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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Apr 30. 2021

스물여섯 봄, 창업을 했다.

집을 구하다 직접 쉐어하우스를 만든 겁없는 취업준비생

총 1년 반의 휴학과 1번의 추가 학기를 끝내고 '이제 졸업이구나'하고 있던 스물다섯 겨울, 학교에서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졸업 요건이 미달되어 이번 학기 졸업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이게 뭔소리지?

학교 포털에 들어가봤더니 전공심화 1학점이 부족했다. 아니 내가 이걸 놓치다니... 어이가 없어서 눈물이 나왔다.


어차피 취업도 안 됐고 자취방 짐 다 빼서 본가에 내려간 상태라 상관은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한 학기를 또 다녀야한다고? 그것도 전공 수업 한 과목을 들으러?


열은 받지만 어쩔 수 없으니 다음 학기 준비를 했다. 추가 학기는 학자금 대출이 안된다고 하니 지금 받을 수 있는 장학금을 신청하고, 이것저것 알아보다 보니 3월부터 시작하는 대기업 인턴으로 일하면 전공 학점으로 인정이 된다고 했다. 오, 그러면 취업도 하고 졸업도 바로 하고? 인턴에 지원해서 면접을 보고 결과 발표를 기다렸다. 결과 발표가 3월 초에 된다고 해서 혹시나 인턴에 떨어질 때를 대비해서 전공 수업 하나를 신청해놨다. 결과 발표는 개강 며칠 뒤라서 일단 부산에서 서울로 KTX를 타고 수업을 들으러 갔다. 한번 정도 수업을 들으면 결과 발표가 날 것 같았는데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2주나 지나서야 겨우 결과를 알 수 있었다.


결과는 탈락.


그러면 이제 학교를 다녀야하니 서울에 방을 구하러 가야했다. 엄마는 일주일에 한번이니까 그냥 지금처럼 집에서 기차타고 다니면 안 되냐고 했다. 그 생각도 안해본 건 아니지만 집에 있으면 취업 준비고 뭐고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아서 바로 접었다.


서울 캠퍼스와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하러 다녔다. 이미 혼자서 4번 정도 자취방을 구한 적 있었지만, 방을 구한다는 건 매번 쉽지 않은 일이었고 그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제 집에 손벌리지 말고 내 힘으로 살아봐야지, 결심하고 최대한 월세도 보증금도 싼 방을 찾았다. 내 예산으로 선택할 수 있었던 건 하숙집, 고시원, 쉐어하우스.


그마저도 괜찮은 방들은 너무 비쌌고 가격이 싼 곳들은 살 수가 없겠다 싶은 곳 뿐이었다. 진짜 별 말같지도 않은 컨디션의 방들도 마주쳤는데, 별로인 이유도 참 가지가지였다.


들어가자마자 습기가 훅하고 끼쳐오더니 곰팡이가 온 데 피어있는 하숙집. 보증금 100 월세 48. 헉소리가 절로 나오는 방을 집주인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보여줬다.


오래된 주택에 있는 바깥채 같은 방인데 딱 봐도 외풍이 겁나 심해보이고, 무엇보다 화장실에 갈 때 신발을 신고 외부로 나가서 가야하는 하숙집. 보증금 100 월세 52


저녁 시간에 방문했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자꾸 밥 먹고 가라고 해서 잡채까지 얻어먹었다. 인심이 좋으신거 같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했다가 외풍도 외풍이지만 비오는 날 자다가 화장실 가고싶으면 어떡하나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적당한 컨디션의 적당한 방인데 어두컴컴한 복도에 공용 화장실 쓰레기통은 넘치고 금방이라도 벌레가 나올 것 같았던 하숙집. 보증금 100 월세 45


운좋게 괜찮은 방을 발견했다 싶으면 월세를 60만원은 달라고 했다.


집을 구하는 동안 친구가 사는 하숙집 방에서 며칠간 더부살이를 했다. 예전에도 몇 번 가본 적 있는 방이었는데 딱 한 평 남짓. 싱글 침대 반만한 고시원 사이즈 침대 그리고 그 발치에 문 한 쪽 짜리 옷장이 빈틈없이 붙어있고 옷장 옆으로 작은 책상과 책장이 들어가있는 방. 친구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그 옆 바닥에서 잠을 청했다. 처음 가봤을 때는 너무 작아서 충격이었는데 막상 집을 구해보니 그만한 방도 잘 없었다. 같은 층에는 여학생들만 살고 화장실도 깨끗하고. 친구에게 이 방은 얼마냐고 물었더니 보증금은 없고 월세 35만원이라고 했다. 5년 전 계약했던 대로 월세를 계속 내고있어서 주변 시세보다 싼거라고. '아... 이 정도 컨디션에 이 가격이면 진짜 괜찮네, 그래 내일부터 다시 찾아보자.' 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근처의 아파트에서 룸쉐어를 한다는 글을 보고 찾아갔다. 오래된 아파트이긴 하지만 일단 아파트였다. 엘리베이터도 있고 너무 쾌적했다. 방도 따로 있고, 거실도 주방도 널찍하고. 게다가 보증금 100 월세 38만원

다 좋은데 위치가 좀 걸렸다. 게다가 계약하겠다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는데 그 사람은 심지어 월세를 얹어주겠다고 했다고, 나한테도 43만원으로 맞춰줄 수 있는지 물어왔다.


고민하던 차에 방문한 한 하숙집, 친구의 하숙집 방에서 옷장이 빠진 만큼 더 작은 방. 그리고 창문이 없었다. 그치만 뭐 어때? 월 35만원에 아침 저녁 주고, 주방도 쓸 수 있고, 공용 화장실도 깨끗하고, 게다가 여성전용.


결국은 밥을 주는 곳에 사는 게 더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을 것 같아서 좁디좁고 창문도 없지만 월세 35만원의 하숙집을 선택했다.


얼마 , 내가 집을 구하는 과정을 지켜본 S 말을 꺼냈다. "이거 계산해봤는데, 수익이   같아."


학교 근처의 아파트 월세 가격과 주변 원룸 시세를 고려해서 직접 우리가 아파트를 빌려서 쉐어하우스로 운영한다면 수익률이 얼마나 될지를 계산해봤다는 거였다.


 그럴듯한데? 게다가 지금 부동산에 나와있는 매물도 봐두었다고. "그럼 보러가보자! 아니 본다고 계약해야되는 것도 아닌데 가보면 되지!" 우물쭈물하는 S 끌고 부동산에 갔다.


그날 본 그집이 우리가 만든 첫번째 쉐어하우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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