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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Mar 13. 2022

기억은 믿을게 못 돼.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쉘브르의 우산'으로 카트린 드뇌브를 기억합니다.

  찾아보니 그 외에도 그녀가 나오는 영화 몇 편을 더 보았으나 대부분 그녀가 젊은 시절에 찍은 영화가 아니라 나이가 든 다음에 출연한, 주연이 아니거나 여러 명의 주연 가운데 한 명이었네요.

  오늘은 아침부터 흐린 일요일이었습니다. 수요일 부터 바깥에 나가 돌아다닌 터라 집 안에서 가만히 일요일을 보내도록 마음이 다져져 있었습니다. 좀 놀아야 쉬는 게 감미롭거든요. 나는 집에서 둘 가운데 제일 먼저 일어났습니다. 방금 막 일어나 다시 바로 거실 소파에 바로 몸을 길게 뉘이는 것은 정말이지 저의 취향에 바로 들어맞는 아늑한 찬스입니다. 어둡고, 고요하고, 완벽합니다.


  넷플릭스에서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영화를 고르기까지 시간도 얼마 쓰지 않았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인데 줄리 넷 비노쉬(줄리엣 비노쉬는 매우 좋아합니다. 프랑스도 매우 좋아합니다.)와 에단 호크, 그리고 카트린 드뇌브가 주연이라니. 대단히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저는 카트린 드뇌브에 관해 경외심을 품고 있지 않습니다. 딱히 그렇다는 겁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늙은 카트린 드뇌브가 주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좀 그렇지만 진실된 느낌을 이야기하자면 화려하고 특이한 짐승처럼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기가 너무 세 보이고, 아직도 예전 스타일로 긴 머리 때문에 목이 상당히 두껍게 보이고, 또 얼굴도 커 보였고, 거북목이 살짝 있는, 현실과 같이 전설적인 여배우. 엄청나게 커다란 눈 속에서 뻗어 나오는 대담한 눈길, 우아하게 껌뻑이는 눈꺼풀.



  여전히 잔 호피 무늬 코트를 입고 있는 것, 게다가 호피무늬 로퍼, 아니면 얇고 높은 하이힐이라니. 일단은 제가 좋아하는 종류의 화려함이 아니라서, 원래도 대담하거나 극히 여성스러운 스타일은 동물적으로 기가 너무 세게 느껴지면, 편안함이 너무 결여되어 있으면 그 아름다움이 제 가슴을 후벼파지는 않거든요.

  그렇게 재미있을까? 싶었거든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많이 봤지만, 볼 때마다 좋을 때가 대부분이었음에도 그 또한 따로 완벽한 저의 취향은 아니고요. 게다가 상당히 좋아하는 줄리엣 비노쉬와 에단 호크도 매력적으로 보여지는 영화가 아닌 것 같다고, 영화의 초반 그러한 성급한 판단을 마친 뒤, 설렁설렁 영화를 따라갔습니다.



  파비안느의 집 또한 제까짓 게 뭐라고 아름답지만 가슴을 후벼 파고드는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정원은 거칠고 자연스럽고 드넓어서, 정리되어 않고, 또 나무가 커다랗고, 마치 숲 같아서, 숨을 곳이 많아 보여 가만히 오래 바람에 계절을 지난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 장면을 시야와 같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잡은 채 오래 보여주어서, 사색하는 짧은 시간과 같아서 숨을 돌리며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카트린 드뇌브의 아름다움을 나는 이제서야 알게 됐습니다. 그녀의 목은 두꺼워졌고, 피부도 두꺼워져서 이제는 부풀린 머리로 얼굴이 커 보이고, 손가락의 뼈마디는 굵어졌으나 그녀의 머리 스타일이 우아하다는 것, 머리칼을 부풀려 지극히 여성적으로 섬세하게 손질한 머리카락에 시선이 멈추게 된다는 것, 그녀가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여자라는 것, 그녀의 두껍고 나이 든 손에 완벽하게 발라져 있는 빨간 매니큐어의 색이 그녀와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면서도 고급스럽고 예쁘다는 것, 그녀의 곧은 눈길은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으며 순수한 빛이 아직까지도 간직되어 있다는 것, 매우 커다란 눈과 도도하게 말려 올라가 있는 속눈썹의 곡선이 보기 드물게 아름답다는 것, 전설적인 여배우의 아름다움은 대단하다는 걸 느끼게 됐습니다. 그녀는 할머니가 됐고, 약간의 뒤뚱거리면서 걷고, 몸집이 두툼해 실크 가운을 입어도 실루엣이 아름답게 살아나지 않으나 자연스럽게 하던대로 개를 산책시키고,  마당을 거닐며 대사를 외우죠. 그러나 전에 없이 생각에 멍하니 잠겨야 하고, 혼자서 술을 더 많이 마시게 되고, 똑같이 고집을 부리는데 전과 다르게 질타를 받아야 합니다. 담배를 끊임없이 피우는 건 오래된 습관이겠으나 똑같이 할 뿐인데도 전과는 다른 기분이 스미겠죠. 전과 같이 인터뷰를 하고 연기를 하고 심부름을 시키고 까탈스럽게 굴고 사과를 하지 않는 것 뿐인데 이제 사람들은 그녀를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쯤에서 말씀드려야 할 게, 이건 제대로 된 독후감이나 영화의 전반적인 감상평이 아니라 제가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며 느끼게 되는 감상적인 감상입니다. 영화를 꼭 보시라거나 카트린 드뇌브의 아름다움을 알아달라는 건 아닙니다. 혹은 카트린 드뇌르를 두둔하고 싶은 마음도 아니죠. 그래서 딱히 결말이랄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경외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게도 그렇습니다. 그녀가 극중 배역과 매우 같을 것 같으면서도 다르게 이 영화에 이 배역으로 출연해 이런 연기로 배역을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나이 들어가는 걸 인정해야겠다, 그러려고 노력해야겠다고 느낀 게 아니라 반드시 그래야 할 것 같은 건 아니라도 왠지 나이 들어가는 걸 인정할 수가 있겠다는 느낌이 어느새 스며 있었습니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라도 못할 것도 없다 싶은 거였습니다. 엄마를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겠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부자연스러운 게 아니다. 또 친구를, 주변 사람들을, 어떤 사람들을 그렇게 이해하지 못해 괴로울 것도 없겠다.

  그녀의 화려함은 점차 특출난 근사함으로, 우아함으로 아름다움으로 나를 설득했습니다. 그녀는 부드럽게 눈을 감을 줄 압니다. 눈을 똑바로 뜨는 게 뭔지도 알죠. 오래도록 당당하다 냉혹하게 보일만큼, 지겨울 만큼 자신의 아름다움은 어떻게 선보여야 할지 기가 막히게 알고 있으나 감정을 표현하는데, 남을 배려하는 데에는 애처럼 서툴고, 무엇보다도 지나치게 연기를 사랑해 나쁘게 말하면 그 속에 매몰되어 평생을 여배우로서만 살아갑니다. 그녀는 영원히 여배우이자 여자이며 그런 할머니이고 어머니이며 부인입니다. 그녀는 사람을 지나치게 끌어당깁니다. 내버려 둘 수가 없게 행동합니다. 이해하고 싶게 만듭니다. 나이가 계속해서 들며 새로운 시대는 때마다 찾아오며 세상이 바뀌고, 젊은 사람들이 세상의 주인공처럼 느껴지는 점, 그들이 자신을 세상의 주인공이라 가슴 깊이 느끼는 것, 노화가 사람을 점점 약하게 만드는 것, 그 모든 잔인함을 그녀와 그녀의 딸을 통해서 볼 때만큼은 상당히 괜찮겠는데, 해 볼 만 하겠는데 싶었습니다. 세상에는 이런 저런 엄마가 있고, 이런 저런 여자가 있고, 이런저런 사람이 있고, 옳고 그름도 딱히 없는 혼란도 있으며 자신 역시 이런 저런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것 또한 오히려 괜찮다고.



  기억은 믿을 게 못 돼.



  이 말이 가슴을 후벼 판 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영화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제가 요즘 제 기억에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억력이 좋은데, 그건 주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장면을 기억하고 있어 스스로 내린 판단입니다. 저는 과거를 곱씹고 집착하며, 과거가 아니라 오늘 일어난 일도 내일까지도, 한 일주일은 곱씹습니다. 그 때문에 자신에 관해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과 대화하면 속이 미어 터졌습니다.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좀 싫어하기까지 합니다. 무책임하다고 느끼며 속 편하게 기억을 왜곡한다는 생각이 들면 얼굴이 새빨개지며 속으로 몹시 분노합니다.

  그러나 나는 담담하게 "기억은 믿을 게 못 돼."  말을 뱉을 수 있는 사람으로 나이 들어가고 싶어졌습니다. 그렇다고 사람이 되게 바뀔 것 같지는 않으나 지나치게 그러진 말자고, 얼굴이 새빨개질 때 그냥 내 성격이 그래서 열받는 거라는 걸 알고 싶습니다. 상대방이 잘못된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그녀가 매우 아름답게 보여서 저는 이 정도로 설득이 된 것 같습니다.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녀는 (몸집이 아니라) 점점 크게 보였습니다.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운데도, 그녀가 따로, 극적으로 크게 아름답게 보이도록 찍은 게 아닌 것 같은데도 커다란 존재감으로 빛났습니다.  그녀의 진실이 어둡지 않게 그려져 있어 희망적이었습니다. 모두 사정이야 다르겠으나 세상이 그렇게 돌아갔으면 좋겠고, 그게 그 감독의 힘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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