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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Jun 29. 2022

긴 소풍

  산속으로 소풍을 갔다. 아름다운 가을 오전이었다. 나는 중학생이었다. 우리 반 애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으나 홀로 떨어져 있는 애들은 바로 잡혀갔으며 선생님을 따라 뭉쳐 있던 애들은 더 잔인하게 살해됐다. 애써 엄한 목소리로 소리치는 선생님을 가장 자비 없이 노골적으로 죽였다.

  사람이 얼마나 죽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살아있는 애들은 컴컴하고 축축한 지하실로 끌려갔다. 나도 거기에 있었다. 거기에서는 까딱하면 사람이 죽어 나갔다. 어떤 날은 모조리 죽었고 어떤 날은 한 명만 죽기도 했다. 내가 죽지 않은 건 이상한 일이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운이 좋다는 느낌이 들진 않았다. 참담했다.

  우리는 거기에서 함께 자랐다. 우리와 또래로 보이는, 사이코패스인 리더의 아들도 함께였다. 애들이 망치에 깨져 죽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다른 일상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매일 불안과 공포 속에서 할 줄 모르는 헤엄을 정신없이 치는 것과 같았다. 거기에 있는 아무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죽거나 죽일 때조차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모두가 재빠르고 과묵하고 땀에 절어있었으며 거지같이 살았다. 어차피 머지않아 죽는 목숨이었다. 

  음침한 그곳이 시골 재래시장 골목에 위치해 있다는 건 크고 나서 알았다. 몇 살이 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모두가 함께 자라났다. 음침하고 축축한 우리가 훑을 수 있는 건 그 시장 바닥이 전부였다. 우리는 밥을 먹지 못해 작았으며 옷은 때에 절어 그림자 색과 비슷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꾀죄죄한 데다 마치 그림자 같아서, 또 과묵하고 보기 싫은 모습이라 우리는 눈에 띄지 않았다. 시장에 있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건 당연했다. 시장에 있는 머리가 하얗고 선량하며 포근한 할머니들만이 때로 우리가 있다는걸, 그렇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걸 표시했으나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에서 지내는 것일지 관심은 전혀 없었다. 만약 도움을 청하려 입을 뗐다면 그 자리에서 소리 없이 몸이 터지거나 갈라져 죽을 게 분명했다. 아랑곳없이 죽인 뒤 빛의 속도로 시체를 치울 것이고 할머니들은 목격한 사실을 기억조차 하지 못했으리라.

  우리는 애같이도 보이고 노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리더의 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가장 검고 사악했으며 재빨랐다. 사람을 죽이는 데에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리더의 사이코패스 아들이 그 아버지를 죽일 때에는 분노가 느껴졌다. 그는 예민함의 차원을 뛰어넘어 동물보다 예민하며 날쌨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아버지를 뛰어넘는 무자비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기다렸던 것처럼 아버지를 손쉽게 망치로 쳐 죽인 뒤, 그 망치로 자기 허벅지를 잘라버렸다. 그 뒤로는 거기에 있는 애들을 차례로 죽이기 시작했다. 평소와 다르게 분노한 것으로 보이긴 했으나 평소와 다른 점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가 죽이지 않았으면 그의 아버지가 그 아들을 먼저 죽였을 터였다.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누군가를 둔기로 쳐 죽이거나 맞아 죽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애들은 다른 사람을 죽이다 죽기도 하고, 소리 없이 바닥에 엎드려 있기도 했고, 멀뚱하게 서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자기 차례에도 눈은 뜨고 있으며 소리 내지 못했다.

  그날도 나는 죽지 않았다. 나는 평소처럼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걸 보면서, 그가 자기 허벅지를 이유 없이 없애고 무표정한 얼굴로 사람들을 해치우는 걸 보면서 오늘은 죽을 거라고 예상했다. 여태껏 지나치게, 말도 안 되게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여기엔 같은 편이 없고, 또 리더는 있으나 충성심이나 의리 같은 감정도 없었다. 나는 그 산에서 필사적으로 뛰어 도망치지 않았으며 잡혀오고 나서도 도망치려거나 살려고 발버둥 치지 않았으므로 쉽게 포기한 채 온몸에 공포와 불안을 머금고 산 게 내 보호색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모두 죽이다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왔을 때 그만두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 눈을 쳐다봤다. 자기 손으로 아버지를 죽인 날이었다. 칼부림은 그저 내 앞에서 운 좋게 끝난 것같이 보일 수도 있으나 그와 눈이 마주치고 나자 나는 그가 나를 살려주었다고 알아챘다. 그리고 이런 호의가 다시 반복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는 것도. 오히려 눈에 띄지 않던 나는 타깃이 되고 말았다. 그로 인해 목숨은 구했으나 더없이 위험해져 버리고 말았다. 직감적으로 그가 내내 나를 좋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체제에 변화가 생겼다. 그의 아버지가 난폭하게 미쳐 큰 몸집으로 마구 날뛰며 살인을 벌였다면, 그 살인자의 검은 아들은 훨씬 냉정하고 섬뜩하게 암살했다. 매일 같이 보아오던 광경과는 달랐다. 매 순간 오금이 저렸다. 그러나 반대로 일상적인 시간은 여유로워졌다. 나는 어쩌다 보니 여기에 오고 난 뒤 처음으로 이불을 가지게 되었다. 그가 건네진 않았으나 결론적으로 그가 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단 한 번도 갈아입지 못한 옷 외에 개인적으로 소지하게 된 첫 번째 물건이었다. 사실 그 모포는 내 옷보다도 더 더러운 누더기였다. 구멍이 전부 뚫려 있으며 낡아 있었고 마찬가지로 때에 절어 있었다. 쓰레기 같았다. 그런데 그 모포는 소중한 이불인 양 착착 개어져 네모반듯한 모양으로 나에게 주어졌다. 나는 그 이불을 하루 덮고 잤으나 여러모로 어울리지 않는 데다 이미 너무나 소중한 물건이 되어버려, 애착이 물밀듯 불어나 이불을 숨기기로 했다. 나는 시장 할머니에게 갔다.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 거기에 이불을 숨긴 뒤 바닥에 몸을 납작 엎드려 볼을 대고 얼굴을 묻어보았다. 악취가 났으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돌아왔다. 울고 싶어져 몹시 놀랐다. 가을 소풍 이후 감정을 모두 내던져 버리고 있었다고 깨달았다. 이 일은 살인자가, 사이코패스가 나를 죽이지 않고 그러면서 단지 쳐다보던 눈길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너무나 위험해지고 말았다. 곧 죽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불안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나는 도망치고 싶어졌다. 할머니는 너무나 자상하고 따사로웠으나 이 시장의 모두가 그의 감시 아래 있었다. 그는 그의 아버지처럼 모두가 보는 가운데 사람을 죽이지 않고 감쪽같이 몰래 죽였다. 으슥한 곳으로 데리고 가지 않아도 그는 좋은 머리로 그 자리에서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하고, 혹은 보더라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죽일 수가 있었다.           

  언니가 나를 찾아낸 건 오히려 불행이었다.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느끼기는커녕 언니가 갑자기 죽어버릴까 싶은 거대한 불안에 모든 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언니는 자꾸만 말을 하려 했다. 말이 통할 거라고 여기며 나를 구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접근을 시작했다. 나는 살고 싶기보다 언니를 필사적으로 막고 싶었다. 나는 처음으로 시장에서 벗어나 언니의 아파트로 찾아갔다. 그들이 이미 먼저 다녀갔다는 건 냄새로 알 수 있었다. 모든 건 이미 망가져 있었다. 여태껏 내가 쌓아 온 그림자 같은 삶이 끝났다는 데 다시 한번 절망했다. 나는 이제 쫓기고 있었다. 뛰어 도망치며 숨었다. 그가 원할 때 나를 죽일 터였다. 그러나 언니가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죽는 건 그림자가 된 사람들에게만 일어나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말을 제대로 하는 법을 잊은 것처럼 언니에게 제대로 된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절대로 시장에 오지 말라고만 거세게 당부하고는 언니의 아파트를 황급히 떠났다. 당분간 이 아파트를 쓰지 말라고 말하면서. 언니는 화를 냈다. 내가 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내가 돌아가야 하는 건 너무도 당연하게 정해진 사실인데 언니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서둘러 시장으로 돌아가 할머니의 가게로 갔다. 안으로 들어가 내 모포에 얼굴을 대고 차가운 바닥에 엎드렸다. 언니가 올까 봐 불안했다. 그리고 언니에게 이 이불을 주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시장에 두는 것보다 훨씬 안전할 것 같아서.

  언니는 내 말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 망토처럼 무언가 뒤집어쓴 채 아주 조용히 시장에 진입했다. 그 모습을 봤을 땐 경악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하얗게 얼어버렸다. 언니는 할머니의 가게 맞은편 셔터 내린 빈 가게에 자전거를 기대 놓으며 내리려 했고, 동시에 그의 부하가 아주 부드럽게 가벼운 몸짓으로 날아들 듯 언니의 망토 안으로 들어갔다. 당연하게도 아무도 목격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나치게 첨예한 칼끝으로 언니를 찔렀을 것이다. 자전거는 다시 출발했다. 마치 망토가 투명한 것처럼 나는 그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했다. 언니는 죽은 것이다. 그의 지시로.

  나는 죽기로 했다. 몸을 일으켜 그가 있는 우리 보금자리로 걸어갔다. 여태껏 내가 미쳐 있었다고 깨달았다. 나는 도망쳤다. 시장 안으로 깊이. 쥐 같은 우리가 모여 사는 빛도 없이 축축한 콘크리트 바닥을 큰 소리를 내며 뛰어 도망쳐 들어갔다. 나는 기꺼이 쫓겼다. 살고 싶었다. 너무도 살고 싶어서 그가 말도 안 되게 예리하고 잔인하고 무서워서 울부짖었다. 죽을 걸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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