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녀와서.
나는 이런 걸 이해할 수 없습니다.
수하물을 찾기 위해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기다리고 서 있을 때 왜 선 밖에서 기다리지 못하고 컨베이어 벨트 앞에 바짝 붙어 기다리는 걸까요? 선이 그어져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옆에 서 있던 사람들은 뒤에 서 있는 꼴이 되어 벨트 위에 놓여 있는 가방을 앞서 볼 수 없게 됩니다. 가방이 선 안에 들어선 사람을 지나고 나서, 당장 코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게 되어 미리 대비할 수가 없게 됩니다. 짐을 따라 허둥지둥, 또 컨베이어 벨트 바로 앞에 늘어선 사람들을 헤쳐가며, 짐을 미리 눈으로 확인하고 자기 자리에서 가볍게 집어 들 기회를 빼앗긴 채 움직이게 됩니다. 한 사람이 선 안으로 들어서면 그래서 모두가 너도나도 다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 있게 되고 그러면 대체로 모두가 허둥지둥, 자리를 잘 잡으려 옥신각신 모두 엉망이 됩니다. 그런 이기적인 꼴에 복장이 터집니다. 다 선 밖에서 기다리면 차분히 짐을 찾아 나갈 수 있을텐데, 느긋하고 차분할 수 있을텐데 도대체 왜 희한하게 사투를 벌여야 하나.
또 기내에서 통로 자리에 앉아 승객들이 타기를 기다리는 동안 혹시 누가 내 얼굴을 가방으로 치고가진 않을까, 여미지 않은 두꺼운 외투의 지퍼 부분으로 살짝 긁고 가진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우게 됩니다. 등에 배낭을 멨을 땐 몸을 옆으로 돌리거나 뒤로 돌릴 때면 그건 자기 몸에 한 부분이나 다름 없으니 그렇게 염두에 두고 옆이나 뒷 사람을 치지 않게 조심해야 됩니다. 실수를 할 순 있지만 일단은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 조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뒤에 오는 일행에게 말을 건네려 배낭을 멘 채 좁은 통로에서 뒤를 휙 돌아보는 바람에 코 앞까지 덮쳐 오는 배낭을 손으로 막으면서 짜증이 확 끼쳤습니다. 언제나 그런 일이 많으니 싫은 사람은 집을 떠나는 순간부터 방어하는 마음으로 대비하는 마음으로 조심해야 됩니다. 만약 조심하라고 말해야 한다면 하루 종일 모르는 남에게 조심하라고 으름장 놓으며 떠들고 다니는 사람이 되야 할 겁니다.
호텔 카운터에 서서 옆 칸에 나란히 서서 체크인 하던 커플은 먼저 할 일을 마치고 나서 우리를 지나치는데 여자가 어깨에 멘 가방이 부주의하게, 조금도 조심할 마음 없이, 마치 아무도 없는 길을 지나는 것처럼 제 몸에 살짝 닿은 게 아닌 몸을 가방으로 쭉 쓸고 지나갔습니다. 옆에 벽이 있더라도 가방이 망가질까봐 그렇게 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 여자를 돌아봤고 눈이 마주쳤으나 그 여자는 뻔뻔하게 지나갔습니다. 뻔뻔하다는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어째서 모르는 사람에게 무례한 행동을 당해야 하는지, 그 여자는 나를 뭐라고 생각하기에 모르는 사람인데도 사과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더 나아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째서 사과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걸까. 어째서 모르는 나에게 응성받이처럼 구는 걸까. 애도 아닌데 왜 여럿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응석받이처럼 구는 걸까. 왜 당연히 받아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제가 이렇게 늘상 불만을 터트리면 "그럼 말해! 사과하라고 말해. 조심하라고 말해."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 저는 매일 같이 싸우고 돌아다녀야 합니다. 그렇게 말해서 사과를 받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건 그렇게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기도 해봤으나 거의 무조건 그렇게 말하는 순간 싸우지 않을 수 없으며 싸움이 시작되어 봤자 말도 안 되는 소리만 늘어놓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공격을 받은 것처럼 감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게 대부분입니다. 사실 이렇게도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해 사과할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사과를 하거나 조심을 했을 거라고.
어렸을 때는 버스를 기다리는 줄에 서 있다가 제가 마치 안 보이는 것처럼 은근슬쩍 제 앞으로 자연스럽게 끼어드는 아주머니에게 새치기 하지 마시라고 했다가 배를 맞은 적도 있습니다. 뭐 엄청 세게 주먹을 배에 꽂으신 건 아니지만 그 말을 듣고 불쾌하셨는지 손으로 배를 치듯이 밀고 말이 나온 김에 아예 대놓고 저를 노려보며 앞으로 끼어들었습니다. 덩치가 저보다 크시고 눈빛이 살벌해 좀 압도되었습니다만 화가 머리 끝까지 났습니다. 남의 배를 어떻게 이렇게 쉽게 칠 수 있을까, 나는 얼마나 만만해 보이는 걸까 하고. 아주머니는 결국 새치기를 해서 버스에 탑승했고 사람들을 헤치고 빠르게 얼마 없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그 아주머니는 저에게 어린 게 싸가지가 없다고, 재수없다고 큰 목소리로 욕을 해댔습니다. 저는 분이 풀리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얼떨떨한 분노로 머리가 가득 차 어지럽고 눈 앞이 약간 희미해질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보는 눈도 있고 해서 욕만 빼고 차분한 척 얼굴이 시뻘개져서 새치기를 하는 게, 남의 배를 때리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따박따박 말대답을 했습니다. 버스에 탄 모든 사람들은 정말 지겨웠을 겁니다. 제가 더 특이해 보였을 것 같습니다. 아주머니는 먼저 내리시면서 저에게 쌍욕을 박았습니다. 나도 정말 그러고 싶었습니다만 보는 눈이 많이 의식됐고, 또 저는 더 그 버스를 타고 가야 해서 창문을 좀 무리하게 열고 새치기 하지 말고 사시라고 조용히 쏴붙였습니다. 열이 너무 올라 심각해진 아주머니의 얼굴을 뒤로 하고 버스는 출발했고 나는 속에 분노가 가득했으나 몸의 겉면은 창피함으로 싸늘해 몸이 떨렸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괜찮은 척 하는 굳은 내 얼굴은 정말 웃겼을 겁니다. 아직 내릴 곳이 아니었으나 진짜로 원래 여기서 내리려고 했던 것처럼 연기하며 두 정거장 쯤 뒤에 내렸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여러 번의 경험으로 사과하라고, 혹은 조심하시라고 말한다고 해서 일이 좋게 풀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먼저 내 얼굴을 치지 않도록 얼굴 가까이에 붙은 가방을 밀어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 사람도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배낭을 만지는 걸 불쾌하게 여길 수는 있으나 그렇게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은 애초에 조심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인정하는 것에 민감합니다. 상대방이 엄청난 실수를 저질러도 그 사람이 곧장, 아니 시간이 얼마든지 지났다고 해도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순간 아무런 비난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인정하고 나면 더이상 뭐라고 할 말이 없습니다. 괜찮다고 말하며 진짜로 괜찮아집니다. 좀처럼 이해 안 되는 변명을 대도 넘어갈 수 있습니다. 미안해라는 말에는 힘이 있어 자동으로 괜찮다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너그러운 마음이 솟아납니다.
외국으로 여행을 갈 때마다 먼저 들어간 사람이 뒷 사람을 위해 문을 잡고 기다려 주었다가 문 앞에 도착해 손으로 문을 잡은 무게가 느껴질 때 문을 놓는다거나, 혹은 눈으로도 기다려주었다가 들어간다거나 또는 그는 밖으로 나가가 나는 문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 대치 상황에 기꺼이 한 손으로 문을 잡고 한 손으로는 손바닥을 펼쳐 안으로 혹은 밖으로 먼저 가라고 손짓할 때 너무나 큰 감동이 밀려옵니다. 인류애가 솟아납니다. 기꺼이 이 뒤로 누구든 양보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서로서로 이렇게 지낼 수도 있구나 라고. 그 감동을 안고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 뒤따라 오는 사람에게 문을 잡아주면 그 사람은 나를 보지도 않고, 이 문은 원래 자동문이었던 것처럼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문을 통과합니다. 나는 문지기가 됩니다. 문지기에게라도 그렇게 하는 거 아닙니다.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말이 하기 좀 그렇다면 목례를 하는 것이나 눈빛으로 잠깐 감사나 미안함을 전하는 건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이 된건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몇 번 그러고나면 나는 문을 잡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계속 문을 잡아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럴 사람은 조금 빠른 걸음으로 와 그 문을 잡거나 눈을 마주치거나 고개를 살짝 서로 숙이는 인사를 하기 때문에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간혹 앞서 나가던 사람이 문을 잡아주면 나는 굽실거리며 뛰어가 감사하다고 말하게 됩니다. 문지기인 나에게 문을 열어주다니 정말 감격해버리고 맙니다.
나는 부모님의 집이 제주도라 제주도 가는 비행기를 자주 탑니다. 아무래도 작은 비행기가 많다보니 대체로 좌석이 좁습니다. 나는 속이 뒤집어지기 전에 대체로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안전밸트를 하고 잠에 들려 합니다(통로 좌석이 아닐 때에만). 대체로 바로 잠에 듭니다. 옆 자리에 누군가 탑승하는 기척을 느꼈고, 좀 뒤에 나는 잠에 들랑말랑 했는데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이 팔꿈치로 나를 팍 쳤습니다. 안전벨트를 하려다 뭐가 잘 안 풀렸는지 자기도 모르게 치게 된 것 같아 눈을 뜨지 않은 채 그대로 다시 잠에 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조금 뒤 다시 한 번 또 팔꿈치로 나를 팍 쳐서 잠에서 짜증으로 인해 팍 깨어나며 나는 기침처럼 두자로 된 욕을 뱉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옆 자리에 앉은 여자는 놀라 죄송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욕을 하는 건 정말 막돼먹은 행동입니다만 욕을 안 했으면 절대 사과했을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처음 사과를 이끌어 낸 자신이 사실은 깡패같고 마음에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잠과 약간 무의식과 이런 게 섞여 가능했던 일이었는데, 제상태로 돌아오면 텐션을 잃어버리면서 들통 나 싸움이라도 날까봐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 나는 계속 그 막돼먹은 깡패같은, 말이 전혀 통하지 않을 것 같은, 무지막지한 살벌한 사람의 기운을 잃어버릴까 속으로, 기운으로 연기를 해나갔습니다. 들키기 전에 빨리 비행기에서 내릴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렇게 무자비한 느낌의 비행은 좀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가 않았습니다. 갑자기 응석받이 같던 여자가 그렇게 빠릿하게 사과를 반사적으로 건넬 수가 있구나라고. 아무리 세게 옆 자리를 침범하며 사람을 쳐도 눈길 한번 건네지 않던 여자가.
여행지에서 야식을 먹으러 밤거리고 나섰습니다. 지금 일본에는 한국 사람이 정말로 많습니다. 후쿠오카의 인도는 정말 좁아요. 그러나 텐진쪽 큰 길의 인도는 넓습니다. 그쪽은 보행자가 많으니까요. 우리나라는 사실 좁은 길을 지날때나 사람 많은 길을 지날 때 서로서로 어깨를 조금 비스듬히 하고 몸을 살짝 돌리면 반씩만, 조금씩만 조심해도 서로 부딪히지 않을 수 있는데도 기센 놈이, 난 치고 갈라니께 피하려면 알아서 피하셔 라는 기세로 가는 사람은 어깨 쫙 피고 당당하게 지나가고 모르는 사람하고 서로 어깨 치이고 지나가기 싫은 사람이 팔랑팔랑 여기저기 피해 다녀야 하는 느낌인데 일본이고 이스탄불이고 유럽이고 가도 전체적으로 그런 느낌을 풍기는 곳을 본 적 없습니다. 일본이야 한 명도 치고 가는 일 없고 이스탄불 역시 아주 오래된 도시라 워낙 인도가 좁은데도 쿨하게 차도로라도 서로 빠릿빠릿하게 피해가며 유럽 역시 미친놈들 아니고서야 매너 있게 피해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는 정말 그런 부분에 신이 납니다. 하루 종일 외출해도 피로가 적습니다. 물론 인종 차별을 당한다거나 이런 건 다른 문제로 두고요. 아무튼 그 밤거리 인파 속에 제 앞에 있는 한국 관광객이 눈에 제일 띄었습니다. 사람이 많으니 모두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며 마주칠 것 같으면 반대편으로 피하려 애쓰고 길의 흐름이 좌측 통행인지 우측 통행인지 보면서 걷는 느낌이었는데 제 앞에 있는 한국 관광객 두 명은 커플이었으며 막 도착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날은 돌풍 경보 같은 느낌의 대단한 날씨였어요. 남자분은 앞서 자신의 캐리어를 끌고 나아가고 있었고, 그보다 좀 더 작은 캐리어를 끌고 있는 여성분은 춥고 짐이 무거워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갈지자로 바람이 날리는대로 몸을 가눌 생각 없이 자기 캐리어를 제대로 끌 생각 없이 무거워서 불만이라는 듯이 제멋대로 주변을 신경 쓸 겨를 없이 걸어가는 모습은 신경쓰였습니다. 빠르게 가지 못할 것 같으면 좀 옆으로 비켜서서 걸어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작은 캐리어에 돌덩이가 들어 정말이지 무거워 견딜 수 없을 순 있으나 그렇대도 모르는 다른 사람에게 투정 부리듯이 이리저리 걸어 앞에서 오는 사람, 뒤에서 오는 사람 전부 그 사람이 나아갈 방향을 가늠할 수 없어 우왕좌왕 하도록 응석을 부리는 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아무리 무거워도 자신의 캐리어는 컨트롤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기도 한데, 그게 어렵다면 조금의 의지라도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집을 떠난 순간부터 어린이도 아닌 우리는 남에게 응석부리지 않고 제대로 사과하고 제대로 행동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서기도 뒤에 따라가기도 희한한 속도와 걸음의 방해꾼으로 보였습니다. 그 호텔에는 한국 관광객이 많았고 호텔 로비 화장실은 후쿠오카에서 가 본 유일하게 더러운 화장실이었습니다. 호텔에서 문을 잡아주면 나를 문지기로 만드는 사람은 여지없이 한국 사람이었습니다. 자신만 겨우 들어갈 틈으로 몸을 쏙 들어가는 사람은 뒤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혹시라도 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심보가 대단합니다. 우리는 서로 원수가 틀림없는 것이겠죠? 그러니까 이번 생에 마주친 나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피해를 끼치거나 어쩌거나 절대로 사과도 안하고 쳐다보기조차 싫으며 조금도 자신의 무의식중에라도 도움이 될까 두려운 것이겠죠? 전생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나는 전생에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닌 겁니까.
이런 저런 이유로 성격이 이렇게 더러운 나는 여행을 정말로 좋아합니다. 사람마다 싫고 좋은 포인트가 다르겠으나 어쩌면 나는 이런 사소한 것 때문에 평소에 외출을 즐기지 않습니다. 사람 없는 골목길이 좋습니다. 산은 더 좋습니다. 사람 없는 산은 그야말로 최고입니다. 내가 예민하고 성격도 좋지 않은 건 알지만 아무튼 제 머리로는 이해가 조금도 되지 않습니다.
엊그제도 지하철 타고 있었는데 긴 목도리의 한 쪽이 바닥에 끌리는 채 구두를 신고 자리에 앉으려 위태롭게 걸어오는 게 안 그래도 눈에 띄었는데 자리에 앉던 중 몸이 중심을 약간 잃어 옆에 앉아있는 모르는 여자 위로 몸이 쏠려 부딪히는 걸 봤습니다. 그렇게 자리에 옆에 앉은 여자 위로 넘어지며 앉는 그 여자의 눈은 일행인 친구 눈만을 주시하며 웃었습니다. 자신이 몸으로 덮친 여자 쪽은 끝내 바라보지도 않았습니다. 자리에 앉아서도 뭐가 웃긴 일인지 모르겠으나 친구를 보고 눈으로 웃고 있었습니다. 미안하고 머쓱하고 창피해서 웃었겠지요. 그러나 그건 사과를 해야 할 일이지 일곱 살처럼 웃는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만 서로 서로 괜찮은데 저만 괜찮지 않고 저만 이토록 이해가 가지 않는 걸까요? 원래 저에겐 융통성이라곤 하나도 없기는 합니다. 나도 뭐 다 잘하고 사는 건 아닙니다만... 피해를 꼭 주고 받으면서 살아야 되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게 정인가? 근데 왜 정없이 마주치는 눈들은 유난히 상냥하지 못하고 사나울까! 나는 보통때는 바닥을 보며 걷고 여행을 가면 사람들 눈을 들여다봅니다. 가볍게 눈으로 웃거나 목례하고 미소를 짓기도 하고 실례합니다,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라고 자주 말합니다. 그런 제 모습이 훨씬 마음에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