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
일요일에는 서핑을 쉬는 날이라 관광을 하고 왔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저녁 8시에 집에 도착하는 기막힌 일정이었다. 얄라의 네셔널 파크에 갔다가 엘라를 찍고 돌아왔다. 이동 시간이 길어서 지치긴 했지만 운전 기사님에 비하면 세상 편하게 놀다 온 것이다. 갈레 관광 이후로 주구장창 서핑만 하다가 다같이 멋진 구경을 하고 와서 좋았다.
얄라에 있는 네셔널 파크는 지프차를 타고 한바퀴를 돌면서 야생 동물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어두컴컴한 새벽이었다가 순식간에 동이 트는 모습을 달리는 차에서 보았다. 매표소에 도착하니 이미 날이 밝아있었고 덜컹거리는 차를 타고 출발했다.
초반에는 공작새가 여기저기 있어서 발견할 때마다 감탄을 하며 카메라를 켜기 바빴다. 그런데 공작만 계속 보이니 감흥이 없어져 공작을 닭 보듯 지나쳤다. 날개를 시원하게 펼쳐줬더라면 눈이 갔을텐데 아쉽게도 그러지는 못했다.
지프차 운전 기사님이 길을 가다가 차를 세우고 손가락으로 저 멀리 어딘가를 가리킨다. 그러면 그때부터 숨은 그림 찾기가 시작된다. 물가에 돌멩이처럼 누워있는 악어, 미간을 찌푸리고 봐야 보이는 도마뱀, 나무 밑에 나무처럼 서있던 사슴. 모든 동물들의 숨바꼭질 능력은 출중했다.
중간쯤 원숭이들이 있는 장소에서 쉬는 시간을 가졌다. 뚫려있는 차에 짐을 그냥 두고 내리면 원숭이들이 훔쳐간다는 경고에 가방을 앞자리에 넣어두었다. 조식을 준비해주는 리한나가 싸주신 간식을 먹으며 배를 채웠다. 충분히 먹고 나서 남은 바나나는 원숭이들을 줘야지 생각하면서 손에 쥐고 있었는데 무언가 휙 채가는 느낌에 깜짝 놀랐다. 원숭이 한 마리가 내 바나나를 뺏어간 것이다. 어차피 줄 거긴 했지만 한순간에 빼앗긴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그래도 중요한 물건 안 뺏기고 바나나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다.
표범을 보고 싶었는데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땅에 찍혀있는 발자국만 봤다. 코끼리도 원래는 무리지어 다닌다고 하는데 그 광경은 못 봤다. 조금 식상해서 아쉬움이 남았지만 동물원의 좁은 우리에 갇혀있는 동물들을 보는 것보다야 나았다. 야생 동물들을 가까이서 보는 게 신기하기는 하지만 인간들이 들어설 수 없는 자연에서 알아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햇살도 뜨겁고, 배도 불렀겠다 졸음이 쏟아져왔다. 디스코 팡팡을 능가하는 지프차에서 옆 기둥에 머리를 쾅쾅 박으며 숙면을 취했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 왔지만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과장을 더해 반은 잤던 것 같다. 같이 탄 사람들이 ‘코끼리다!’ 외치는 소리가 들리면 고개를 살짝 돌려 ‘코끼리네’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네셔널 파크 투어를 마치고선 바로 차를 타고 엘라로 향했다. 카사바칩을 와그작 와그작 먹다가, 목이 꺾여서 자다가, 창 밖을 보며 멍 때리기를 번갈아가며 먹고, 자고, 봤다. 엘라로 가는 길은 높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산을 끝없이 구불구불 올라갔다. 이런 곳에 집을 짓는다고? 싶은 곳에 집이 있고, 이런 데에서 사람이 산다고? 생각이 드는 데에 사람이 살았다. 분명히 잘못해서 뚝 떨어지면 안 아프게 가기를 바라야 하는 길을 올라왔는데 신기하게도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예쁘게 생긴 식당들과 기념품 가게들이 줄을 이었다. 내가 보고 있는 곳이 산 꼭대기라니 믿겨지지 않았다.
9개의 아치로 이루어져 있어 ‘나인 아치 브릿지’라고 불리는 다리를 보러 갔다. 하루에 네 번, 아직도 기차가 그 다리를 통해 지나간다고 한다. 차로도 2시간 넘게 올라가야하는 높은 곳에 어떻게 다리를 세웠을까 가늠이 되지 않았다. 사진도 열심히 찍고, 물이 가득해서 마셔도 마셔도 줄지 않는 코코넛도 먹었다.
25m의 길이를 자랑하는 라바나 폭포도 보고 왔다.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와 돌에 부딪혀 깨지는 하얀 거품, 그리고 그 소리. 절경이었다. 오늘 들렸던 장소 중에서 폭포가 제일 멋있게 느껴졌다.
고단하고 즐거웠던 일정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국인이라면 참지 못하는 뜨끈한 신라면을 끓여 먹고, 밥까지 야물딱지게 말아먹으며 피로를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