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을 준비하는 마지막 7일은 이렇게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갔더니 자갈밭이 있었고 그 뒤에 보이는 건 무성한 수풀 길이었던, 다른 일들이 겹쳐있기도 했고 확정이 되어야 움직일 수 있는 일들이 있어서 짧은 시간 안에 굉장히 많은 일들을 해내야만 했다. 조금씩 조금씩 한다고 해놓기는 했는데 시간은 턱 없이 부족했다.
영상을 만들고, 종이들을 오리고 붙이고, 유서를 노트북에 썼다가 종이에 옮겨 적고 아뿔싸 액자에 끼워보니 글씨가 가려져서 다시 쓰고, 배너와 팜플렛, 현수막을 디자인해 주문하고, 뱃지를 만들고 짐을 챙기고. 일주일간 가장 일찍 잤던 날과 가장 늦게 잤던 날은 새벽 2시와 새벽 4시였다. 그렇게 집에서 챙길 것들을 다 챙기고, 드디어 섭외한 공간을 생전장례전시회장으로 바꿀 날이 왔다.
오전 일정을 마치자마자 장례식 준비를 위해 바로 뛰쳐나왔다. 오만가지 걱정을 안은 채로 지하철에 몸을 담았다. 영상 편지 공간 제대로 못 만들면 어떡하지, 커튼 못 달면 어떡하지, 이거 안 되면 어떡하지, 저거 안 되면 어떡하지. 오롯이 혼자 준비를 해야하니 불안이 두 배로 커졌다. 왼팔에는 불안을 오른팔에는 걱정을 들고 걸었다.
하지만 고맙게도 기존 공간에 있던 짐을 치울 땐 다른 언니 오빠들이 도와줘서 수월하게 끝냈다. 그리고 일단 혼자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했다. 낑낑대며 책상을 가져다 놓고, 물건을 올려놓고, 벽에 붙일 것들을 자르고 붙이고. 걱정과 배고픔이 합쳐지니 외로움이 되는 신기한 경험도 했다.
공간에 계시는 쌤이 밥을 시켜주셨는데 밥이 좀 많이 늦게 왔다. 아래 층에서는 시끌벅적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나는 혼자서 조용하게 준비하고 있고, 큼지막한 것들이 정해지지 않아 불안한 와중에 배는 고프고. 잠을 못 자 졸리기도 하고. 도저히 안 되겠다 간식이라도 받아오자 하는 참에 밥 먹으러 내려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아무 생각 없이 넋이 나간 채로 씹었다. 같이 밥 먹던 언니가 오늘 여기서 밤새냐고 물어볼 정도였으면 도대체 어떤 상태였던 것인지 가늠이 안 된다. 첫 날은이렇게 마무리를 하고 집에 왔다.
다음날에는 같이 도와주신 분이 있어서 진심으로 감사했다. 키가 작고 힘이 없고 머리가 그닥 좋지 않아 혼자 하지 못했던 일들을 같이 뚝딱뚝딱 해결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