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주 Sep 15. 2023

향기가는 볼펜

아침 7시, 부슬비, 우비. 

  학교 다닐 때의 기억은 강렬합니다. 눈 뜨자마자 우비를 입고 밖으로 나가 산책했습니다. 오래간만에 든 충동이었습니다. 아침부터 흐리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이 날씨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분을 안겨줍니다. 어둡고, 차분하고 처연하며 동시에 어딘가 천진난만한, 가벼운 기분이 찬 기운, 물기와 함께 몸에 스밉니다. 걸으면서 초등학생 때의 기분이 떠올랐습니다. 다른 날과 다르게 특별히 어둡고 차분한, 해서 생생한 느낌이 드는 교실 안의 광경과 책상에 앉아 창 밖 너머를 보면 보이는 사람 없는 운동장. 그리고 평소와 다르게 들리는 소리.  평소보다 훨씬 잘 들리고 잘 보이는, 깨어나는 감각. 그리고 평소보다 향기가 선명하게 맡아지는 어릴 적 유행했던 향기나는 볼펜 냄새가 떠올랐습니다. 나는 왠지 모르게 향기나는 볼펜 한 자루 소지하고 있지 않은 성인이 되어서 그 볼펜의 냄새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그 냄새와 비슷한 향이 나는 무엇이든 발견하면 멀더라도 찾아가 사고야 맙니다. 그 비슷한 향기가 났다면 그 물건은 무조건 사야 하는 것이 됩니다. 

  그 냄새는 단 향이 나면서도 그 단 향은 싸구려 같은 데가 있고, 해서 단순하고 순수한 느낌이 납니다. 그 때문에 오히려 상쾌합니다. 고급스러운 느낌이 전혀 없어 가볍고 마음이 놓입니다. 

  

  집으로 걸어 오는 길에 산에 걸린 구름을 봤습니다. 산이 가깝게, 아주 잘 보이는 비 내리는 아침. 나는 맨날 인생 생각을 끊임없이 합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몸을 꽤 빡세게 굴려야 합니다. 오늘은 그래도 눈 뜨자마자 삐걱대는 관절을 하고도 걸었기 때문에 가뿐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냥 살자. 

작가의 이전글 민감한 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