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 1호점 오픈이다, 싶었더니 순식간에 4호점까지 내버린 이야기
보러간 매물은 학교 근처에 있는 40평대 아파트였다. 고층이라 채광도 전망도 좋고 무엇보다 넓은 거실이 마음에 들었다. 평생 아파트에 살아본 적 없어서 어떤 아파트가 좋은지 나쁜지 볼 줄도 몰랐다. 한 평 남짓 창문도 없는 방에 살고 있던 나는 20년 된 40평대 아파트를 보고 반해버렸다.
매물이 마음에 들어서 계약을 하고 싶었지만, 월세라고는 해도 서울 한복판에 있는 40평대 아파트 보증금이 만만한 가격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1억. S는 부모님에게 빌려보겠다며 10%를 이자로 제안하고 보증금을 구해왔다. 이 돈의 사용처가 그냥 써버릴 사업 자금이 아니라 원금이 보장되는 보증금이었다는 이유가 설득에 도움이 되었다.
5월에 집 계약을 하고 한달 가량을 청소하고 칠하고 가구 배치하고 쉐어하우스로 바꾸며 보냈다. 예쁜 집과 인테리어 사진을 모으는 게 취미였던 나에게 쉐어하우스 꾸미기는 로망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놀이터 같았다.
신난 것도 잠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현실과 타협해야했다. 그래서 선택한 건 최대한 기본 틀은 건드리지 않고 꼭 필요한 부분만 셀프로 진행하는 것. 싱크대에 시트지 붙이기, 문 손잡이와 수납장 손잡이 교체하기, 장판 교체, 전등 바꾸기, ... 덕분에 웬만한 셀프 인테리어는 원없이 해봤다.
다행히 도배는 집주인이 새로 해줬는데, 튼튼하고 오래가고 예쁘기까지 한 실크 벽지로 해준다는데도 굳이 싸구려 흰색 합지를 고집하는 우리를 중년의 집주인과 부동산 중개인 모두 이해하지 못했다.
청소도 직접하고 가구도 여기저기 발품 팔아 구했다. 자금이 부족했던 우리는 최저가를 찾아서 하루종일 쿠팡, 11번가, 네이버쇼핑...오픈마켓이란 오픈마켓은 전부 훑었다. 의자는 황학동 가구거리에 가서 사오고, 매트리스는 남양주에 원룸 건물도 가지고 있고 미국 유학 다녀온 아들을 나에게 소개시켜주고 싶다는 사장님한테 주문했다. 전 주인이 남겨두고 간 침대 프레임, 소파 같은 가구들도 활용했다.
당시 전공 심화 수업 하나를 들으며 풀타임으로 카페 알바를 하던 나는 일을 마치고 와서 쉐어하우스 준비를 했다. 이것저것 할 일은 어찌나 많은지 시간은 금방 자정을 넘었다.
그러다 하루는 빈 집에서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넓은 거실로 비치는 한줄기 햇살이 보였다. 초여름의 시원한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오고. “아 너무 좋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 날의 경험은 그대로 마케팅 문구가 되었다. ‘넓은 거실, 불어오는 바람’ 어쩌고…
마케팅 얘기가 나왔으니 해보자면, 최초의 마케팅은 총학생회에서 다 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호점을 준비하던 당시 총학생회 주거생활국에서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걸 알게되었다. 당시 기숙사 건립이 주변 원룸 주인들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학생들 사이에 대학가 주거 비용, 주거 환경 문제가 화두였다. 총학생회에서는 기숙사 건립을 공약으로 내고 당선되었는데 건립이 무산되자 할 수 있는 다른 활동들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총학생회가 기숙사 건립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만큼 학생들의 수요가 컸다.
쉐어하우스를 만들면 총학에서 홍보해주고 운영은 우리가 하는 걸로 협업을 제안했다. 사업을 우리가 하게되면 총학 측에서는 연속성있게 사업을 이어나갈 수 있고, 우리는 총학이라는 공신력있는 채널을 마케팅 창구로 쓸 수 있어서 윈-윈이었다.
여러차례 만나서 논의를 했다. 네이밍에서부터 가격, 홍보 방식까지 대부분 논의를 통해 결정했다. 셰어하우스의 이름도 총학 채널을 통해 학생들에게 공모를 받아 선정했다. 이것 때문에 시간이 꽤나 흐른 뒤에도 우리 쉐어하우스를 총학에서 운영한다고 생각한 학생들이 많았고 매번 설명이 필요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에게는 득이 되었다. 총학생회 덕분에 사업자도 없던 우리는 10:1의 경쟁률로 1호점 첫 입주민 모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6월, 한참 1호점 입주민을 모집하던 중 한 학생이 어머니와 함께 집을 보러 왔다. 그 어머니는 학생들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냐고 하시고는, 2호점을 할 생각이 있으면 투자를 하고 싶다고 하셨다.
2호점? 1호점을 준비하고 방을 채우느라 정신 없었던 우리에게 새로운 미션이 떨어졌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지, 생각한 우리는 2호점을 만들만한 매물을 찾았다. 1호점과 같은 아파트 내의 다른 동, 이번에는 40평대 매물이 없어서 30평대. 40평대는 수용인원이 8명이었는데 30평대는 6명이 되었다. 40평대에 비해 거실이 좁고 수용인원이 적은게 아쉬웠지만 더 나은 선택지가 없었다. 실제로 운영하다보니 적은 수용인원 덕분에 30평대가 훨씬 인기있었다.
매물을 찾고나니, 투자자 분이 안전 장치를 마련해달라는 요구를 해왔다. 원금을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을지.
리서치를 해보던 S는 전세권 설정이라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아왔다. 전월세 계약시 집주인한테 주는 보증금을 권리로 보장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 전세계약에서 많이 하는 방식인데, 우리의 경우 월세지만 보증금 금액이 5,000만원 정도 되니 할 만 했다. 투자자 명의로 전세권 설정을 하고, 보증금 반환시 투자자 계좌로 바로 입금한다는 특약을 부동산 계약서에 넣기로 했다.
그렇게 7월에 2호점을 계약했다.
다시 2호점 오픈 준비에 여념이 없던 때, 투자자 분이 다시 연락을 해왔다. 지인 중에 우리에게 투자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있다고. 그렇게 2명의 투자자를 더 소개받고 3호점, 4호점까지 8월에 오픈하게 되었다. 순식간에 쉐어하우스 4개를 운영하는 사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