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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며 챙겨야하는 것들

영화 <소울>을 보고

by 채민주

조 가드너가 공연을 따내고 통화를 하며 길을 걸을 때 전혀 조심하지 않고 걷는다. 벽돌이 떨어지는 공사장, 차가 다니는 횡단보도, 바나나 껍질, 널브러져 있는 못들을 신경도 안 쓰고 걷는다. 그런데도 운 좋게 위험을 피해다닌다. 그러다 결국 하수구에 빠져 영혼이 빠져나오게 된다.


우리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위험이 곳곳에 있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고 그저 운 좋게 피해가는 사람들의 모습 같았다. 죽음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이 살다가 막상 죽음이 닥쳐오면 허무하게 가버리고 후회한다.


“내 인생은 무의미 했구나.” 조 가드너가 자신의 인생을 보면서 한 말이다. 나는 내 인생을 어떻게 꾸려가야할까. 어떤 장면으로 채우고 싶은가.


취미 생활을 즐겁게 하는 모습. 이를테면 물감 묻은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던지, 스트레스 다 풀리게 운동을 하고 있다던지, 여러 악기를 다룬다던지. 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둘러앉아 편하게 노는 모습, 음료를 먹으면서 책을 보고 있는 모습, 예쁜 길을 산책하는 모습. 그리고 누군가와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 많지는 않더라도 몇몇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모습, 큰 책꽂이에 책들을 정리해놓고 그걸 바라보면서 뿌듯해하는 모습, 다양하고 재밌는 활동들에 참가 혹은 진행을 하는 모습 등등


“불안과 집착을 해결 못해 길을 잃고 삶과 단절되지.”


내가 가지고 있는 불안과 집착은 뭘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하면 불안해지고는 한다. 그런데 답이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고민을 미뤄뒀다. 불안은 그런 불안이 있는데, 어떻게 보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는 끊임없이 고민해야되는 일이다. 유치원생의 내가 고등학생 때 어떻게 지내지? 를 계획했고 그 계획을 이뤘다고 쳐도, 지금 고등학생인 나는 20살, 30살, 40살에 무엇을 하면서 살지 고민하고 있다. 40살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일것이다. 그렇다면 이 불안은 계속해서 따라오는 건데 그냥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게 최선 아닐까 싶다. 물론 어떻게 살고 싶은지는 잘 생각해봐야겠지만 그 불안에 사로잡혀서 지금을 즐기지 못한다면 정말 바보같은 짓이니까.


그리고 내가 집착하는 것은 무엇일까? 집착이라고 인지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은데, 딱 떠오르는 건 ‘좋은 사람’ ‘잘하는 사람’ ‘친절한 사람’ ‘괜찮은 사람’ 이 되고 싶어서 내가 놓치고 있는 게 적진 않다고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거절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요즘 나를 돌아보니 거절을 못하는 사람, 아니 거절을 안 하는 사람이었다. 거절을 못 한다는 건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다는 건데 나는 거절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안했다. 그런데 과연 정말 거절을 할 필요가 없었고, 모든 부탁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싶었을까? 아니다. 썩 내키진 않지만 내가 필요하다는데, 나한테 부탁까지 했는데, 거절하면 나에게 실망할까봐 모든 걸 다 들어줬다. 물론 많은 부탁들 중에서도 진심으로 들어주고 싶었던 부탁이 있었겠지만 그 비율이 얼마나됐을까. 이렇게 정리해보니 내가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거지 집착을 하고 있었구나 싶다. 어떤 부탁은 ‘들어줘야 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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