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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Sep 08. 2021

합병을 했다.

시작은 달콤하게 평범하게

그 전에도 합병 비슷한 제안을 받은 적 있었다. 쉐어하우스를 4호점까지 냈을 때였는데, 서울 전역에 지점이 있는 꽤 이름이 알려진 쉐어하우스 업체였다. 회사를 사겠다는 건 아니었고 우리를 직원으로 고용하고 싶다는 거였다. 두근두근. 우리를 어떻게 알고 이런 제안을 한 거지? 신기했다. 하지만 그때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기대보다도 잘 되고 있었으므로 규모도 월급도 뻔히 보이는 곳에서 굳이 일할 이유가 없어서 거절했다.


그로부터 2년 후 합병 제안이 왔다.


합병을 제안한 회사는 쉐어하우스는 아니지만 비슷한 공유주거 서비스를 운영하는 업체였고 우리 팀을 스카우트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가 하는 쉐어하우스 사업에는 관심이 없었다. 관심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쉐어하우스 사업은 접고 자기네 사업을 함께 키우자고 했다. 회사를 매각하는 가격과 합병 이후 우리가 일하는 대가로 받을 연봉과 처우를 두고 몇 번의 이메일이 오갔다. 처음 이야기가 나온 지 한달 정도 만에 합병이 성사되었다.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생각이 바뀌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일을 배우고 싶었다. 학교 졸업 후 바로 창업을 했으니 일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여러 가지 알바를 해봤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까. 그냥 '이렇게 하면 되는 게 아닐까?' 되는 대로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큰 결단을 내리는 건 오히려 쉬웠다. 정말 어려웠던 건 작은 일들. 문서를 작성한다든지, 거래처에 전화할 때라든지. 그런 사소한 일들을 누군가 가르쳐준 것 없이 하나부터 열까지 알아서 처리하는 게 정말 어려웠다.


잘하고 있는지는커녕, 지금 맞게 가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막막했고 두려웠다. 그리고 이 두려움은 시간이 갈수록 커졌다. 이대로 시간이 계속 지나면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합병한 회사에는 우리가 맡게 될 공유주거 서비스 외에도 여러 서비스가 있었다. 여기도 스타트업이었지만 회사 같았다. 팀이 몇 개나 있었고 어른들이 잔뜩 있었다. 새로 합류한 직원들을 위한 세미나가 호텔 뷔페에서 열렸다. 다른 팀원들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하며 일했던 나는 회사스러운 분위기에 긴장했다. 내 몫을 하는 한 명의 팀원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합병한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혼자 일을 하는 방법을 배웠다. 월급 받는 입장에서 시키는 일을 하는 방법. 하기 싫은 일도 해내는 방법. 일이 되게 하는 방법. 시간 안에, 원하는 퀄리티로, 예산 안에서 일이 되게 만드는 구체적인 방법. 전략을 수정해가며,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보았는지 체크해가며.






두 번째는 돈. 더 이상 쉐어하우스로는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일 년 넘게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봤지만 그때까지도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고 우리는 지쳐있었다. 무엇보다 당장 월급을 받지 못하게 된 상황이 컸다.


합병 얘기가 오가면서 엄마 생각이 시시때때로 나를 덮쳤다. 합병이 성사되어 당장 내 손에 얼마쯤 돈이 쥐어지고 급여가 보장된 회사에 들어가게 된다면? 지난 2년 여를 얼마가 되었든 돈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 테고 무엇보다 월급 받는 안정된 직장, 엄마가 좋아하겠다 싶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엄청 힘이 셌다. 9월이 눈앞에 다가오자 추석 전에 합병이 성사된다면 친척들이 모인 명절 밥상에서 어엿한 한 사람으로 대접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남들 시선 신경 쓰지 않고 내 길을 간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인정받고 싶었다.


합병을 하자 돈이 들어왔다. 지난 2년간 내가 일한 것이 돈으로 환산되어 입금되었다. 이게 충분한 액수인지 알 길은 없었지만 드디어 돈을 만졌다. 지금까지 통장 잔고에 찍혔던 숫자 중 가장 자릿수가 많았다.


그리고 월급. 월급을 받게 되자 숨통이 트였다. 5만 원짜리 특가 롱패딩은 중력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솜이 자꾸 아래로 내려가서 어떤 부분은 아예 솜이 만져지지도 않고 안감과 겉감이 한 겹으로 느껴졌다. 20만 원짜리 내셔널 지오그래픽 패딩은 가볍고 따뜻했다. 몇 해가 지나도 해지지 않았다. 끔찍하게 더웠던 2018년 여름 내가 살던 집은 찜통이었다. 환기가 되지 않는 구조라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흘렀고 같이 살던 고양이들은 화장실 타일에 올라가 있었는데 그 타일조차 미지근하다못해 따뜻했다. 그 여름을 지나고 합병한 후 에어컨을 설치했다. 족발을 먹을 때 고민없이 막국수를 시키고 삼겹살 먹을 때는 공기밥과 냉면을 둘 다 시켰다.


돈이 없던 시절에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힘들었다. 가까운 친구 몇 명이 아니면 내 상황을 일일이 설명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만나고 싶지 않았다. 가까운 친구들은 가끔 만났는데 밖에 나가면 다 돈이니까 자주 만나기는 어려웠다. 만나자는 연락을 몇 번 연속으로 거절하는 내 마음도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러다 친구에게 밥 사 줄 테니 나오라는 얘기까지 들으면 너무 미안해서 더 거절하지 못하고 만났다. 그게 몇 번 반복되니 밥 사줄 때만 만나는 것처럼 보일까 봐 마음이 더 불편했다. 월급을 받기 시작하자 통장 잔고가 얼마나 남았는지 1인분에 얼마인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친구에게 밥을 살 수 있었다.


처음 몇 달은 남이 주는 돈의 달콤함에 취했다. 하지만 그건 오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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