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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Aug 22. 2021

엄마, 나 창업했어. 쉐어하우스.

뭐? 쉐어... 그게 뭔데?

4호점을 준비하던 8월 말 대망의 졸업식이 있었다. 전날에도 밤늦게까지 가구를 들이고 청소하고 눈코 뜰 새 없이 준비하다가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타고 학교로 향했다.


여름 졸업식에다 단과대 졸업식이고, 졸업이 늦어지고 취업이 안되면서 동기들과는 소원해졌다. 같이 졸업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그래도 드디어 졸업! 무려 6년 반 만에 하는 졸업이니 가족들도 5시간 걸리는 거리를 달려왔다. 동아리 후배 몇 명이 현수막도 만들어주고 졸업선물도 주러 학교까지 찾아와주었다. 쪄죽을 것 같은 더위였지만 학사복을 챙겨입고 모르는 사람들 틈에 껴서 학과 단체사진도 찍었다.


학교 잔디밭에서 가족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근처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괜찮은 식당은 이미 만석이라 한물 간 패밀리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제 취업만 하면 될텐데~” 하는 엄마의 말에 준비하고 있던 폭탄을 떨어뜨렸다.


“엄마, 나 창업했어. 쉐어하우스 하고있어.”


“뭐? 쉐어... 그게 뭔데?"


"아파트 빌려서 대학생들 여러 명한테 다시 빌려주는 건데..."


"이게 제정신이가? 대학보내서 공부시켜놨더니 그런거 하라고 공부시킨 줄 아나”


불 같이 화를 냈다. 엄마가 응원해줄거라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얘기하지 않은 거였다. 다만 언제까지 숨길 순 없으니까 이미 하고 있다고 통보하는 자리였다.


“방 세주고 하는게 할 일 없는 늙은이들이나 하는 일이지, 그게 대학까지 나온 젊은 느그가 할 일이가”


식당을 나와서도 끝나지 않았다. 9급 공무원 시험을 보라고 했다. “1년만 해봐라. 니 머리로는 1년하면 붙을건데 한번만 해봐라.“


헛웃음이 났다. 나는 공무원 하고 싶은 생각이 눈꼽만치도 없는데. 그 때 셰어하우스를 하나가 아니라 이미 4개째 만들고 있었다고 말했으면 엄마는 화를 덜 냈을까, 아니면 더 냈을까.






하우스 몇 개를 연달아 같은 부동산에서 계약하고 나니 매물이 나올 때마다 새 하우스 오픈하지 않겠냐고 연락이 왔다. 대학가라는 특성 때문에 3월, 9월 학기 시작시기에만 집을 구하기 때문에 입주일자가 최대한 맞는 매물을 찾는게 중요했다. 쉐어하우스로 만들어놔봐야 방이 채워지지 않으면 월세는 내면서 그만큼 손실을 고스란히 안는 꼴이니.


그러던 와중에 입주일자가 맞는 매물이 나왔다. 문제는 더이상 새로운 투자자가 없었다. 기존 투자자들은 여윳자금이 없다며 거절했다.


쉐어하우스 입주민들에게 보증금을 100만원씩 받고 있었는데 20여명의 보증금이 쌓이니 우리에게도 어느정도 목돈이 생겼다. 하지만 최소 5,000만원부터 시작하는 보증금 시세에는 한참 부족했다. 우리는 2,000만원밖에 쓸 수 없으니 보증금 조정이 가능한지 부동산에 물었고, 부동산 사장님이 집주인을 설득해서 보증금 2,000만원에 매물을 가져다줬다.


당시 비즈니스 모델은 우리가 월세로 계약한 집을 쉐어하우스로 만들어서 다시 입주민들에게 재임대를 해주는 방식이었는데, 이렇게 재임대를 해주는 것을 법률용어로는 '전대'라고 했다. 월세 계약자가 직접 살지 않는 집에 전대를 하려면 집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위법이 아니기 때문에 계약 시에 이 부분을 해결하고 넘어가야했는데, 소중한 자기 집에 흠집이라도 생길까봐 벌벌 떠는 집주인들에게 허락을 받기란 쉽지 않았다.


뚫리지 않는 방패에 맞서려면 날카로운 창을 만들게 되는 법. 5호점 쯤 되었을 때는 집주인을 설득하는 마법의 문구를 염불처럼 외고 있었다. 학생들이 여러 명 산다고 하면 '집을 더 험하게 쓸까봐'가 집주인들의 단골 걱정 레파토리였는데 정기적으로 청소업체를 불러서 청소하고 요즘 대학생들은 바빠서 집에 있을 시간도 별로 없더라. 잠만 잔다더라. 밥도 잘 안해먹고. 오히려 아기있는 4인가구가 들어오면 아기들이 온 벽지에 칠을 해놓고 사고치는 경우가 많지 않느냐, 하고. 그리고 우리가 계속해서 매출을 내주는 부동산에서도 이미 쉐어하우스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청년 기업가라고 적극적으로 어필해주었다.


그렇게 1월에 5호점을 계약했다.


투자자 기근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 S 동문회와 동문회의 부동산 관련 소모임에 열심히 출석했다.  노력의 결과로 새로운 투자자를 모셔올  있었고 3 개강에 맞춰 6, 7호점까지 오픈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1호점은 하나 오픈하는  거의  달이 걸렸었는데 이제 인테리어도 어느 정도 규칙이 생기고 구입할 물품 리스트며 도면, 마케팅 모두 레퍼런스가 생겨서 하우스 3개를  달 만에 오픈했다. 물론  몸이 뚜드려 맞은 것처럼 아프고 어깨가 무너질  같았고 난생처음 10만원이란 거금을 주고 타이 마사지를 받았다.






그때 쯤부터 가끔 엄마에게서 카톡이 왔다.


"너거 방은 다 나갔나?"

"방 하나에 얼마씩 받는데?"

"한 집에 몇 명씩 사는데?"


묻는 내용엔 적당히 대답하고 시시콜콜한 얘기는 하지 않았는데 최근 소식을 알고있어서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니,


"너거 쉐어하우스 이름 페이스북에 검색하니까 나오데?"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어디가서 누가 물어보면 우리 딸은 사업가라고 한다. 얼마나 대단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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