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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Sep 14. 2023

민감한 생각

민감한 성격

  어렸을 때부터 사람 많은 곳이 싫었습니다. 학교는 괜찮았어요.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싫었습니다. 소도시에서 자랐기 때문에 사람 많은 곳은 많지 않았습니다만, 버스 정류장이나 버스 안(지하철이 있었다면 무조건 포함입니다), 시내에서 사람이 몰리는 길 정도입니다. 공원이나 동네 어디든 도시에서처럼 사람이 우르르 지나가는 길은 없었습니다. 


  그때는 버스 정류장에 전광판이 없었으므로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버스가 오면 타려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갔습니다. 나는 줄을 서야 한다고 생각하고, 먼저 온 사람, 나보다 뒤늦게 버스 앞에 도착한 사람을 인식하면서 문 앞으로 한 걸음씩 다가갔습니다. 그때는 똑바로 줄을 서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서로 서로 알아서 순서를 지키려는 느낌보다는 우르르 몰려가서 되는대로 되도록이면 먼저 타고자 하는 사람들 틈에서 먼저 올라가는 놈이 먼저 버스에 오른다 라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합니다. 자동으로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순서를 가늠해보고 있는데 말입니다. 의미없는 짓인 건 알지만 자동으로 그렇게 됩니다. 순서가 없는 걸 잘 받아들일 수 없는 머리통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하루는 저보다 덩치가 훨씬 큰 아주머니가 다가와 저와 제 앞 사람 틈으로, 제 배를 손으로 밀치고 들어와 섰습니다. 원래도 새치기 당하는 일이야 많지만 그 날은 누군가 모르는 사람이 손으로 되는대로, 편하게 손 닿는 곳 아무데나, 마침 거기가 복부, 옆구리 쯤이었지만 그게 어디든지간에 상관 없이 조금의 망설임이나 조심성 없이 밀어버려서 분노가 솟구쳤습니다. 나는 소심해서 원래 속으로 잔뜩 화가 나서 얼굴은 정말이지 쉽게 달아오르더라도 뭐라고 말을 못 꺼내는 성격인데다 그때는 고등학생 정도였으므로 더욱더 부당한 일을 당해도 따져 묻질 못했습니다만, 그날은 달랐습니다. 어깨도 아니고, 등도 아니고, 팔도 아니고, 배라니. 거대하고 무거운 분노가 치밀어 자동으로 말이 튀어나갔습니다. 오래된 일이라 정확한 문장은 기억 못하지만, "새치기 하지 마세요." 라고 조그맣고 화난 목소리를 냈습니다. 분노에 파묻혀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얼굴만 시뻘개졌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곧바로 상당히 분노했습니다. 아주머니가 한 말도 정확한 문장으로 기억나지 않고, 그저 어린 게 싸가지가 없네 이런 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주머니는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면서 버스에 오르고 나서도 멈추지 않고 나에게 악담을 퍼부었습니다. 나는 사춘기 소녀였습니다. 게다가 소심하기로는 엔간해서는 어디에서도 지지 않을 정도로 내성적인 녀석이었습니다. 수치스러웠습니다. 아주머니는 뒷쪽 좌석에 앉아 계속 큰 소리로 떠들었습니다. 나는 버스 앞쪽에 서서 조금 생각했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나는 예나 지금이나 융통성이라곤 없는 놈입니다. 내가 생각해 봤을 때 잘못한 건 없었습니다. 그래서 듣다 못해 나는 아주머니가 서 있는 좌석 앞으로 걸어가 그 앞에 서서 아주머니를 똑바로 바라봤습니다. 아주머니는 내가 가까이 가니 더욱 화가 나 길길이 날뛰었습니다. 나는 아주머니를 노려봤습니다. 창피함에 얼어 붙었던 화가 폭언을 들으면 들을수록 다시 끓기 시작했습니다. 아닙니다, 사실 계속 끓고 있었습니다. 원래 소심하고 그릇이 작은 놈이 그렇듯이 아주머니가 배를 밀치며 새치기 했을 때 이미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머리 뚜껑이 열릴 것만 같았습니다. 내 성대는 지나친 분노로 쪼그라붙어 있었으나 아무튼 나도 맞서서 왜 내 배를 밀쳤느냐고, 모르는 사람 몸을 어째서 함부로 만지느냐고, 왜 새치기를 하고 서느냐고 할 수 있는 한 정확한 발음으로 말을 뱉으려 애썼습니다. 아주머니는 새치기 하지 않았고, 내 배도 만지지 않았다고 말도 안 되게 우겨댔습니다. 나머지는 내용과 상관없는 인신공격과 쌍욕 같은 걸로 맞섰습니다.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사실상 별로 없어서 그냥 왜 새치기 했냐고 반복했는데, 그 모습은 조금 모질라게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실제로 조금 모질라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우리는 몇 정거장을 지나 꽤 한참 버스가 굴러가는 내내 승객들에게 민폐를 잔뜩 끼치면서 버스 안 분위기를 장악한 채 싸웠댔습니다. 그러다 아주머니가 내릴 때가 왔고, 내리는 김에 아주머니는 한층 수위가 높은 쌍욕을 뱉었습니다. 나한테 미쳤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마 저도 아주머니가 내리는 때라서인지 미친 건 아줌마라고, 새치기 하지 말고 사시라고 맞섰습니다. 그래서 아주머니는 그 자리에 서서 아는 욕이란 욕은 다 뱉는 느낌으로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그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습니다. 가능하다면 차라리 같이 내리는 쪽이 좋았을 겁니다. 한 정거장은 너무나도 길었습니다. 나는 울고 싶었는데, 울면 정말 꼴사나워질테니 울음을 참으면서 창 밖 정면을 똑바로 응시한 채 꼿꼿이 통나무처럼 서서 굳어 있었습니다. 나는 너무 소심한 소녀였지만, 사실 길거리 싸움은 또 그게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학교에서는 몇 번 더 있었습니다. 선생님과의 대치도 몇 차례 있었습니다. 나는 소심한 소녀이자 건드리면 바로 크게 짖은 작은 개처럼 뚜껑이 열리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평범하고 또 좀 순하게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맹한 애처럼 보였을 수 있고, 그건 또 사실입니다. 부당한 건 무식하게 못 참고 자신 안에 싸움꾼 기질도 없지 않아서 싸움 끝에 잘잘못을 생각해보면 결국 잘한 것만은 아니게 됩니다. 사람이 좀 이럴 수도 있지 저럴 수도 있지 하는 말은 전혀 이해 못합니다. 큰 그림 같은 것도 머리에 없습니다. 머릿속으로 위 아래, 상하 관계, 수직 관계와 같은 것도 이해 못합니다. 


  서른 여섯살이 된 지금, 저는 자리가 남아 돌지 않은 한 지하철에서는 웬만하면 서서 갑니다. 서울로 올라오고 보니 어딜 가나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남과 부딪히지 않는 건 참 어려웠습니다. 그 뒤로 누군가와 그런 걸로 싸운 적은 없는데, 어디에서나 부딪히지 않으려고 어깨와 몸을 요리 저리 피해가며 다녔습니다. 정말 긴장되는 일입니다. 사람들 눈에는 내가 투명인간처럼 보이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마치 내가 없기라도 한 것처럼 좁은 길에서, 혹은 좁고 공간이 넉넉한데도 칠 기세로, 조금도 피해주지 않을 기세로 걸어오는 사람들을 아슬아슬하게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고 걷다 보면 몸에 긴장이 빳빳하게 들어가 말도 못하게 피로합니다. 그래서 밖에 잘 나가지 않고, 나는 어렸을 때부터 대중 교통을 타는 것보다는 걷는 쪽을 선택합니다. 시간만 된다면 웬만하면 걸어서 다닙니다. 소도시에서는 그게 가능했습니다. 걸어서 시내에 가봐야 사십 분에서 한 시간 정도, 멀어도 두 시간이면 자주 가는 곳은 모두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단련되어 시간만 있다면 서울 안에서도 조선 시대 사람처럼 걸어서 이동합니다. 그러나 해외 여행만은 좋아합니다. 갔던 어느 나라에서도 우리 나라에서처럼 서로 눈을 절대 마주치지 않으면서도 몸이 닿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나라는 없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 서로 없는 사람 취급을 하는 것 같아요. 여기에서 적응하려면 돌파해야 합니다. '나 간다. 나 밀고 간다. 한번 와 보든가.' 라는 마음으로 어깨 펴고 지나가면 그쪽에서 피한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부끄럽게도. 우리가 반씩, 한 명이 어깨와 몸을 회까닥 제끼지 않고 살짝, 저쪽에서도 살짝 사람이 있다는 걸 인식하면서 매너 있게 지나간다면 좋았을 텐데요. 사실 이거는 특이한 문화입니다. 야비하게 시비 걸 때나 하는 것 아닙니까? 부딪힐라면 부딪히든가! 이런 마음으로 거리로 나서야 한다니 너무 억셉니다. 서로 눈이 잘 못 마주치면 시비가 붙기 때문에 서로 없는 것처럼 눈을 절대 마주치지 않는 문화가 있는 걸까요? 마주치면 너무 사나운 눈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외국 여행을 가서 눈을 어쩌다 마주 쳤는데 살짝 인사를 한다던가, 마주쳤는데 호의적인 부드러운 눈이 있어서 낯설고 놀랐습니다. 그런데 눈을 마주치면 살짝 미소 지으면서 살짝 인사를 나누는 거, 익숙해지니 너무나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부딪히면 눈을 마주치며 미안해! 말하고, 지나갈 때 몸이 닿게 될 것 같거나 공간이 좁으면 실례할게! 말하는 거 너무나 쾌적한 일이었습니다. 미안해, 고마워, 안녕! 말하는 것. 우리 나라에서는 거의 도를 전파하는 사람들만이 안녕하세요, 라고 말을 건네옵니다(제사까지는 안 가고 제사에 쓰신다기에 편의점에서 두루마리 휴지 뭉치와 쌀, 과자 같은 것을 사드린 적은 있습니다. 물론, 그걸 믿어서 그런 건 아니고 거절을 못 해서 그랬습니다. 사람이 말을 걸어오는 데 무시할 수가 없었던 때의 일입니다). 또, 가게 또는 건물 안쪽에서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과 들어가려는 사람이 대치했을 때 양보해 주는 일, 또 뒤따라 나가거나 들어오려는 사람에게 문을 잡아주는 일도 보편적이진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람이 많이 오가는 큰 건물에서 뒤따로 나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다간 문지기로 전락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당연히 저를 문지기로 생각하고 우르르 나가면서 고맙다는 말을 하는 놈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들으려고 한 게 아니더라도 모르는 사람이 베푸는 보잘 것 없는 호의를 고마워 하다보면 일상 생활이 훨씬 즐거워지는 법입니다. 그러다 보면 서로 잡아주고, 인사하고, 누군가 나에게 문을 잡아주며 기다려주는 호의를 받게 되고 서로 그렇게 될 테니까요. 이런 기본적인 매너가 유난히 없습니다. 어느 나라를 가도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유난히 특이한 놈 아니면 그래도 대체로 되도록이면 서로 피해주려고 하고, 부딪히면 사과하고, 배려해주면 고맙다고 말을 합니다. 그게 어른 아닙니까? 애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혼이 나야 됩니다. 이렇다보니 어쩌다 누군가 문을 잡아주거나 기다려주면 굽실거리게 됩니다. 너무 감사하고 감동하게 됩니다. 

  여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와 손을 씻으려고 할때면 자주 손을 씻고 있지 않은 채 거울을 뜻없이 들여다보고 있는 놈이 손 씻으려는 사람들에게 절대 세면대를 양보하지 않는 광경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볼일을 보고 거울만 들여다보고 손도 안 씻고 나가는 놈이 보통 그러합니다. 왜 뜻없이 심술을 부리는 걸까요. 그리고 허리께 위 높이로 설치된 거울 속으로 자신의 전신을 보려는 놈이 거울에서 멀리 떨어져 나가면서 자신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며 화장실 칸의 문쪽으로 슬금슬금 뒷걸음질 칩니다. 그 뒤로 지나가려다 그 놈이 누가 지나가건 말건 비켜주지 않으면서 손으로 쳐서 넘기는 놈의 긴 머리칼에 얼굴을 맞게 되면, 정말이지 불쾌합니다. 놈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길래 절대로 미안하다고 하지 않을까, 언제 감았을지도 모를 모르는 사람의 머리칼이 얼굴에 닿게 되면 얼마나 불쾌할지 생각하지 않을까, 자기 몸이면 어떤 사람도 더럽다고 생각각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나, 남들이 다 자기 부모인 줄 아나 라고 정말 속으로 별 생각을 다 합니다. 하지만 이젠 싸우지는 않습니다. 지나갈게요 라고 말할 때도 작은 목소리로 해선 안됩니다. 나는 이제 굳은 얼굴로 딱딱하게 지나갈게요, 실례합니다 라고 말하는 36살이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도 합니다. 날씨 때문일까? 너무 덥고 너무 춥고 이러니까. 혹은 스킨쉽을 좋아하나? 남과 부딪히는 게 그렇게 싫지만은 않은 느낌인가? 우리 나라로 여행 온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싸운 것도 아닌데 어깨를 치고 가고 지나간다고 말도 안 하고 대뜸 손으로 아무데나 만져 남을 밀치고 지나가고, 새치기 하고, 사과 안 하고, 생각보다 새치기 당한 사람도 새치기 한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고, 서로 거의 절대로 웬만하면 쳐다보지 않고 이런 분위기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당황스럽지 않을까.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아무도 안 보고 있는 것 같지만 다 보고 있기 때문에 아마 낯설어서 외국인은 은근히 안 치고 피해서 지나갈 수도 있겠다. 낯설어서 약간 외국인은 우대해 주는 느낌도 있으니까. 그마저도 공평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나는 공평함에 미친 사람이라 우리 가족도 나 자신도 뜯어보게 됩니다.



  쓰고 보니 별난 놈이 다 있네요. 그래서 점점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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