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이마로 뜨지 말자.
저는 이런 것은 몰랐습니다. 눈을 뜨는 게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게 아니라 눈동자에 힘을 주는 거라는 것.
그 방식을 몰랐던 내내 눈을 똑바로 뜨는 건 힘이 들어가는 귀찮은 일이었어요. 가만히 있을 땐 눈을 내리깔고 있었습니다. 눈을 뜰 때 눈꺼풀을 드는 게 아니라 이마와 눈썹을 올려 눈꺼풀을 들어 올렸어요. 눈이 아니라 이마를 뜬 겁니다. 눈꺼풀을 올려야 하는데 이마와 눈썹을 올려 눈꺼풀이 따라 올라가게 한 거예요. 눈꺼풀을 들지 않은 만큼 눈썹과 이마가 위로 이동해 이마의 윗부분에는 주름이 잡힙니다. 그렇게 눈을 뜨는 게 버릇이다 보니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근육이 힘을 기르지 못한데다 시간이 지날수록 눈꺼풀은 점점 무겁게 늘어나고, 그럴수록 눈꺼풀을 들기는 더 힘들게 됐습니다. 그만큼 이마와 눈썹 근육을 많이 써 왔으니 이제는 무표정으로 있어도 이마 부분에 잘게 주름살이 잡힙니다.
눈을 그렇게 뜨는 건 평소에 시야를 부옇고 흐릿하게, 너르고 희미하게, 눈으로 보이는 형체를 스러지게, 안개 낀 것처럼 자욱하게 만드는 버릇과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넋을 놓고 있다가 누가 부르거나 놀라게 되어 의식의 흐름이 방향을 확 꺾을 때, 혹은 고개를 돌려 다른 방향을 보려거나 열을 올리며 대화할 때 등 제정신을 차려야 하면 이마와 눈썹이 위로 솟구어 올라 있습니다. 눈썹이 눈동자를 대신해 반응합니다. 평소에는 정신을 느슨하게 놓고 있는데, 그때 하늘을 보려거나 멀리를 내다보려 하면 턱을 추켜들어 고개를 뒤로 살짝 젖힌 채 눈을 가늘게 뜬 채 바라보게 됩니다. 아래를 볼 때는 눈꺼풀을 내리 닫은 뒤 아래에 난 틈으로 봅니다. 어쨌든 선명하지가 않습니다. 미처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아서, 눈은 정신이라, 마음은 눈동자라 똑바로 뜨지 않은 겁니다.
또 그건 취향과도 관계가 있어요. 비 오기 전 스산하게 바람이 불어오고 잔뜩 어두운 날에는 마치 머리통이 활짝 열린 듯, 그 안으로 바람이 신나게 통하는 듯 시원해 시야가 절로 또렷해지며 정신이 산뜻합니다. 조용하고 서늘한 구석진 자리에 있어야 마음이 흡족합니다. 안개를 헤치고 앞으로 걸어 나가는 건 지나치게 설레기 때문에 절로 눈을 가능한 크고 분명하게 뜨게 됩니다. 햇볕을 쬐는 것보다 차양 아래 가만히 앉아 있을 때 정신이 맑고 안정감이 있어요. 여름의 작은 극장 상영관, 한낮의 침침하고 서늘한 어둠과 정적 속에서는 알 수 없는 기대감과 생을 향한 무구한 애정이 마음 가득 차오릅니다. 머리 위로, 검고 네모난 상영관 전체가 끝없이 위로 확장되는 느낌이 듭니다.
반대로 시야를 뭉개 도피처로 삼기도 했습니다. 좋을 땐 시야를 번지고 일렁이게 만들어 그 속에, 감정에 잠겨 몸을 싣고 떠다니는 반면, 나쁠 땐 시야를 최대한 뭉개 분간할 수 없게 만들어 처해있는 환경에서 자신을 분리하는 겁니다. 거의 이 자리에 없다고 생각을 해버립니다. 앞을 분간할 수 없으니 소리도 약간 멀어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현실과 멀리 있으려고 하며 무책임하고 민감하며 속을 알 수 없게 굴어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무리 안에 녹아들어 자연스럽게 생활하지 못하며 자기만 알고, 얕은 감상에 젖어 세월을 낭비하며 구체적인 일을 계획하지 못하고, 감정에 휩싸인 채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남을 향한 관심이 부족하며 정신적인 인물이 되기를 추구하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인물이라는 점, 사람을 너무 좋게 여기거나 나쁘게 여기는 등 뭐든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점도 눈을 똑바로 뜨지 않는 면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라지 않은 느낌은 눈동자의 근력을 말하는 것이었을까요?
왼쪽 눈동자만 주로 쓴다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오른쪽 눈동자에 초점을 두고 오른쪽 눈동자로 세상을 바라보려 하니 매우 어색할 뿐 아니라 다른 눈을 뜬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오른쪽 얼굴 근육이 잠들어 있다 들켰다는 듯이 어색하고 머쓱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시동을 거니 피부가 재생되려는 것처럼 간질간질하며 그 아래 근육이 삐걱대며 경련을 일으킬 것처럼 뻑뻑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왼쪽 눈썹과 눈이 오른쪽 눈썹과 눈보다 올라가 있는 데에도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또 그러고 보니, 미용실에 가면 똑바로 앉아 있는데도 똑바로 앉아 달라는 말을 듣고 애써 다시 바르게 고쳐 앉아도 미용사가 한쪽 어깨를 지그시 눌러 몸을 삐딱하게 만든 상태로 머리를 자르는 일이 자주 있던 것과 어릴 때 친구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인 채 두 팔을 움직이지 않는 저의 걷는 모습을 흉내 내자 자리에 있던 다른 친구들이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던 일, 얼마 전 미용사가 왼쪽 머리숱이 오른쪽보다 훨씬 많다고, 이 정도로 차이가 나는 건 처음 본다며 의아한 표정으로 제 머리카락을 뒤적거리던 일도 떠올랐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 사진을 봐도 저는 눈을 내리깔거나 가늘게 뜨고 있으며 심지어 고개마저 한쪽으로 기울이고 있어요. 제가 이미 어릴 적에 터득한 눈 뜨는 방식, 그리고 저의 성격과 같이 한쪽으로 몹시 기울어진 힘의 균형은 저라는 인물을 감돌며 저와 영향을 끊임없이 주고받아 온 겁니다. 눈을 똑바로 뜨라거나 왜 눈을 다 뜨지 않는 거냐는 말을 들어보긴 했으나, 눈을 똑바로 뜬다는 게 무얼 말하는 건지 관심 없었을 뿐 아니라 눈동자에 힘을 실으면 된다는 정확한 방법도 생각해낼 수 없었습니다.
오른쪽 눈동자에 힘을 실으면 몸의 오른쪽 부분에 힘이 들어갑니다. 게다가 세상을 똑바로 보려고까지 하면 다른 눈을 뜨게 된 것과 같고, 그 때문에 어느 정도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남과 눈을 마주칠 때나 거울을 통해 자신의 눈을 볼 때도 전과 다릅니다.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가늠할 수 없어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건 아닐지 슬며시 걱정이 스미기도 합니다. 의식하지 않으면 금세 눈을 이마로 뜨게 되나, 깨달은 대로 신경을 쓰면 균형이 잘 잡힌 신선한 감각이 찾아옵니다. 공평하고 균형 잡힌 면이 돋아나는 건 아닌가 하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더는, 게다가 다시는 신선하지 않은 느낌, 빛이 가무러지는 느낌, 일순간 연회장에 빛과 소리가 꺼지더니 별안간 사납고 무자비하게 흰 불이 켜지며 있던 장소를 낱낱이 밝히는 선뜩한 느낌, 지루함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이러한 두려움과 불안을 크고 무겁게 만들던 불균형과 비현실감에 맞서 달라지는 세상에 적응하는 방식이 개편되려 이러는 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