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나의 생전 장례식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문득 생각했었던 형태인 전시회로 갈래를 정했고 어떤 걸 담고 싶은지, 뭘 기대하고 있는지, 무엇을 얻고 싶은지에 대한 내용들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초반에는 떠오르는 모든 아이디어들을 모조리 적었다. 펜으로 종이에 적어놓은 내용들을 문서로 정리하고 계속 추가하는 과정을 거쳤다.
내가 기획한 생전 장례 전시회의 첫 번째 목표는 이 활동을 통해 ‘죽음을 최대한 가까운 경험을 해보고, 그것들을 잘 정리하자’였다. 두 번째는 ‘나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자’였다. 장례식이라는 경험을 통해 삶을 더 소중히 여기며 죽음을 계속 생각하고 싶었고, 내가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들을 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기도 했다. 내 모습을 360도로 보여주고 싶었던 이유는 죽어서라도 내가 ‘이런 사람이었다.’하는 걸 알리고 싶었다.
사람마다 나를 바라보는 눈들이 다르고, 어떤 곳에 있느냐에 따라 내 모습은 변한다. 한 사람의 모든 면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에 ‘나’라는 존재가 이렇게도 존재해왔고, 저렇게도 존재해왔다는 걸. 나를 한쪽 면으로만 보지 말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내 장례식에 와준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삶과 죽음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했다.
이런 기획 의도를 가지고 정말 열심히 준비를 했다. 전시는 크게 세 파트로 나누었다. 메인 전시관, 영상편지 찍는 곳, 따뜻하게 앉아 쉬어갈 수 있는 장소. 전시관에서는 나의 사망기 영상을 통해 내가 어떻게 죽었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간단히 설명했다. 그리고 어렸을 적 영상들과 사진, 나를 표현하는 여러 문장 및 단어들, 주로 사용했던 물건, 옛날 일기, 공책들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 다음엔 내가 전하고 싶은 말들을 꾹꾹 눌러 담은 유서를 올려놓았다.
나에게 ‘죽음’이 무엇인가 생각해 봤을 때 ‘닿고 싶어도 닿을 수 없게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내가 이 느낌을 느꼈으면 했다. 그래서 전시장에 검은 천으로 커튼을 쳐놓고 사람들이 드나들 때 그 뒤에 있었다. 사람들의 실루엣이 비치고, 말소리가 들릴 때 보고 싶고, 말을 걸고 싶고, 닿고 싶더라도 그럴 수 없도록 반 정도만 단절시킨 채로 있었다.
재밌는 일도 있었다. 뱃지 기계를 빌리려고 당근 마켓의 '해주세요' 카테고리로 글을 하나 올렸다. 뱃지기계를 빌려달라는 말과 함께 간단히 내 생전 장례 전시회에 대한 설명과 포스터를 첨부했다. 3개의 댓글이 달렸다. 3개 모두 뱃지 기계는 없지만 꼭 가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세분에게 메시지로 홍보 글을 보내드렸다. 한 분은 당일에 열이 나셔서 오지는 못했고, 한 분은 찾아와주셨다. 아렇게도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구나, 굉장히 신기하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개인 프로젝트로 시작한 기획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를 도왔다. 나 혼자였으면 절대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옆에 있으면서 같이 고민하고, 이것저것 제안해 주고, 갖은 잡일들을 도와주고, 장례식 준비에 장례식 당일 진행까지 해주신 분. 필요한 물품들을 마음껏 빌려가라고 내어주신 분들. 물질적인 도움을 준 사람들도 있었지만 평소에 장난 섞인 목소리로 장례식 언제 하냐, 육개장 안 끓여주면 안 간다, 어디서 하냐 마구마구 물어봐 주는 친구들 덕분에도 큰 힘이 됐다. 개인 프로젝트였지만 혼자 한 건 아무것도 없었던 그런 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