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1
22박 23일.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인데도 시간은 후딱 지나가 버렸다. 작년과 비교했을 때 비슷한 부분도 있었지만 다르게 느껴지는 것들이 오히려 많았던 것 같다. 모든 게 새로웠던 첫 번째 여행과는 달리 이번 여행에서는 분출되는 도파민의 양이 확실히 줄었다. 해봤던 것, 가봤던 곳, 먹어봤던 음식, 봤던 사람들이라 자극이 덜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좋았다.
저번에는 오전 서핑 - 밥 - 낮잠 - 오후 서핑 - 밥 - 잠의 연속이라 쉬는 날을 제외하곤 동네 구경을 할 시간이 없었지만 그래도 이번엔 혼자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기도 하고, 근처 사원 구경도 하고, 엄청 큰 거북이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해변에 놀러가기도 했다.
3주 동안 스리랑카에 있으니까 캠프를 하러 온 새로운 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누군가 떠나면 또 금방 다른 사람들로 채워졌고. 숙소는 항상 북적거렸다. 부부나 커플이 대부분이었는데도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까지 심심하지 않게 서로 잘 챙겨주니까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특히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보드 패킹을 어떻게 해야하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자기 보드인 것처럼 붙어서 도와준 덕에 수월하게 패킹을 마쳤다.
마지막 날 저녁에는 밀가루 반죽부터 만들어서 만두를 빚었는데 마치 그 모습이 명절 같았다. 뜨끈한 만둣국을 끓여 먹었더니 누가 한국인 아니랄까봐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서핑 실력은 1년 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이뤄냈다. 작년 스리랑카 첫 날 찍었던 서핑 영상을 보니 후들거리고 난리가 났었는데 지금은 훨씬 여유로운 모습이다. (물론 익숙한 스팟인 웰리가마에서만….)
여름에 양양에 있으면서 파도 없는 날도 매일같이 바다로 나가 패들 연습을 했던 게 절대로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었다는 걸 느꼈다. 확실히 파도 잡는 횟수가 많아졌고, 패들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서 파도가 잡히니까 내가 잡고자 하는 파도는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팔딱 팔딱 개구리 같던 테이크오프는 보기에도 예쁘고, 하는 나도 편한 테이크오프로 고쳤다. 피곤해 죽겠는데도 자기 전에 테이크오프 연습을 하고 잤더니 효과를 톡톡히 본 것 같다. 지상 연습이 답!!
바텀으로 바로 주르륵 떨어져 버리는 게 아닌 레일이 제대로 박힌 사이드 라이딩을 할 수 있게 됐고, 업다운도 아직 한참 뚝딱거리긴 하지만 어떤 느낌인지는 알았다. 마지막으로 바텀턴은 시간이 부족해서 연습을 충분히 하진 못했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니까 또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가야할 길은 멀고, 뜯어 고쳐야 하는 것도 수두룩하지만 크게 다치지 않고 오래 하는 게 서핑에 대한 내 가장 큰 목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스리랑카 서핑 캠프 때 멍든 곳 하나 없이 멀쩡히 돌아온 게 아주 만족스럽다.
한국에는 새벽 5시에 도착했다. 피곤해서 잠을 자는데 이놈의 물벼룩이 말썽이었다. 스리랑카에서는 물린 곳이 별로 가렵지 않았는데 딱 비행기에서부터 가렵기 시작했다. 안되겠다 싶어 병원에 가서 알러지 약을 처방 받았다. 약사 선생님이 ‘돼지고기 닭고기는 피하는 게 좋아요’라고 말했지만 삼겹살은 참지 못하겠는 걸 어쩌겠는가. 보글보글 된장찌개와 고소한 고기, 기름에 구운 김치까지. 피로가 싹 풀리는 기분이었다.
두 번째 스리랑카. 사람들은 여전히 친절했고, 해변의 강아지들은 항상 축축했고, 망고 주스는 언제 먹어도 진했다. 이곳을 언제 다시 찾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꼭 갈 것이다.
반드시 가서 여전한 것들과 여전하지 않은 것들을 기쁘게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