 인연이 닿아 지역재생사업 주거 분과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다 소장님이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이라는 정부지원사업이 있는데 지원해보지 않겠냐고 권유를 받았다. 우리는 쉐어하우스가 사회적기업에 속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는데, 대학생이 직접 대학가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사회적기업으로 볼 수 있다며 바람을 넣었다.
아 그래? 그럼 한번 해볼까, 하고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지원을 하고 면접을 보게되었다. 면접관 분들이 호의적이라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지원사업에는 선정이 되었고 다음해 4월, 다른 선정팀들과 함께 1박 2일 워크샵을 가게 되었다. '꼭 가야되나… 어색할 것 같은데…' 하면서도 필참이라 하는 수 없이 참여하게 되었다. 3월에 5, 6, 7호점까지 무사히 오픈한 후 시간적 여유가 생기기도 했고.
워크샵은 생각한대로 지루했다. 첫 날 오전에는 실무에 필요한 교육 세션. 오후에는 4개 창업팀이 한 조가 되어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시간을 가졌다.
조별로 모여 고민 나누기에 앞서 서로 간단히 소개를 했다. 고민을 털어놓을 차례가 되어 우리는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둘이서 감당하기 어려워져 팀원을 구하려고 한다. 근데 당장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7호점까지 만들어놓고 나니 관리할 입주민이 43명이 되었다. 순식간에 규모가 몇 배로 늘어나고 보니 둘이서 모든 일을 하기가 벅찼다. '세면대가 막혔어요', '벌레가 나와요', '세탁기가 고장났어요', '믹서기도 사주시면 안돼요?' 입주민 민원은 넘쳐나고 어디까지 해줘야하고 어디부터는 안 해줘도 되는건지 서비스 기준을 정하지도 못한 채로 하루하루 예상치 못한 상황이 계속 펼쳐졌다. 신나게 벌려는 놨는데 벌려놓은 걸 주워담고 관리하려고 하니 감당이 안 됐다.
하우스를 오픈하고 입주민 계약까지 마무리하고 나면 한 숨 돌릴 줄 알았지만, 한달에 한번 입주민 정기회의(a.k.a 하우스 파티)가 있었다. 하우스마다 일정 잡고 참석하는 것만 해도 매달 7번씩. 한달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중간 기말 시험기간이 되면 간식 나눠주고 그러다보면 또 방학돼서 빈자리 채워야하고. 둘이서 감당하기에 벅차 팀원이 한명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런 우리의 상황을 이야기하자 한 다른 창업팀 멤버가 입을 열었다. "팀원을 구하시기 전에 아직 각자 역할이 정의되지 않으신 것 같아요. 서로의 역할 정의를 먼저 해보시고 팀원을 구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때까지는 서로 모든 걸 상의하면서 일을 했고, 모든 일을 함께 했으니까 팀원이 들어온다고 해도 어떤 일을 맡길 수 있을지 구체적인 그림이 없는 상태였다. S와는 워크샵 마치고 역할을 정리를 해보자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저녁 식사 및 네트워킹 시간. 회사를 다녀본 적 없어서 워크샵이 어떤 건지 그림이 없었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원사업 집행기관의 가장 높은 분 옆에서 맥주잔을 들고 있었다. 어떻게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사업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젊은 분이 대단하시네" 그런 말들을 듣고 "아, 아니에요" 하고 비슷한 대화가 몇 번이나 이어졌다. 명색이 공동창업자인데 이제 갓 졸업한 대학생처럼 보이기 싫어서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느라 술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술자리를 좋아하고 어른들을 크게 어려워하지 않는 S는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술잔을 받고 있었다. 가시방석에 앉아 눈치만 보던 나는 술자리를 슬쩍 빠져나왔다.
휴… 사업하려면 네트워킹이 중요하다지만 너무 부담스러웠다. 술자리에 남은 S 에게 카톡해보니 이제 식당에서 나와서 몇몇 방에서 술판이 벌어진 것 같았다. 이런 기회를 놓치면 바보 같다고 하겠지만 그냥 혼자 숙소에서 책이나 읽는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렇게 반은 불편하고 반은 후련한 기분으로 책을 읽고 있었는데 같은 숙소를 쓰는 사람 하나가 방으로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술자리 안 가세요?"
고개를 들어 인사를 건네는 얼굴을 보니 낮에 같은 조에서 우리 고민에 조언해주었던 그 분이었다.
"아… 네 저는 그냥 방에 있으려고요."
"쉐어하우스 창업자 분이시죠? 제가 숙박업에 관심이 많아서 안 그래도 관심이 갔어요." 하고 말을 걸어왔다.
"어떻게 시작하신 거예요?" "지금은 몇 개나 하고 있으신 거예요?"
웅성웅성한 분위기에서 많은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너무 부담스러웠는데 조용한 곳에서 일대일로 있으니 이어지는 질문 세례에도 자연스럽게 대답이 이어졌다.
질문은 조금은 사적인 이야기로 옮겨가다가 어느새 서로의 연애 얘기까지 하게 되었다. 뭐야, 재밌는 사람이잖아? 처음의 경계하던 마음은 눈녹듯 사라지고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지금 하시는 사업은 어떤 거예요? 공동 창업자이신 거예요?"
“아 공동창업자는 아니고 팀원이에요"
오후에 있었던 워크샵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날카로운 질문도 많이 했고, 사업 소개도 직접 해서 공동 창업자일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팀원이라고 해서 의외였다. 게다가 아직 대학교 2학년이라니.
"저는 사실 숙박업에 관심이 있는데 어쩌다보니 선배 따라서 교육 사업하는 팀에 들어오게 됐어요."
아 그래? 순간 내 마음 속에 작은 전구가 반짝하고 켜졌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워크샵을 위해서 숙소를 나서기 전 우연히 둘만 방에 남게 되었다. 이 때다 싶어 이야기를 꺼냈다.
"저희 어제 얘기한 것처럼 팀원을 구하려고 하는데, 혹시 주변에 괜찮은 분 있으면 소개 부탁드려요."'
"오, 네네. 그럼요."
“H 님 같은 분이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주변에 그런 분 있으면 소개 부탁드려요. 공고 나오면 연락드릴게요."
몇 주 후 나는 H 에게 공고를 보냈고, H 는 친구를 소개하는 대신 본인의 지원서를 보내왔다. 그리고 우리의 첫번째 팀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