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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Mar 05. 2022

서른 다섯, 엄마가 보고싶다.

에스프레소를 마셨다고 잠이 오지 않는다.

난 어렸을 때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예감했다. 그 예감으로 괴로워했으며 정말로 그렇게 됐다고 실감한다.

 

네 시쯤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설마 잠이 안 올까? 그랬더니 정말로 잠이 안 온다!


어쨌든, 그래서 잠에 들려다 누운 채 잠이 완전히 가시게 된 건 이럴 때면 어렸을 때로 돌아간, 그때의 느낌이 찾아와서. 잠에 들려던 건 현재였다면 확 잠이 달아나고 나니 예전인, 진짜인,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다. 진짜의 나로. 그런 익숙하고 편안하며 온전한 느낌.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현실감. 그러면 곧장 서른 다섯이 된 나는 엄마가 보고싶어진다.


엄마를 보고싶어 해서는 자랄 수 없으니, 또 그렇지 않아도 인간이 좀 성장이 느렸던 편이라 뒤늦게 나는 엄마와 나를 분리하려는 감정에 닿았는데… 부모는 태산이고, 자식은 태산 같은 부모를 넘어야 성장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러나 이렇게 엄마가 보고싶다는 것, 엄마를 이런 깨끗한 마음으로 보고싶어 하는 순간이 줄어든다는 것, 내가 예전과 달리 짜증스럽고 냉정한 목소리를 엄마에게 낸다는 것을 깨닫는다. 더할 수 없이 쓸쓸해지며 어릴 때와 같이 아득해진다.


나는 그때 엄마에게 우리가, 아니 내가 자라버리고 말면 우리가 따로 살게 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며 자주 두려운 감정에 시달렸다. 괴로워했다. 암담한 예감 때문에. 자라고 싶지 않다고., 시간이 가 버리는 게 싫다고, 엄마가 없어지면 어떻게 하느냐고, 우리가 다 죽게 되면 어쩌냐고, 우리가 같이 살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냐고!


엄마를 잃는 게 세상에서 제일 두려웠고, 또… 인생에 끝이 있다는 게 무서웠다. 여섯 살 때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밤마다 그런 생각에 시달렸다. 나는 엄마가 우리 집에 너무 좋고 사는 게 아늑하고 행복해서 아무것도 변하지 말기를 바랬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엄마도, 그 누구도 그걸 해결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컴컴한 밤만 되면 보통 기분이 이상해졌다. 집에 있고 엄마랑 있는데도 미아가 된 듯해서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광활하고 황량하고 어둡고 슬프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쓸쓸해서 엄마에게도 전달 할 수가 없어서 더 그랬다. 마음에 혼자 그런 걸 품어야 했다.



예감한 대로 나는 스무 살에 집에서 나와 서울로 갔다. 엄마와 나는 그때 많이 울었다. 울면서 떨어졌다. 엄마가 가고 난 낯설고 캄캄한 방에서 밤새 많이 울었는데, 엄마도 집으로 돌아가 내가 나간 내 방을 보며 많이 울었을 것이다. 그건 상처였을까? 여전히 가슴이 아프다. 나는 엄마 가슴을 많이 아프게 했으며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 듯싶다. 나는 십몇 년을 혼자 산 뒤에 결혼을 했고, 그러니 스무 살에 집에서 나와 그 길로 집에 돌아가지 않고 어렸을 적 예감한 대로 엄마와 따로 살게 된 것이다. 그때 집에서 나올 땐 영영 떠나는 거라곤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히 집으로 돌아올 것으로 여겼다. 당장 몸이 근질거려, 세상이 궁금해 견딜 수 없어 서울로 나가지 않을 수가 없는 것뿐, 엄마와 성인이 되자마자 떨어지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도 친구보다 엄마를 더 좋아했고, 별명은 집 귀신 이었다. 집순이보다 심하게 집을 좋아해 붙은 별명이었다.


서울의 생활은 대체로 즐거웠으나 이렇게 때로 어렸을 때 마음이, 어릴 때 잠이 안 오던 밤에 품었던 감정이 생생히 떠오르면 황망해진다. 나는 괜찮지만 엄마를 너무 쓸쓸하게 만들었을까 너무 미안해지고 해결할 수 없이 쓸쓸해지고 만다. 어릴 때의 그 마음은 전달할 길 없어 여전히 길을 잃은 채로 머릿속을 부유하며 세월을 먼지처럼 누비며 쓸려가고 되돌아온다. 그래도 나는 이때에 내가 나라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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