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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Mar 16. 2022

신의손

이상한 울음이 터져나오며 자신처럼 여운이 긴 영화.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 유스와 그레이트 뷰티. 두 영화만을 극장에서 봤다. 


그리고 집에서 어제, 넷플릭스로 신의손을 봤다.


우리 시대의 천재 감독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시대를 사는 천재 감독이 주는 느낌은 이런 것이구나. 


어제는 월요일이었고, 나는 점심을 먹은 뒤에 집에서, 따분하다 딱히 말할 것도 없이, 지루하다 할 것도 없이 평평한 채로 눈을 반쯤만 뜬 채로 이 영화를 봤다. 


이 사람의 영화를 볼 때면 이상한 울음이 터진다. 울고나서야 몇년 전에 봤던 두 편의 영화에서도 같은 종류의, 처음 겪어보는 종류의 희한한 울음이 터졌다고 깨달았다. 


나는 그저 바깥에서 바라보고 있으며 그걸 실감하고, 또 거리를 꽤 두고 쳐다보고 있고,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으며 나 또한 따로 말할 것도 없이 덤덤하고 그저 그런 기분이나,


갑자기 흐느낌이 왈칵 둑이 무너지며 범람한다. 나 자신을 타고 넘어 내 위로 솟아올라 주체할 수가 없어 소리내어 울게된다. 믿을 수 없이 슬퍼서 정신이 없다. 나는 순식간에 그 안에 들어가게 된 것 같기도 하고, 아까보다 확 가까워진 거리에서 그들을 바라보게 된 것 같으며, 나는 그인것 같기도 하고, 그 중에 한 명인 것 같기도 하다. 

훤한 대낮의 집 안, 소파 위에 앉아 더없이 방심한 채 안심하고 있던 나에게 누군가 크게 휘두른 주먹에, 불시의 공격에, 그것도 다들 멀쩡히 보고 있는 가운데, 오직 나에게만 날아온 주먹에 맞고난 뒤 눈을 제대로 뜨고 찾아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서러움 같은 거였다. 

아무리 울어도 전혀 봐줄 사람이 없어 소용이 없으니 괜히 소리 내어 그 사실을 확인하고 자극하며 애처럼 울게 됐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서럽게 항의하듯 울었다. 눈알이 빠질것처럼 눈물이 앞다투어 눈 밖으로 쏟아져 흘러내렸다. 나는 무서워서, 그래서 서러워서, 어찌할 수 없다는 암담함에 놀라서, 황망해서, 애원하며 잠깐동안 시원하게 목놓아 울었다. 무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다 불현듯 깨닫고 말았다는 듯이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맑고 시원한,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둔 무해한 울음이었다. 그가 나를 알아준 것이다. 위로는 아니었으나 흘러가도록.


어린 시절의 세상은 안전하면서도 기이하고, 단순하게 겪어나갔으나 복잡했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도대체 누구를?

아늑함을 빼앗아 간 것, 어린 시선에 마음대로 상처를 내는 것, 아무도 지켜주지 못하며 누군가 지켜주려 손을 내밀지만 침침한 것.

그때 느낀 침침하고 외로운, 방법을 모르겠으며 고요한 가운데 설명할 길 없이 외로운 그 감각만이 현실이었다는 것을, 언제나 그때와 같은 마음인데도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용서할 수가 없다. 



영화의 모든 장면에서는 그 감각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잘 묻어나는데,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여기저기에, 군데군데 많이 솟아나 있어 한꺼번에 다 볼 수가 없을 정도이다. 감각을 깨우는 지뢰밭 같은 느낌으로 평평하게 너르게 예전과 같이 나를 둘러싼 채 어둠에 묻힌 부분까지도 모두 펼쳐져 있다. 

세상이 가늠할 수 없이 너르게 펼쳐져 있다는 무한한 감각과 좁은 집안을 전부로 여기는 감각이 공존했다. 모두 안전하다고 느끼기도 하고, 집안마저 불투명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자신이라는 존재는 투명하게 느끼다못해 매번 낯설었으며...



영화의 여운으로 나는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뒤로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나는 갑자기 현실에 삐지고 말았다. 

내가 만드는 가정은, 불안정하며 많은 부분이 좌절에 젖은, 잘 해내지 못한 게 수두룩하고 구겨진 부분이 있는 어른이 만드는 가정은 어떨까. 아마 나는 안정과 애정을 쏟아부으려고 할 것이다. 내 못된 부분을 감추고, 가능하면 없애고 싶어할 것 같다. 그러나 어린이는 예전의 나처럼 외로울 것이다. 나는 모든 길, 고요하고 따분한 냄새와 소리가 풍기는 길을 전부 같이 걸어줄 순 없게 될 것이다. 나는 어떤 소리나 눈길을 감추지 못하는 순간을 자신도 모르게 전달하게 될 것이다. 내가 원했던 대로 안락함과 안정감으로 그의 세계를 감싸고 집안을 완벽한 요새로 지으려 온기와 애정을 두껍게 바르겠지만, 나약하고 무책임하게 변하고 마는 인간으로서 극복할 수 없는 무슨 짓인가를 저지르게 될지도 모른다. 



모두가 가엾고 나약하고 방법을 모른다. 동시에 강렬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며 무구한 영향을 끼친다. 



어린 시절의 미세한 감각을 다시 떠올릴 수 있다면 이 나약함과 외로움은 언제나 가방에 들어 있었던 자신의 낡은 일기장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수 있다. 그건 자신의 것이고 가방 속에 들어 있는 이 일기장은 잃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그러니 처음부터 쭉 자신이 손때 묻혀 온 이 낡은 일기장만큼은 자신의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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